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초 혼 (招魂) - 김소월

풍월 사선암 2008. 9. 24. 14:05

 

초 혼 (招魂)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여 다시 살려 내려는 의식이 고복의식, 곧 초혼이다. 이 시에 나타난 이별은 뜻밖의 죽음이 가져다 준 운명적 결별이다. 더욱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말 한 마디조차 전하지 못한 이별이기에 시적 자아는 그 이름을 부르다가 삶을 다하는 것이 임을 잃은 자로서의 속죄의식인 셈이다. 그러기에 해가 지도록 산마루에 올라 임을 부른다. 그러나 임의 혼이 올라간 천상의 세계와 현실과는 너무나 넓고도 아득하여 살아 있는 자로서도 도저히 죽은 임과의 만남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설움은 마지막 연에서 '돌'로 응축된다. 돌(망부석)은 생자와 망자의 양면성으로 현실로는 살아있지만 죽음과 같은 삶을 영위함으로써 마음만은 죽은 임의 곁에 있다는, 현실 부정과 초월의지의 형상물이라 여겨진다. 이제 임을 부르다 부르다 시름에 지친 시적 자아는 영원한 '도의 몸짓으로 임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초혼>은 소월의 다른 시 <옛 임을 따라 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 부모의 강요로 마음에도 없는 시집을 갔다가 시어미의 시샘으로 죽은 여인의 이야기인 이 시에서의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서정적 자아의 애상은 <초혼>에서의 임의 상실과 그 임을 부르는 행위로 연결된다. 소월의 시에서 "임"은 국가를 상실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은 잃어 버린 조국이며, 임을 부르는 행위는 상실된 조국을 찾으려는 염원과 이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을 부르는 애절한 통곡의 목소리는 일제에 대한 항거의 소리이며, '선 채로 돌이 되어도' 끝끝내 버릴 수 없는 민족애의 열정과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