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만물상] 이청준과 어머니

풍월 사선암 2008. 8. 2. 11:56

 

[만물상] 이청준과 어머니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1954년 이청준이 고향 장흥을 떠나 도회지 중학교로 유학가기 전날 이청준 모자는 개펄로 나갔다. 홀어머니는 몹시도 가난했지만 아들을 맡아 줄 친척집에 빈손으로 보낼 순 없었다. 모자는 막막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한나절 게를 잡았다. 이튿날 이청준이 긴 버스길 끝에 친척집에 닿자 게들은 상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친척집 누님이 코를 막고 게자루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이청준은 자신이 버려진 듯 비참한 마음이었다.


▶궁색스런 게자루와 거기 함께 담겨 버려진 어머니의 정한(情恨)은 두고두고 이청준의 삶과 문학의 숨은 씨앗이 됐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깊은 삶의 비의(悲意)와 문학의 자양(滋養)을 얻었고 당신의 삶을 빌린 글들을 쓰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했다. 이청준 문학의 출발점은 고향, 어머니, 불우한 유년이 뭉쳐진 원죄의식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은 듯 남루한 원죄의식,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상징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가난에 치여 집까지 팔았지만 그 사실을 고향에 다니러 온 고교생 이청준에게 숨겼다. 어머니는 주인 허락을 얻어 내 집인 양 아들에게 밥을 해먹이고 하룻밤 잠까지 재워 보냈다. 어머니는 신새벽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까지 배웅하고 돌아선다. 눈길엔 모자가 걸어왔던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와 온기가 밴 아들의 발자국만 밟고 온다.


▶마을 어귀에 선 어머니는 갈 곳이 없다. 집이 없다. 이청준은 그 황망한 어머니의 사연을 십몇 년 뒤에야 알게 된다. 단편 '눈길'에 쓴 자신의 얘기다. 어머니는 아흔 넘겨 치매를 앓았다. 아들 이름도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집엔 빈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 하곤 했다. 이청준이 전한 "몸이라는 완벽한 감옥에 갇혀 계신 어머니" 얘기는 정진규가 시 '눈물'로 썼다.


▶1996년 어머니를 보내드린 뒤 이청준은 임권택에게 어머니 상을 치르며 겪은 일화들을 얘기했다. 임권택은 그걸 영화로 만들자 했고 두 사람이 함께 소설과 영화로 쓰고 찍은 작품이 '축제'다. 이청준은 "내 소설의 기둥은 어머니"라고 했다. "소설을 쓰게 해주는 힘과 인연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청준이 영원히 말리지 못한 젖은 옷 한 벌, 그의 정신의 피륙이었다. 그가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니께 돌아왔습니다'(조병화 '꿈의 귀향').

 


이청준 [李淸俊, 1939.8.9~2008.7.31]

소설가. 대표작으로 《서편제》《천년학》《축제》《밀양》《이어도》 등을 발표하였으며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