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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복궁 관람 코스 소풍가기!

풍월 사선암 2009. 2. 22. 12:39

새로운 경복궁 관람 코스 소풍가기!


지난 9월 29일 경복궁 신무문이 45년만에 개방되었다. 신무문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경복궁이 일반에 공개된 뒤 1961년 5.16 군사쿠테타 이후 군부대가 경복궁에 주둔하고부터 폐쇄되어 왔다고 한다. 이번 신무문 개방으로 경복궁 흥례문에서 북악산 숙정문까지 원코스 관람코스가 생겨나 이 길을 따라 소풍을 떠나가로 마음먹었다.


문화재청에서 안내하고 있는 원코스 관람동선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이 중 첫번째 코스를 선택했다.


- 1안 : 경복궁 흥례문(정문) → 신무문 → 청와대 앞 길 의장행사 → 북악산 숙정문 관람(삼청각·홍련사입구)

- 2안 : 경복궁 민속박물관 입구 → 신무문 → 청와대 앞 길 의장행사 → 북악산 숙정문 관람(삼청각·홍련사입구)

- 3안 : 북악산 숙정문 관람(삼청각·홍련사입구) → 청와대 앞 길 의장행사 → 신무문 → 경복궁 흥례문·민속박물관 입구


관람소요시간은 경복궁이 약 1시간 30분, 청와대 앞 길 의장행사 관람이 1시간 30분, 북악산 숙정문이 1시간 30분으로 총 4시간 내외 정도로 하루 소풍 일정으로 안성맞춤이다.


북악산 숙정문 관람은 사전에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북악산 숙정문 관람이 없는 날은 월요일, 경복궁 휴무일은 화요일, 청와대 의장행사가 없는 날은 금요일이라는 점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www.cha.go.kr/)를 통해 숙정문 관람예약을 마치고 일정을 정리하니 큰 계획은 품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북악산 숙정문 예약하는 곳

소풍 당일날 경복궁에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한다. 근정전, 자선당 등 업무를 처리하면서 사진으로 늘 접하던 곳인 동시에 어린 시절 소풍길 에서도 자주 봐왔던 곳이지만 오늘은 새삼 다른 느낌이다.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을 빠져나온다. 얼마 전 까지도 청와대 의장행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경복궁 담길을 따라 청와대가 있는 곳까지 먼 길을 돌아야 했다. 복잡한 서울시내 길과 달리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한적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운치 있기도 했지만 사복을 입은 의경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조금 삼엄하기도 했기 때문에 경복궁을 통하는 길이 반갑다.

 

 

 

 

신무문

시간을 잘못 맞춘 덕분에 의장행사는 보지 못했지만 의장행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의장행사의 경우 한여름을 제외한 4∼6월, 10∼11월등 5개월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3부로 나뉘어진행되며, 사물놀이, 국내외 가요 연주 등 군악연주로 시작하는 군 의장행사는 여군의장대, 전통의장대, 3군 통합의장대의 의장대 시범, 분수대∼신무문간 왕복 800m 구간 퍼레이드로 이어진다고 한다.


다음은 홍련사 입구에 집결해 숙정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북악산 숙정문을 향해가는 길에는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해야 하는 등 조금은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왠지 특별한 경험을 하는 듯한 어린아이 같은 기분으로 들뜬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정돈된 관람로를 따라 숙정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예상외로 짧은 10분 정도였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남대문에 비하면 작은 문이었지만 숙정문 옆을 따라 늘어선 성곽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촛대바위에서 내려다본 경복궁과 서울시내의 모습 또한 장관이다.

 

숙정문

지난 4월 개방된 북악산 숙정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의 4대문 중 하나이다.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고,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우리 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한 뿌듯함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서울이 내 머리 속에 다시 그려진다. 관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지하철에서 너무 빨리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에 아쉬운 감이 들었지만 오늘 하루 여유 있는 휴식이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 같아 발걸음이 가볍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보고 싶다!


