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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의 굴욕

풍월 사선암 2008. 7. 5. 09:08

강남 아파트의 굴욕

매일경제 2008-07-05 04:11:00

"현재 살고 있는 잠원동 집을 팔고 1억원 정도 은행대출을 받으면 반포자이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 전에 내놓은 잠원동 아파트가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가격마저 떨어지고 있어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박 모씨는 어렵게 당첨된 반포자이 115㎡ 계약을 포기했다. 박씨는 계약 포기 이유를 "11억원이 넘는 돈을 마련한다는 부담감이 제일 컸고 또 무리하게 돈을 마련해서 계약을 해야 할 만큼 향후 가치 상승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이 두 번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반분양분 297㎡를 계약한 김 모씨는 26억원에 이르는 잔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았는데 가격이 계속 빠지고 있다"며 "가격이 빠지더라도 팔리면 다행인데 입주 때까지 팔리지 않으면 어떡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지역 부동산 시장이 '반포자이발 충격'에 휘청이고 있다. 강남권 대규모 블루칩 단지에서 40% 미계약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데다 계약자들이 내놓는 급매물이 강남권 전체 아파트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조합원 매물도 급증

= 반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는 '강남 부촌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할 프리미엄 아파트'라는 평가가 있었던 반면 높은 분양가와 대출규제, 후분양제도 약점 때문에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청약 결과 2대1 경쟁률로 전 평형이 순위 내에 마감되면서 이런 염려를 씻는 듯했다. 그러나 계약단계에서 40%가 계약을 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인근 A중개업소 대표는 "반포자이 계약을 포기해야 할지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반포자이 향후 가격 변화에 대한 일반 분양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감은 조합원 사이에도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조합원 분양권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반 분양분은 전매가 금지되지만 조합원 분양분 중 사업시행인가 시점인 2003년 12월 이전에 조합원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은 분양권을 매매할 수 있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7월 3일 현재 반포자이 매물은 681건이다. 블루칩 아파트에 흔히 붙던 프리미엄도 옛이야기다.


115㎡ 매물 평균 가격이 11억5000만원으로 일반 분양가 수준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일반 분양가보다 낮춰서 나오는 물량도 있다. 최고가 29억7000만원짜리 297㎡가 28억원에 나와 있다. 뉴코아아울렛 인근 P부동산에서는 "지금 내놓는 사람들 대부분은 입주 때까지 기다리면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갖고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더 오르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강남 버블 붕괴 신호탄인가

= 이 같은 사태가 '반포자이'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우선 반포자이를 계약한 일반 분양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고 있어 입주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강남권 시세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잠원동 대림아파트 인근 D공인 대표는 "대출받기가 어려워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어떡하든 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급매물 가격 하락폭은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반포자이와 마찬가지로 후분양으로 공급하는 반포래미안 청약이 11월로 예정돼 있어 이 역시 강남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분양을 낙관했던 삼성물산도 예기치 않은 시장 상황에 마케팅전략을 재점검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경제 침체와 맞물려 강남 불패 신화가 타격을 입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사태를 강남권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지고 있는 신호로 읽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미계약자 36% 중에 부적격자 10%, 1~2층 당첨자 18%를 빼면 실질적인 미계약은 8% 정도"라며 "현재 프리미엄이 안 붙었기 때문에 1~2층 당첨자들이 계약을 하기보다는 층이 좋은 조합원 물량을 사겠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강남 지역 아파트 값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강남 일부 단지 중 최고 1억6000만원이나 곤두박질친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가격 등락을 나타내는 변동률을 보면 '강남의 굴욕'이 더욱 실감난다. 강남권 중에서도 대규모 입주와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는 송파구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올해 들어 6.63% 떨어진 송파구에 이어 △강동구(-4.57%) △강남구(-1.21%) △마포구(-0.64%) △강서구(-0.23%) 등 강남권 전체가 작년 말에 비해 아파트 값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개별 단지 중에서는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2차 62㎡가 무려 1억6000만원 하락하며 9억~9억2000만원대 시세를 형성해 올해 상반기 내림폭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박원 기자 / 김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