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10억 기부에 140억 세금폭탄 맞은 황필상씨

풍월 사선암 2008. 12. 20. 23:29

[Welcome to Why?] "기부하고도 죄인 된 상황… 이젠 기부가 무섭다"

210억 기부에 140억 세금폭탄 맞은 황필상씨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황필상씨는“쓰지도 않을 돈을 갖고 있는게 미안해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 연합

 

한 사업가가 210억여 원을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한 뒤 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세무서가 그 돈으로 설립된 장학재단에 140억여 원의 증여세를 부과해 장학재단과 사업가의 기업체 모두 문을 닫을 처지에 빠졌다.


아주대에 210억원을 기부한 사람은 (주)수원교차로 창업자 황필상(61·사진)씨다. 그는 "이젠 기부가 무섭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기부를 많이 했는데 지금 심정으론 앞으로 단 한 푼도 더 기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황씨는 2002년 모교인 아주대에 회사 주식의 90%(약 200억원)와 현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쓰지도 않는 재산을 갖고 있는 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늘 기부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황씨는 부인과 두 딸에게 "사람 농사 한번 제대로 지어보자"고 설득해 동의를 받아냈다.

"저는 딸들에게 '아버지가 번 돈은 아버지가 쓰는 거다. 아버지가 번 200억 원은 우리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으며 키웠어요. 아버지를 라이벌로 삼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 겁니다."


처음엔 회사주식 전부를 아주대에 기부할 생각이었다. 2002년 당시 수원교차로는 매출 129억 원에 순익 20억 원을 기록한 알짜 회사였다. 황씨는 "나는 계란 두 알만 있어도 몇 년 있으면 양계장을 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 무서울 게 없었다"고 했다.


황씨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고교 졸업 후 3년 동안 우유배달과 막노동을 하다가 군대에 갔다 와보니 25세였다. 취직을 하려고 6개월 넘게 뛰어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내가 못 배워서 이렇게 됐구나" 하는 좌절감에 죽음을 생각했다.


"죽는 거야 아무 때나 결심하면 죽을 수 있잖아요. 한 맺힌 공부나 해보고 죽자는 생각에 '장렬하게 공부하고 죽겠다'는 각오로 매달렸어요. 고등학교 졸업한 지 8년 만인 스물여섯 살에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요."


내친 김에 프랑스로 유학 가서 국립과학응용연구소(INSA)에서 37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한국과학원(KAIST) 교수로 일했다. 처음엔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덤볐지만 죽도록 노력하니 하나씩 결실이 맺어졌다. 그러나 KAIST에선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KAIST는 최고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 다들 쉬지 않고 공부를 하니 저처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따라가기가 어려웠어요. 교수 정년이 65세인데, 제가 왜 거기서 스트레스 받으며 평생 남의 뒤를 따라다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못 배운 한은 풀었으니 이제 못 가진 한이나 풀자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대전에서 지역정보지 사업으로 성공한 후배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1992년 수원교차로를 창업했다. 그는 "사업이 빨리 성공해 개인이 소유하기엔 과분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황씨가 전 재산 기부를 쉽게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이었다. 1991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늘 "자식에게 상자에 가득 찰 정도의 황금을 남겨주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남겨주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다.


2002년 7월 황씨는 아주대에 전 재산 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황씨와 오랜 친구인 아주대 교수들이 "저 사람은 학교에 재산을 다 기부하고 나면 길바닥에서 쓰러질 사람이니 일부는 돌려주자"고 했다.


"나는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식 전부를 기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제게 10%를 도로 주면서 학교가 회사를 운영할 상황이 안되니 저보고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것이 문제였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엔 회사주식을 5% 초과~100% 미만 기부할 경우엔 세금을 물리도록 돼 있다. 기업이 편법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황씨는 "당시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재산을 좋은 일에 쓰려고 기부하는데 일일이 법 공부하고 따져보고 해야 하느냐"고 했다.


아주대는 황씨의 기부금으로 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첫해 아주대 학생 1명에게 장학금을 줬던 재단은 이제 매 학기 전국 19개 대학에서 104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규모로 커졌다. 지난 3월 재단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얼마 후 증여세 140억 원을 부과한 통지서를 받았다.


황씨는 "기부를 하고도 죄인이 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다른 기부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재단측은 "공익을 위한 장학재단에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감사원에 심사청구서를 제출해놓은 상태다.


강인선기자 insun@chosun.com / 입력 : 2008.12.20 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