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요즘 아이들 /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풍월 사선암 2008. 7. 4. 15:01

   

 

요즘 아이들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복도를 지나는데 1학년짜리 여자 아이가 불쑥 손을 내민다. 뭐냐고 물으니, 오늘이 제 남자 친구와 사귄 지 22일째 되는 날(아이들은 이 날을 투투라고 부른다)이란다.


그러면서 투투 축하금으로 2천원을 내놓으라고 졸라댔다. 짐짓 시치미를 떼며 “연애는 너희가 하는데 왜 내가 2천원을 내야 하냐”고 했더니, 축하를 해줘야 오래 가는 법이라며 돈이 없으면 200원도 좋단다. 그놈 참 맹랑하다. 뭐 부끄럽고 수줍고 그런 기색도 없다.


하긴 연애에 관한 한 여자애들이 훨씬 적극적이고 노골적이다. 소문을 내는 것도, 투투 기념금처럼 무슨 무슨 축하금을 수금하러 다니는 것도 대부분 여자 아이들 몫이다.


수련회에서 만난 ‘교관 옵빠’ 이야기로 한 달을 우려먹는 것도, 몇 학년 몇 반에 ‘쓸 만한’ 남자애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우르르 몰려가 ‘검열’ 도장을 찍는 것도 다 여자애들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애가 있으면 즉각 담임에게 달려와 ‘자리 바꿀 때 그 애랑 짝이 되게 해 달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숙맥 같은 남자애들은 그저 뒷전에서 머리만 긁고 있을 뿐이다.


어제는 우리반 여자애 둘이 교무실로 담임을 찾아왔다. 상담할 게 있단다. 속으로 은근히 겁이 나서(여자 아이들의 상담은 복잡하고 미묘하고 어렵다) 뭐냐고 슬쩍 떠보니 편지를 한 번 읽어달란다.


요지인즉 “연애 편지를 한 통 썼는데 손 좀 봐 달라”는 것이었다. 2학년 후배 남자애를 몰래 좋아한다더니 기어코 ‘작업’에 돌입할 모양이었다. 연애편지 대필에서 손을 씻은 게 언젠데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이게 무슨 팔자냐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녀석들은 옆에 붙어 서서 끊임없이 쫑알거린다.


감동 버전이어야 한다느니, 그 후배네 학급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아두었니 몰래 들어가 사물함에 집어넣을 거라느니…. 내 참.

이놈들은 연애 걸러 학교에 오는 것 같다.


언젠가 교실에 들어가니 여자애들 서넛이 한 남자애를 둘러싸고 뭔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선생님은 알 거 없다며 등을 밀어냈다. 서너 걸음 떨어져 귀를 세우고 들어보니, 세상에.


그 남자애는 한참 연애에 불이 붙은 아이로 키스 경험도 꽤 된다고 하였다. 이런 남자애를 붙잡고 여자애들이 묻는 것은 다름 아니라, 키스할 때 누가 얼굴을 돌리는 것이냐, 뭐 이런 거였다.


남자애가 실실 웃으며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자 여자애들은 비명을 지르며 온갖 난리법석을 다 떨었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돌아서며 그랬다.


“나도 키스하고 시포.”


아, 빛나는 청춘들이여. 얼마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겠는가. 귀 밑 솜털이 뽀송뽀송한 그들이 막 부러워지려는 참인데, 문득 꼰대’같은 걱정이 뒤통수를 딱 치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저 놈들이 성교육은 제대로 받고 있는 걸까? 뭐 이런...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