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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모란장 - 추억과 사람 사는 냄새로 아름답다

풍월 사선암 2007. 3. 9. 09:42

 

추억과 사람 사는 냄새로 아름답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전국 최대 민속장터, 과거와 현대가 공존


10리 황톳길, 어머니 치마자락 잡고 따라나섰던 멀어진 날의 장날. 눈에 띄는 것마다 신기해 송아지눈 뜨고 두리번거리던 유년시절의 장을 서울 근교에서도 만날 수 있다. 끝자리가 4, 9일 되는 날이면 서는 경기도 성남시 모란장이다. 전통적인 5일장의 모습이 흘러간 세월을 따라 많은 부분 함께 사라졌지만, 모란장엔 잊고 살았던 추억이 아직 많다.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민속 5일장,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아련한 추억이 공존한다. 좌판 사이의 대부분 통로는 사람들로 붐비고 막혀 운신하기가 어렵다. 인파 속에서 가격 흥정은 활기를 띠며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다.


모란장은 아름다운 꽃으로 사람을 맞는다. 입구에 화훼부가 자리 잡고 있다. 입춘인 2월 4일, 계절은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이지만 서양란 등 각종 꽃이 추위에 떨며 온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다. 한 겨울에 꽃을 보았다는 자체로도 냉냉한 가슴에 훈기를 넣어준다. 모양이 예쁜 여러 가지 화분도 함께 팔려 나간다.


화훼부를 지나면 잡곡부. 쌀, 보리, 콩, 조, 수수, 율무 등 갖가지 잡곡이 진열돼 있다. 콩의 종류도 강낭콩, 녹두, 팥, 동부, 검은콩, 서리태, 완두, 백태, 땅콩 등 다양하다. 강낭콩, 기장, 율무 등 지금은 쉽게 보기 어려운 곡식들이 농촌을 고향으로 둔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는다. 유년시절의 신기함 처럼 한참을 서서 구경하고, 허리 굽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져 보고, 일부는 추억으로 사간다.


약초부에서는 인삼, 감초, 결명자, 계수나무 껍질, 도라지 뿌리, 녹각, 녹용, 당귀, 맥문동, 복령, 영지, 익모초, 굼벵이, 지네 등 온갖 약재가 거래되고 있다. 약초부는 그 특성상 도매시장보다 산지에서 구입해오는 비율이 더 높다. 약초부 다음에는 의료부, 신발부, 잡화부, 야채부, 생선부 등이 위치한다. 잡화부에서는 대나무 제품과 싸리로 만든 치 등 전통 생활용품을 판다. 머리 희끗한 중년들이 만져 보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머물다 간다.

 

 

야채부에는 한겨울이지만 푸른 채소들이 가득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신선한 야채가 미각을 자극한다. 생선부에는 김․오징어 등 건어물, 고등어자반 등 소금에 절인 해산물 외에 민물고기가 대형 플래스틱 함지에 물이 철철 넘치며 가득 담겨 있다. 민물새우, 미꾸라지, 붕어, 잉어, 송어, 가물치, 장어 등이다. 식용 개구리는 진열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모란장의 대명사는 가금류와 개고기이다. 장터 오른쪽이다. 가금부에는 주인을 따라 나온 오리․ 닭․흑염소․토끼․오골계 등이 연신 소리를 질러댄다. 중닭 6천원, 오리 1만원, 토끼 1만원, 흑염소 10만원. 그 옆에 자리한 애견부, 어미품을 떠나온 알록달록한 강아지들이 길게 하품을 뽑아내며 꼬마 손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개고기부는 장터 오른쪽에 긴 상가를 이루고 있다. 시장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몸보신 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가게 앞에서 잠시 머무르니 주인이 다가와 흥정을 한다. 20만원 안팎이면 대여섯명이서 식도락을 즐길 수 있다고 유혹한다. 좁은 쇠울타리 속 누렁이의 눈과 마주치며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배가 부른 다음의 일이다. 장터 뒤편과 왼쪽은 먹거리부이다. 장터 뒤편 임시 천막에서는 국밥, 칼국수, 잔치국수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판다. 점심 때는 손님이 붐벼 후딱 먹고 일어나는 것이 초로의 여주인을 도와주는 일이다.

고향 맛이 담긴 국밥 4천원, 즉석 칼국수 3,500원.


 

소주 1병 4천원, 맥주 4천원, 동동주 2천원, 음료수 3천원. 술값만 내면 안주가 무료인 포장마차도 모란장의 인기 코너이다. 대형 철판구이에 닭똥집, 가금류 내장․간 등의 안주가 지글지글 먹음직 스럽게 익고 있다. 중장년의 남성들이 포장마차마다 가득 차 있다.


장터 왼쪽은 먹자골목이다. 가설 천막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비좁은 골목은 고기 구우면서 나오는 연기로 자욱하다. 메추리, 돼지등갈비 등을 판다. 많은 천막마다 색다른 식도락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돼지등갈비 12개 1대에 1만원, 메추리 4천5백원.


먹자골목이 끝나는 곳에 모란장 최고 인기스타 품바패 서춘자씨가 있다. 붉은 치마에 빨강 브레지어를 찼지만 스포츠형 머리가 남자임을 말해준다. 흘러간 노래를 멋지게 불러제끼고 걸죽한 입담을 쏟아낸다. 가끔은 치마를 들어올려 엉덩이를 보여주며 섹시한 춤을춘다. 2백여평 노천공연장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의 반을 차지하는 중년 여인들이 “야하다”고 하면서도 “오빠!”를 열창한다. 옛날에는 엿을 팔았지만 지금은 노래 테이프를 판다.


모란장이 현재의 복개지 위에 자리잡은 것은 1990년. 이전에는 성남대로변에 노점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지명은 이북의 ‘모란봉’에서 따왔다. 시장이 만들어 질 때 이북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길이 350여m 넓이 30m 면적 3,176평. 장날이면 상인회 소속 1천여명 이외에 500여명의 상인들이 좌판을 벌인다. 10만명이 이상이 찾고 하루 거래액도 10억여원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