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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학원가 초토화시킨 신정아 ‘가짜학위’ 후폭풍

풍월 사선암 2007. 8. 1. 10:43

강남 학원가 초토화시킨 신정아 ‘가짜학위’ 후폭풍

 

결국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가짜 학위’ 파문이 학원가를 덮쳤다. 수사당국이 명문대 출신을 사칭한 강사들을 추적하고 있어서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강남교육청과 강동교육청으로부터 관할 학원 강사 3천여명의 학력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 중이다. 출신 대학 진위여부를 각 대학에 조회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학원 강사들 가운데 학력을 속인 사람들이 많다는 첩보 때문이다.


사실 졸업장 등 위조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학원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학원 측에서 위조를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학원 강사들은 토로한다.


외부에 강사의 출신학교를 명문대로 알려야 ‘학원도 살고, 강사도 산다’는 식으로 회유한다는 것. 이에 국내 최대의 학원가로 알려진 강남 대치동 일대의 학원 수강생 16명을 길거리에서 만나봤다. 모두 중·고등학생들이다. 남자는 9명, 여자는 7명.


엄마는 간판, 자녀는 유명세


“솔직히 외국 대학 졸업하고 학원강사 하는 것 웃겨요.”


고교 1학년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우리는 유명세로 학원강사를 선정하는데 엄마들은 다르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학생은 이어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엄마는 출신 학교를 꼭 따져본다”며 “아마도 학원비를 지불하는 엄마들의 눈치 때문에 학원강사들이 졸업장을 위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했다. 해당 과목만 잘 가르치면 상관없다는 것. 간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 그러면서 “국내 명문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국까지 가서 알아주는 대학 나왔음에도 불구 학원강사 하는 것이 좋아보이세요”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였다. “왜 이렇게 잘난 척 하는지 여간 보기 흉한 게 아니다. 바다 건너 외국 명문대학까지 나왔으면서 학원에서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게 창피할 것 같다. 너는 아니냐.”


함께 있던 학생의 친구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구 또한 “사실 학교 자랑하는 선생님은 꼴불견이다.


명문대 나왔다고 잘 가르친다고 보지 않는다”며 “문제는 엄마가 졸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학원강사 학력위조 의혹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16명 모두 간판은 중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오직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엄마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지갑을 여는 엄마가 학원강사의 학력을 대부분 확인하고 이를 학원강사 능력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


한 여학생은 “○○학원의 수학 강사는 유머감각이 좋고 자상할 뿐더러 잘 가르치기도 해 학생들에게 소문이 자자했는데 출신학교가 뒷받침되지 않아 스타 강사 대열에 들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른 여고생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빅3 대학은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던데 어떻게 학원강사 중 상당수가 빅3 출신인지 모르겠다”면서 “분명 가짜 졸업장을 만든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학생의 지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졸업장이 없으면 무조건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반드시 달라져야 생각해요.” 참고로 대치동 학원비는 한 과목당 30만원~60만원 선.


서울 대치동서 수학강사를 했던 이모씨(34)는 “서울대 수학과 나왔다고 능력이 출중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사실 학원가에선 학벌이 좋고 나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잘 가르치고 능력을 인정받는지가 최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그의 전 직장 동료들은 빅3 명문대 출신이 아님에도 대부분이 고려대, 연세대 출신으로 둔갑했다고 한다. 이는 원장의 절대적 권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일대선 학력을 뻥튀기하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 하지만 서로 먹고살려 하기 때문에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간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일부 학원은 강사의 출신교를 자랑이라도 하듯 출입문이나 복도에 크게 써 붙여 놓고 학부모의 눈길을 끈다”며 “실력보다 학벌로 강사를 고르는 학부모들 태도 때문에 학위 위조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사설학원들은 채용하는 강사들의 대학 졸업증명서나 교사 자격증을 교육청에 제출하게 돼 있다. 그러나 별도의 검증과정을 거치는 곳은 서울교육청에 불과하다.


서울교육청을 제외한 지방의 다른 시·도 교육청은 전혀 검증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서울에서 일부 지역교육청은 학원 강사 학력 검증과정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속일 경우 학력을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 참고로 학원 강사는 2002년까지 대학 이상 관련 학과를 다닌 자로 제한됐으나 2003년 이후 전문대 이상 졸업자로 완화됐다.


서울교육청의 검증조치는 지난 3월 서울 강남 일대 유명 학원에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나왔다고 학력을 속인 혐의로 강사 23명이 경찰에 적발되고 나서 행해졌다. 이전에도 졸업장을 위조한 사건들은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됐다.


과거 인터넷으로 가짜 대학졸업증명서를 주문, 판매한 박모(26)씨 등 2명이 법의 심판을 받은 적 있다. 박씨 등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졸업증명서 전문작업’ 카페를 연 뒤 네티즌의 요구대로 대학 졸업증명서를 위조해주고 건당 40~60만원씩을 받은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대학의 홈페이지에 접속, 학교 문양을 내려 받은 뒤 가짜 총장직인을 찍어 졸업증명서를 위조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위조 사이트에서 졸업장을 구입하려다가 적발된 김모씨는 경찰에서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았다. 반면 실력도 없으면서 학벌 하나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다 보니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카페를 찾은 한 네티즌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것 같다”며 “취업을 위해서 돈을 들여 명문대 졸업장을 사겠다”고 밝혔다.


또한 명문대 재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주민등록등본을 위조해줬다가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는 인터넷 S채팅사이트서 ‘주민등록등본 위조해 줄 사람 급구’라는 제목의 글을 보고 선뜻 나섰다. 가격은 3백만원. 그는 경찰조사에서 “돈도 궁했지만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전해 담당 경찰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진짜와 구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가짜 주민등록등본을 진짜처럼 만들어낸 것. 이는 전문가도 구별하기 힘들었다.

 

서울시 교육청도 가짜 학위 강사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서울 시내 1만4천여개에 달하는 학원을 33명이 관리 감독하다 보니 수시로 학원을 옮기는 가짜 학위 강사들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대개 경미한 처벌에 그친다고 법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외에선 졸업·성적 증명서 위조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얼마 전에는 졸업·성적증명서 등 각종 공·사문서를 위조해 한 건에 50만~80만원을 받고 인터넷을 통해 팔아온 혐의로 30대 중반의 이모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혹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옛말을 빌리며 수사당국의 단속에 불구, 독버섯처럼 번지는 ‘위조’를 모두 적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대학생, 일반인은 물론 전문 브로커까지 날뛰는 데다 각종 위조사이트 역시 범람하는 이유에서다.


실제 해외에 있는 가짜 학위 위조 전문 사이트들은 성업 중이다. 이는 유명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에서도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학위 수여 대학의 팩스번호까지 찍힌 증명서를 발급하는 등 위조 실력도 대범하고 상당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평가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위조천국’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올 들어 중국에서 만들어져 항공택배로 들여오다 인천공항세관에 적발된 가짜 대학졸업증명서만 20여장에 이른다.


한편 상아탑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학력조회 요청에 난감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칫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어서다. 때문에 대학 측은 정부 등 공공기관의 관련 공문을 첨부할 경우에만 확인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학원들의 요청이 상당하는 전언이다.


<일요시사 성강현· 현우성 기자ㅣ스포츠서울닷컴 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