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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박승복 회장의 건강비법

풍월 사선암 2009. 3. 2. 23:40

CEO와 病 - 88세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의 건강비법

매일 식초 마셔...신체 나이 49세

 

박승복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로 88세다. 국내 상장기업 대표이사 중 신격호 회장과 동갑으로 가장 나이가 많다. 아흔을 바라보지만 지금도 술자리에선 위스키 반병을 비운다. 비결은 무엇일까.


1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충무로에 있는 샘표 본사에서 만난 박승복 회장은 활기가 넘쳤다.


“오늘만 이미 스케줄 세개를 소화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찬 모임에 갔다가 오전엔 상장회사협의회에서 간부 회의가 있었어요. 그리고 점심 약속을 다녀온 후 지금 인터뷰하러 왔지요.”


박 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감투’는 20개가 넘는다. 이 중 한국 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13년째, 한국 식품공업협회 회장은 10년째 맡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실 출신자 동우회인 국총회 회장과 유니세프 한국 위원회 이사를 16년째 지내고 있다. 덕분에 술자리는 잦지만 지금도 앉은 자리에서 위스키 반병을 거뜬히 비운다.


“친구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난 바람에 지금은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자주 못 마셔요. 한 명 있긴 한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게 영 시원치 않아 보여서 ‘빨리 죽어라’고 했어. 협회간부들과 가끔 마시는데 요즘은 와인을 많이 마시더라고. 그래도 난 위스키가 좋던데…”


평생 술을 마셔왔지만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 기자가 못미더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지난해 말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내밀었다. 혈압, 콜레스테롤, 간수치, 혈당 등 모두가 정상이었다. “의사가 올 A랍니다. 신체 나이가 49세라던데 앞으로 어디 가서 40대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운동으로 관리해온 건 아닐까. 그는 “총리실에 있을 때 공무원들은 골프를 자제하라고 해서 그만둔 뒤부터 숨만 쉬고 산다”며 “지금은 일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집안 내력과도 무관하다. 6형제 중 첫째인 그는 동생 둘을 먼저 보냈다.


박 회장이 건강관리의 첫째 비결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식초’다.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던 그는 늘 위염, 위궤양 등과 같은 ‘속병’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환갑이 가깝던 80년 일본 출장길에 지인에게서 식초를 소개받았다.


처음엔 마시기 괴롭고 속이 쓰려서 수차례 포기했지만 굳게 마음먹고 꾸준히 한 달을 마셨다. 한 달이 지나자 피곤함이 사라졌고 석 달을 버티니 속병이 다 나았다. 그 후 정기 검진 외엔 병원에 가 본적이 없다. 실제 박 회장은 염색을 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검고 피부는 젊은이처럼 윤이 났다.


“지금은 흰 머리가 약간 생겼죠. 식초를 열심히 먹다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두 세 달 정도 마시지 못한 적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거울을 봤더니 흰머리가 생겼더군요. 지금은 해외 출장 때도 식초를 가지고 다닙니다.”



박 회장은 매일 식후 세 번 소주 한 잔 분량의 식초를 물에 타 마신다. 그렇게 30년을 마셔왔다. 그의 식초 사랑은 방송을 탄 후 전국에서 식초 열풍을 일으켰다. 그의 아이디어로 샘표는 지난해에 벌꿀과 섞어 마시기 편한 ‘벌꿀흑초’를 내놓았다.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 박 회장은 원래 기업인이 아니었다.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산업은행 전신 식산은행에 들어갔다. 해방 후엔 서울로 와 근무를 계속했다.


59년 은행에서 상사로 모셨던 송인상씨가 재무부 장관으로 간 것이 인연이 돼 공무원이 됐다. 73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차관급)이 된 그는 박두진, 정일권, 김종필 등 세 명의 총리를 보좌한 최장수 행정조정실장이다. 격동기에 최고위급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최초 국가 홍보 화보 발간, 기념 금•은화 제작, 소양강댐 건설, 용인민속촌 건립 등 많은 일을 해냈다.


“행정조정이라는 게 정부부처 간의 갈등을 조정해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민원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전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날 다 풀어버리는 성격입니다. 혼자서 단골 술집에 가서 정종 석 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바로 자버리죠. 비록 술을 많이 마셨지만 스트레스가 이어지지 않으니까 건강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1976년 선친이 돌아가시자 장자였던 박 회장이 가업인 샘표를 이어받았다. 샘표는 해방 이듬해인 46년에 설립된 국내 최대 간장 제조업체다.


54년에 등록된 이 회사의 상표인 ‘샘표’는 국내 최장수 브랜드다. 60년대 초반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란 광고 음악을 처음 선보이면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회사를 맡은 박 회장은 프리미엄 양조간장을 개발하는 등 국산 양조간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난해 1650억 원(추정치)의 매출을 올린 샘표식품은 국내 간장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간장만 놓고 보면 일본의 기코망과 야마사에 이어 세계 3대 업체로 손꼽힌다. 그는 “식품회사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아랫사람에게 일을 주고 아예 맡기는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를 모시면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분은 일단 일을 주면 일체 간섭하지 않고 믿고 맡깁니다. 아마 그 스타일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박 회장은 현재 아들인 박진선(59) 사장에게 경영을 모두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그는 “매일 출근을 하지만 회사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며 “아들에게 잘라 달라고 말하지만 자르지 않더라”며 웃었다.


은행원으로 24년, 공무원으로 12년 그리고 CEO로 33년을 지내면서 한국 산업화 과정을 현장에서 겪은 박 회장에게 최근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외환위기 때 혹독하게 당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2001년 상처한 박회장은 혼자 살지만 수많은 ‘감투’ 때문에 적적할 틈이 없다. “24시간도 모자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혼자 살다 보니 ‘살림’도 직접 한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와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것이 전부다.


“혼자 사니까 아침엔 간단하게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로 해결합니다.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하던데 난 고기가 없어서 못 먹어요.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약속이 있어서 밖에서 먹고 들어오죠.”

이처럼 멋있게 사는 노신사에게 꿈은 무엇일까. “지금 그런 게 있으면 욕심이지 뭐”라며 털털 웃고 말았다.

 

손용석 기자, 사진 정치호 기자 / 출처:미주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