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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전교조 상대 6년 소송서 이긴 학부모 김지현씨

풍월 사선암 2007. 10. 24. 08:27
  [사람들] 전교조 상대 6년 소송서 이긴 학부모 김지현씨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수업 거부한 교사들 처벌 안 받는 현실에 분노

재판 비용 대느라 빚 내고 집 날리고 파산 위기

“내 인생 최악의 경험… 그래도 필요하면 또 싸울 것”


▲ 대법원에서 승소한 김씨가 소송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이 한마디가 김지현씨를 맹렬 교육운동가로 만들었다. 그는 수업을 거부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상대로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해 지난 10월 1일 6년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김씨는 2001년 초까지만 해도 학부모회 활동도 안 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모 페인트회사의 직원이었고 딸은 서울의 한 실업계 고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고3 학생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무 문제 없이 학교에 잘 다니던 딸이 4월 어느 날 아침 등교를 했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학교에 난리가 나서 수업을 안 한다”며 “운동장에서 시위를 하는데 교실에 앉아 있다가 왔다”고 말했다. 시위가 곧 끝날 걸로 생각하고 며칠을 더 기다렸지만 딸이 돌아오는 시각은 점점 빨라졌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갔다. 벽과 바닥, 유리창에는 온통 붉은 페인트로 구호가 적혀 있었고 집기는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교장을 만나보려고 찾아간 교장실은 더 엉망이었다. 집기를 모두 들어내고 갈색 조끼를 입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재단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교사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는 교사들을 붙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학생들을 위해 수업만은 정상적으로 해달라. 수업이 끝나고 시위를 하면 학부모들이 도와주겠다. 학생들 대신 학부모를 동원하면 되지 않나.”

한 여교사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아줌마, 여기는 인문계 학교가 아니고 실업계라서 학부모들이 모이지 않아요. 모르면 가만히 있어요.”

 

김씨는 “학부모에게 아줌마라니 어이가 없었다”며 “더구나 실업고 학부모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모이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동원한다는 발상에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로 며칠 동안 혼자 학교를 방문해 운동장에서 집회를 지켜보았다. 동네가 떠나갈 듯 틀어놓은 노동가와 선동 구호. 그것을 따라하는 학생들과 수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학생 때는 수업 안 한다면 좋아하지요. 게다가 재단이 떼어먹은 학생들의 앨범비와 명찰비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선동하니 학생들이 넘어가는 겁니다.” 김씨는 “내막을 알아봤더니 교사들은 자신들의 해고 위협에 대항하고 재단이사 아홉 자리 중에 세 자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분규를 일으켰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수업이 이루어질 기미가 없다고 판단한 김씨는 시위를 주도하는 이 학교 전교조 교사 34명을 직무유기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뜻을 같이 하는 학부모들과 길에 나가 수업정상화를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 국회와 교육청에도 찾아갔다.

 

그 뒤에 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 그는 시위자들의 공적이 돼 있었다. 손에 각목을 든 남학생들이 김씨의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학교 건물 밖으로 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 김씨는 그 뒤로 학교에 갈 때는 경호전문업체에 의뢰해 경호원과 함께 다녔고 딸에게도 한동안은 경호원을 붙였다.


교사들에 대한 고소는 기소유예 처분으로 유야무야돼 교사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학생들만 제대로 입시공부를 못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교사들에게는 아무런 불이익도 돌아가지 않았다”며 “학습권을 침해한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오기가 생겨 민사소송을 했다”고 말했다.

 

2002년 2월 졸업 직전에 학부모 17명을 설득해 학생과 학부모 각각 1000만원씩 총 3억4000만원 배상을 청구했다. 소송을 진행하고 비용을 조달하는 것은 김씨 혼자 힘으로 다했다.

 

2003년 6월 1심에 승소해 학생에게 100만원, 학부모에게 30만원씩 각각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전교조의 지원을 받는 교사들은 상급법원에 상소를 거듭했다.


 

▲ 김지현씨가 6년 전에 찾아간, 교사들의 수업 거부 현장 모습.


김씨는 처음엔 생활비를 쪼개 소송비용을 댔지만 점점 감당하기 힘들었다. 변호사 비용만 매번 2000만원씩 6000만원이 들었다. 이런저런 경비를 더해 김씨가 계산한 총 비용은 1억3000만원. 남편은 시위 현장에 쫓아다니고 생돈을 들여 소송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 재단의 친척이라도 되느냐. 만사 제쳐놓고 그 일에 매달리면 어쩌자는 거냐”며 말렸다. 남편과는 사실상 별거 상태가 됐다. 남편은 회사에 해외 지사 발령을 자원해 유학을 가는 딸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갔고 생활비마저 끊어버렸다. 이 일에 매달리면서 김씨는 직접 운영하던 피부관리실도 문을 닫아야 했다. 생활비와 소송비를 대기 위해 김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돼 있던 집을 저당 잡혔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집은 경매 처분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카드 돌려막기에 이르렀고 사채까지 끌어써야 했다. 소송에 이겼지만 김씨에게 돌아오는 몫은 30만원, 딸의 몫까지 해도 130만원뿐이다.

 

교사들로부터 ‘재단에서 30억원을 받았다’는 말까지 듣던 김씨는 지금 서울 대학로의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인터뷰 자리에서 김씨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려 내일 법원에 파산 신고하러 갈 예정”이라며 “파산 신고 비용도 200만원이나 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살아오면서 전교조와 싸운 게 최악의 일이었다”면서도 “그렇지만 불의를 보고 어물쩍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 다시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3년부터 전교조에 맞서는 국공립학교교장협의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근무했고 작년 11월에는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장공모제에 반대하는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며 “자격 없는 사람을 교장으로 뽑는 제도가 시행되면 교육이 파탄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