지난 4월 개방된 북악산 숙정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의 4대문 중 하나이다.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고,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우리 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한 뿌듯함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서울이 내 머리 속에 다시 그려진다. 관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지하철에서 너무 빨리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에 아쉬운 감이 들었지만 오늘 하루 여유 있는 휴식이 일상의 활력을 불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에 가면 건물처럼 우뚝 솟아있는 유리상자 하나를 볼 수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모습의 10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각층의 면마다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불상이며 지붕 기왓골,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공포 형식 등 세세한 표현이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다. 이 탑이 바로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경천사십층석탑(국보 제86호)을 제외하고는 그 유형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아름다운 조선시대의 대리석제 탑이다. 그런데 이 탑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다가가니 보이지가 않는다. 매끈한 유리면에 반사된 주변 건물들, 공원의 나뭇잎들과 구경나온 사람들만 비칠 뿐이다. 들어가서 제대로 볼 수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결국 원각사지십층석탑은 가깝고도 먼 사이처럼 되어 버렸다.

 

원각사지십층석탑 보호각

이 유리상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화재 보호각이라 부르는 문화재 보존시설이다. 탑, 불상, 석등, 석비와 같은 야외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석조문화재의 풍우, 생물침해 등 자연적 요인에 의한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하는 시설이다.

다시 원각사지십층석탑으로 돌아가 보자. 이 탑에 보호각을 만들게 된 주요 원인은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이었다. 탑골공원의 그 많은 비둘기들이 탑 위에 올라앉아 실례를 한 것이 탑을 온통 뒤덮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호각 건립에 있어서는 석탑이 서울 도심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대리석질이 풍화와 우수에 약하다는 점 등 많은 사항들이 고려되었다. 사실 탑을 제대로 보기 힘들게 하는 반사유리는 역설적으로 직사광선에 의한 탑의 훼손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비둘기 접근을 막기 위해 석탑을 가두어놓으니 비둘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접근조차 어렵게 되었다. 보호각이 문화재 보존 뿐 아니라 관람환경을 제공한다는 중요한 또다른 측면이 간과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원각사지십층석탑 보호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보호각은 한식기와를 올린 전통건축 형태를 가지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벽체로 막은 경우, 띠살창으로 진입은 못하지만 대상물을 밖에서 볼 수 있는 경우, 아예 벽체가 없이 완전 개방된 경우 등 많은 유형이 있다. 그러나 지붕에 의해 자연광이 완전 차단되어 문화재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것은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이다. 경주배리석불입상(보물 제63호)의 경우를 보자. 중앙 여래상과 좌우 보살상은 풍만한 얼굴과 둥근 눈썹, 천진한 웃음을 보여주는 7세기 신라미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주변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그늘과 습기로 인한 생물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나 보호각이 이로 인한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또한 벽체가 없는 개방형으로 내외부의 온습도 등 환경적 차이가 없어 결로 현상과 같은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보호각은 나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주배리석불입상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곤란과 불편함을 겪는다. 조각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필수 조건은 바로 광선인데, 보호각 건립 이전 석불입상을 보면 자연광에 의해 드러나는 조각의 입체감이 이 문화재의 가치를 느끼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호각이 건립된 이후, 안치된 석불입상의 풍만한 얼굴도, 온화한 느낌을 주는 미소도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를 ‘본다’라는 것은 문화재의 가치를 ‘느끼기’ 위한 의도적인 우리의 행위이다. 그런데 보호각으로 인해서 이러한 가치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보존과 관람을 위해 보호각을 개선하려는 논의가 필요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6년 11월 1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 보호각 개선방안 국제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각 주제발표에 따른 토론을 통해 문화재 보호각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제시된 개선방향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호각의 미술적·보존과학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전통건축 위주의 보호각 형식에서 탈피하여 재료 및 디자인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셋째, 석조문화재 뿐 아니라 발굴유적의 보호각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넷째, 보호각 건립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며 문화재 보존과 관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다섯째, 도요지(陶窯址)와 같은 발굴유적의 보호각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보호각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이제야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보호각은 문화재 보존을 위한 부가적인 시설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관람환경을 제공하는 기반시설로서 작용하고 역사문화경관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보조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 보존과 관람의 기능에 충실할 뿐 아니라 건축디자인적 측면에서도 당해 문화재와 주변 경관을 위한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입지와 형태를 가지고 있는 문화재와 기존 보호각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를 실시하고 획일적이 아니라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 보호각의 디자인과 기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어넣어 줄 것 같아 발걸음이 가볍다.


▷배병선(국립문화재연구소 건조물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