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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종과 양귀비의 애정극

풍월 사선암 2007. 8. 13. 11:28

 

당현종과 양귀비의 애정극

 

沈魚落雁,  閉月羞花.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밑으로 떨어지며,

달은 구름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위 시는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다. 양귀비가 얼굴을 비추면 물고기와 기러기, 달은 물론 꽃까지 비교되는 것이 두려워 부끄러워했다는 내용인데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중국또한 미의 기준이 변하는데 당나라 때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풍만한 여인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이것이 최근에 떠돈 중국 4대 미인의 초상 중 양귀비의 초상이다.
 

양귀비는 본래 현종과 무혜비의 아들인 수왕 이모의 비로 궁궐에 들어갔다. 당시 양귀비는 17세(어리구나). 그런데 어느날 현종이 우연히 자기의 며느리인 양귀비의 풍만한 자태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 버렸던 것이다.

 

일당 당현종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피고는 중국 당나라의 제6대 황제(712~756 재위)로서 본명은 이융기며. 시호는 명황(明皇)·무황(武皇).  치세중 당에 최대의 번영과 영화를 가져왔는데 이를 개원지치라 한다.

그렇다 그는 원래 명군이었던거다. 졸라 똑똑한 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며느리 보고 갑자기 눈이 돌아버린거다. 일반 여염집이었으면 당연히 안될말이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는 세계 최고의 명예와 부와 권력을 지닌 자가 아닌가? 그래서 그는 눈 딱 감기로 한다.

 

양귀비도 본래 수왕에 대한 사랑보다는 부귀영화에 더 욕심이 있었기 때 문에 일단 수왕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지상 최강의 권력가와 지상 최고의 미인이 운우지정을 나누게 되었는데......양귀비는 섹스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먼저 사촌 오빠 양국충으로부터 섹스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여, 수왕에게서 기초를 닦고, 현종을 만남으로써 기교상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라 했던가! 당현종은 이때부터 그 총명함과 현명함을 잃어버리고 남성의 본능에 너무 충실해져 버린것이었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다가도 절한다고 양귀비의 형제자매들 또한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는데 얼마나 세도가 막강했는지 이들은 왠만한 왕족도 우습게 볼 지경이었다.

 

양귀비와 현종과 같이 목욕했다는 화청지
 

하지만 젊디 젊은 양귀비로선 할아버지가 아무리 잘해준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데 천보 6년(747) 정월 현종은 변방의 절도사 안록산을 환영하는 연회를 흥경궁에서 열었는데, 그만 여기서 어처구니 없는 불륜이 싹 트고 마는데.....(어처구니없게도 갓 20대 초반인 양귀비가 40대인 안록산을 양아들로 들이고 만다. 안록산은 엄마라 부르면서 좋아라 하고 양귀비는 그런 안록산이 귀엽기만 하고...쯧)

 

그런데 여기서 절도사란 어떤 관직인가에 대해 알아봐야 겠는데 당건국초기에는 절도사를 중앙에서 파견했다. 하지만 중앙통제제도가 미비한 그 당시 절도사들은 지방에서 자기 나름대로 세력을 구축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게 된다. 즉 지방 군벌화 해버린 것인데 그래서 조정에서는 그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대신 달래는 방식으로 충성을 다짐받았다. 해신을 보면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제나라를 세워 반란을 일으킨 이정기란 인물이 나오는데 그 역시 절도사 출신이다.

      

갸날퍼 보이는 양귀비의 초상
 

근데 그만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안록산이 역모를 꾀한다. 아무리 눈이 멀은 현종이라지만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그런데 그를 제거하려 할 때마다 양귀비가 극구 말리는 것이다. 아무리 양귀비가 말린다고 해도 그렇지 현종은 결국은 안록산에게 손한번 못 된다.

 

755년 마침내 안록산은 간신 양국충의 타도를 명분으로 내세워 범양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현종은 깜짝 놀라 가랑비 내리는 한여름 새벽에 승상 위견소, 양국충, 양귀비 자매와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장안성을 벗어나 서쪽으로  섬서성 흥평에 이르렀으나, 병사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현종에게 양국충과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들을 모두 죽이기를 강요했다. 결국 양국충과 일족들의 목이 잘리고 시신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양귀비도 어쩔 수 없이 마외역관 앞의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하였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38세였다. 그래서 미인은 박명이라 하였던가!

     

이들의 로맨스도 거기서 끝이였다. 현종은 자기 부인의 죽음을 못 본척 할 수 밖에 없는 필부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지상최강의 사나이에서 살아있는 시체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그러니 그 전에 좀 잘 할 것이지.


후에 그의 아들  숙종이 난을 평정하면서 현종은 장안으로 돌아왔지만 이제 그 곳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양귀비없는 현종은 빈껍데기에 불과할뿐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데....

신이 이래서 공평하다는 걸까 신은 결코 모든걸 주지않는다.

    

저녁이면 날아드는 반딧불에 그리움은 더해지고, 외로운 등잔불을 돋우느라 잠 못이루네. 서서히 울리는 종소리에 밤은 더욱 길어져, 반짝이는 은하수에 동이 트려 하는구나. 싸늘한 원앙 기와 서리꽃 피어나니, 차가운 비취 이불 뉘와 함께 같이할까? 아득히 사별하여 해가 다시 지나가도, 영혼은 꿈속으로 찾아오지 아니하네.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