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4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 아니다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 아니다 국가보훈처가 6·25 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 측에 "장군이 돌아가시면 서울 현충원에는 자리가 없어 대전 현충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면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지금 여권 일각은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를 이장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친일파 낙인은 자신들이 찍는다. 이들이 친일파로 매도하는 백 장군이 사후(死後) 현충원에 안장되더라도 뽑혀나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보훈처 측은 "단순히 법 개정 상황을 공유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현충원은 안 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백 장군 측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100세 호국 원로가 목..

백선엽 인터뷰…"배 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없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백선엽 인터뷰…"배 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없는 건 참을 수가 없다" 6·25 전쟁 발발 64주년을 계기로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자 한국 최초의 대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올해 94세인 백 장군은 걸음걸이가 불편할 뿐 발음이 비교적 분명하고 청력과 시력도 좋은 편이다. 특히 6..

[정전 60년] 백선엽 장군에게 듣는다

[정전 60년] 백선엽 장군에게 듣는다 "6·25 전쟁은 두 개의 강에서 큰 교훈 … 낙동강선 끈질기게 지켜냈고 압록강선 우쭐하다 무너졌다" 총성은 멈췄으나 다른 전쟁이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이후의 이야기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의 김일성이 벌인 기습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를 사전에 막으려면 다른 무엇보다 대한민국 자체가 강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6·25 남침 전쟁은 단락을 맺었으나 미증유의 동족상잔이라는 참화를 겪은 대한민국은 스스로 강해지는 길을 향해 시급히 움직여야 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은 그 전의 3년 전쟁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쟁의 서막과 다름이 없었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6·25전쟁의 중요한 국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