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소녀야 부디 잘가라...

풍월 사선암 2008. 7. 4. 11:08

 

엄마는 비정규직, 아빠는 농부


어머니 양씨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애를 제대로 돌보질 못해서…."

"얼마나 귀엽고 예뻐…."

"엄마 곁에 얌전히 있지… "

"나가는 걸 어떻게, 묶어둘 수도 없고…."

"누가 도와줬으면 살았을텐데"


식당일과 청소일을 하면서 한달 40, 50만원 수입으로 모녀가 살아왔다.

"얼마나 춥고 배고팠을까."

"힘이 없으니 맞고 그렇게 쓰러진 거지…."

"저소득층 지원 혜택도 모녀를 비껴갔다.

"내가 아직 젊다고 안된데요."


김양은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약시가 심한 시각장애 6급.

김양의 주검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검은색 뿔테 안경 알이 유난히

두꺼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1학년 때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애들이 놀리고 머리도 때린다고…

전학가고 싶다고 얼마나 그랬는데… 너희들이 보는 시선이 싫어서…."


안경을 썼어도 아이는 늘 눈을 찡그린채 세상을 바라봤다.

학교에선 혼자였다.

말을 걸어오는 친구도 없고, 말을 걸려고도 하지 않았다.


김양은 친구가 없다. 채팅으로 그때그때 만나는 거리의 친구들이 전부다. 채팅으로 연락돼 만난 친구들과 PC방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다 돌아오곤 했다. 어이없는 '착각'으로 2만원을 훔친 도둑으로 몰렸고, 인근 고등학교로 끌려가 1시간에 걸쳐 구타를 당했던 것. 쓰러진 아이를 응급조치했다면 살 수도 있었지만 뇌출혈과 새벽 찬공기에 저체온증이 겹쳐 결국 사망한채 발견되었다.


죽을 때도, 죽어서도 아이는 얼마나 추웠을까.


살인죄로 수원구치소에 수감중인 가해자 정아무개(29)씨는 김대술 신부가 운영하고 있는 지원센터에 자주 들르던 노숙자였다. 이 지원센터는 수원역에서 노숙하는 이들에게 물품도 지급하고 재활상담을 해준다. 노숙인들은 수시로 문을 열고 들어와 "먹을 것 좀 달라"고 허기를 호소한다. 옷과 이불도 골라 간다. 정씨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김 신부는 정씨의 가족을 찾았다. 울산에 사는 노모가 유일인 혈육이었다. 하지만 자기 한 몸 가누기도 벅찬 노모는 "나도 귀찮은 몸"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김양의 부모는 7년 전 이혼했다. 가난이 불화를 불렀다. 그 전까진 세 식구는 용인시 신갈에서 살았다. 이혼 뒤 아버지 김씨는 고향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노모를 모시며 살아왔다.


그는 농군이다. 하지만 가진 땅뙈기 없이 소작농으로 하루 일당 5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그는 "아이를 해남 선산에 묻을까 했지만 날마다 찾아가게 될 것 같다"며 부인의 뜻에 따라 수원 화장터에 뿌리기로 결정했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김양의 부모는 부의금을 받지 않았다. 문상객도 별반 없었지만

"조용히 치르고 싶다"며 방송카메라를 향해 연신 손을 내저었다.

"제발, 혼자 조용히 있게 해줘요."

아이의 부모도 사는 일에 지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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