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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세탁 10년` 신정아씨 어떻게 속였나

풍월 사선암 2007. 7. 13. 10:10

명성 좇는 미술계 `화려한 포장술`에 당했다

`경력 세탁 10년` 신정아씨 어떻게 속였나


금호미술관 아르바이트생에서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까지-. 신정아(35)씨의 '가짜 인생 10년'이 드러나면서 미술계는 물론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위조한 학력으로 유력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쌓으면서 입지를 굳힌 '스타 큐레이터 신정아'는 학벌과 배경 등 '포장'을 중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자성의 소리도 높다.


1997년 9월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 앳된 여성이 이력서를 들고 나타났다. 25세의 신정아씨였다. 그는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수석 큐레이터였던 P씨는 "일단 이력서를 받아둔 뒤 한 달 후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고 회고했다. 금호미술관에서는 그해 10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호안 미로전'을 열었다. 그러나 P씨 등 당시 근무하던 큐레이터 두 사람은 관장과 마찰을 빚고 그해 말 일을 그만뒀다. 그 후임이 신씨다.


1995년 7월 1일자 본지 8면에 실린 삼풍백화점 붕괴 부상자 명단에 신정아씨가 포함돼 있다.

 

◆'미술계 신데렐라'의 이면=신씨가 큐레이터가 된 98년 이 미술관에서 연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전은 당시 참신한 기획으로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이 기획은 전임자가 추진한 것이었다. 전시 기획자 R씨는 "전임 큐레이터 P씨가 당시 독일에 있던 내게 '액자 위주의 전시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내 기획한 것"이라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최근 (재)광주비엔날레에 제출한 이력서에서 '호안 미로전'과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전을 본인이 기획한 주요 특별전이라고 적었다.


그의 급부상에 대해 미술계에선 "힘 있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는 미술관장, 기업인, 원로 작가와 평론가, 기자들과 돈독한 친분을 형성하며 '미술계 권력'으로 떠올랐다. 사립 미술관장 L씨는 "더러 신씨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막강한 배경이 있다는 소문에 미술계는 그저 작아지기만 했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마침 큐레이터들과 마찰을 겪은 뒤 관장과 호흡이 맞는 인물을 원했던 금호미술관의 틈새를 그는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유학파인 점도 한몫했다. 아르바이트생 신분이었지만 애초에 금호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것은 미국 대학 출신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주요 기획전, 해외 작가전을 유치하려면 큐레이터의 외국어 능력이 중요하다.


일단 금호미술관에서 자리를 굳힌 뒤에는 어려움 없이 성곡미술관으로 옮겼고, 홍익대.국민대.중앙대 등에서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성곡미술관 재직 중 예일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이력 부분도 석연치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이는 없었다. 이곳엔 그만큼 검증 시스템이 부재했다.

 


 

포장술도 뛰어났다. 신씨는 최근 (재)광주비엔날레에 제출한 이력서에 '우수학생(Honor student)'으로 캔자스 주립대를 졸업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이 학교 3년 중퇴자 중에 신씨와 나이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금호미술관 유일의 큐레이터였는데도 굳이 '수석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썼다. e-메일 아이디는 '신다르크(shindarc)'. "열심히 일하는 미술계의 잔다르크"라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삼풍백화점에서 사고를 당했으나 겨우 구조돼 나는 이제 두 번 사는 거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일도 있다.


뛰어난 언변으로 금세 주변의 신뢰도 얻었다. 신씨를 만나본 이들은 "차분하고 침착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개진하는 그의 모습은 '박사보다 더 박사 같다'고 느낄 만했다"고 평했다.


◆거짓말 퍼레이드=신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서울대 동양화과에 합격했는데 집에서 그림 공부하는 것을 반대해 못 갔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서울대 측의 확인 결과 합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학부에서 실기를 하고, 경영학 석사 출신에 미술사학 박사까지 취득한 것은 '무적의 포트폴리오'로, 이만한 경력 위조도 없다는 게 미술계의 촌평이다.


소문은 확대 재생산돼 2000년대 초에는 금호그룹 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이 같은 말들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떠오르는 큐레이터 신정아'라는 평판을 형성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큐레이터의 기획력이나 글쓰기 능력보다는 배경과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미술계, 젊은 큐레이터에게 잘 보이려는 비굴한 작가들, 신씨의 언변에 속은 언론 모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변 인사들에게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목표"라고 서슴없이 말했던 그는 결국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선임을 계기로 10년간의 '가짜 인생'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