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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인터뷰…"배 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없는 건 참을 수가 없다"

풍월 사선암 2014. 7. 25. 09:42

백선엽 인터뷰"배 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없는 건 참을 수가 없다"

 

6·25 전쟁 발발 64주년을 계기로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자 한국 최초의 대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올해 94세인 백 장군은 걸음걸이가 불편할 뿐 발음이 비교적 분명하고 청력과 시력도 좋은 편이다. 특히 6·25 전쟁에 관련된 기억력은 탁월했다.

 

수년전 백 장군이 전쟁 관련 기념행사에 참석해 과거를 회고하며 연설하는 것을 들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백 장군은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6·25때 유엔군 사령관과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매슈 리지웨이와 제임스 밴플리트는 검증받고 검증받아 부족함이 없는 군인이었다.” “의문의 여지없이 한국군에서 가장 훌륭한 작전 지휘관이었다.”고 회고했다.

 

백 장군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집무실에 나와 신문을 보고 손님들을 맞으며 하루를 지낸다. 26일 그를 전쟁기념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6·25 전쟁이 터진 지 64년이 됐습니다. 감회가 어떻습니까?

 

늘 그렇지요. 올해라고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어제는 6·25 기념행사에 참석했고.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내 저서 50권을 기증하고 왔어요.”

 

6·25를 회고할 때 특별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습니까?

 

밴플리트 장군(1892-1992)이 한국전쟁 3년 중 2년간을 미8군 사령관으로 전쟁을 지휘했어요.(밴플리트 장군은 6·25에 공군장교로 참전한 외아들을 잃었다)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군을 키웠어요.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우리 육군 사관학교를 4년제로 만들고 우수한 장교 육성을 위해 힘을 쏟았지요. 그 분 동상이 우리 육군사관학교에 있잖아요?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죠.”

 

한때는 남침이니 북침이니 남북한이 다투었고, 북한의 남침으로 확인이 된 뒤엔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고, 지금은 다 옛날 얘기 같지만 그동안 전쟁을 평가하는데도 참 곡절이 많았습니다.

 

참 가소로운 얘기죠. 말이 안 되잖아. 그 사람들은요. 전쟁은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 세 사람 작품이거든. 당시 박헌영의 남로당이 20만 당원을 가지고 있었어요. 북한 김일성이가 밀고 내려오면 남로당이 호응하기로 다 준비를 했잖아요.

 

남침 직전에 김일성이가 박헌영을 데리고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을 만났어요. 스탈린이 아주 흉한 놈이거든. 당시 지구상에 스탈린 이상의 독재자가 없었어요. 스탈린 만나고 난 뒤 얼마 안 돼 북경에 가서 모택동을 만나 남침을 지원해달라고 했잖아요.”

 

우리 국가안보에 미국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긍을 하지만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자주국방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전 세계에서 강력한 동맹국 없이 혼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는 극소수예요. 미국이나 과거 소련 정도. 지금은 구라파 나라들도 전부 네트워크,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미국하고 동맹을 하고. 일본 사람은 이미 동맹을 했고. 그렇게 가는 거지. 국방에서 자주가 되는 나라는 얼마 없아요. 무기는 자꾸 개선해야 하고,” 돈도 많이 들고. 뜻은 좋지만 완벽한 자주국방은 없어요.”

 

미국이 북한의 남침 사실을 확인한 뒤 신속히 참전을 결정한 배경이 뭡니까.

 

그 때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됐거든. 맥아더 장군이 629일 동경에 있다가 수원비행장에 와 가지고 한강 둑에 섰어요. 그 분 관찰이, 결국은 한국군이 하도 열세가 돼서 전차도 없고 항공기도 없고 훈련도 부족하고, 빨리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끝난다. 그렇게 본국에 보고를 했지요. 당시 북한엔 소련 군사고문단이 3000명이 들어와 있었어요. 그들이 북한군에게 작전 계획을 다 써줬어요.”

 

미국은 무엇을 위해 참전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광의적으로 얘기하면 자국 이익을 위해서겠지만. 누군들 손해 보는 일을 하겠어? 그렇지만 선의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요. 우방국이, 자기네가 영향력 있는 영토가 침략 당하는데 거기 도와주러 온 거죠. 자유진영 수호라는 성스러운 의미도 강했어요. 그때 맥아더 부대는 십자군 같은 거였어요.”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는 아직도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맥아더라는 사람이 성격이 아주 수퍼맨이었거든. 수퍼맨은 비판을 받기가 쉽지. 난 전장에서 그를 3번 만났고 1953년과 1958년엔 미국에 가서 그를 만났지. 그를 오만하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스케일의 인물이었지.”

 

외국에선 6·25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합니다. 전쟁에 대해 연구하고 기념하는 작업들이 월남전이나 다른 전쟁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거에요. 왜 그렇습니까?

 

그때만 해도 미국인들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낮았어요. 한국에 대해서는 더 그랬고.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몰라. 안경 쓴 것은 일본인으로 보고 좀 허름하면 중국인으로 봤지. 한국은 아예 존재감이 없었고. 6·25때 거의 한국을 포기하려 했죠.”

 

후배 군인들, 특히 군 지휘관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고, 나라가 있어야 군인도 존재합니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나라 없는 것은 참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부국강병해서 이 나라를 잘 지키고, 이 나라의 국위를 선양하고, 군인 본분을 지키고, 나라에 충성을 하고, 나라를 지키는 데 진력을 해달라는 거지 뭐.”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 다리 일찍 폭파한 것은 자기들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한강 이북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까?

 

잘못은 잘못이지. 근데 당사자들은 그게 급하니까. 적군이 미아리에서 직통으로 들어오니까 급했지. 그렇지만 개인 안위를 지키기 위해 그런 지시를 했다는 건 다 욕을 하는 사람들 입장이지.”

 

이승만 대통령이 전시에 어느 정도 역할을 잘 했다고 보십니까?

 

역시 기둥이 있어야 되거든. 그 기둥이 누구냐. 대통령이지. 대통령이 버티고 했으니 외국으로서는 원조하기가 쉽잖아. 그 사람의 지도력이 상당했지. 그 사람이 지도력이 있었거든. 굉장한 사람이었어요.”

 

학생들이 6.25에 대해서 잘 몰라요. 학교에서 가르치질 않으니까.

 

교육계에서 교육을 안 하지 않았어요. 나라가 책임져야지. 문교 예산이 얼마나 많소. 정부가 교육을 시켜서 나라를 유지하고 나라를 방위하고 국민을 교도시키고. 책임이 있지 않소?”

 

제일 기억에 남는 전투는 어느 전투입니까?

 

우리가 평양을 점령했을 때. 그리고 청천강에서 중공군 수십만하고 맞닥뜨렸을 때.”

 

중공군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대단히 놀랐지. 불의에 들어왔으니, 맥아더 장군도 몰랐고. 30만명이 동시에 들어왔거든. 청천강 북쪽 운산으로. 매복을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반드시 반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장군님은 덕장, 지장, 용장 중 어떤 장군입니까, 자평을 한다면?

 

일개 군인이지. 대수롭지 않아요. 아무것도 못 돼.”

 

부하들은 어떻게 다루었습니까?

 

부하들 뒤를 꼭 잘 봐줘야 합니다. 세끼 밥은 먹었느냐도 물어보고. 징병은 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군도 많이 진보했어요. 여러 가지 구타했다 소리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별로 없고, 이번에 군대에서 총기 사고 난 건 이지메라고 하는 모양이지? 이지메는 어느 사회에도 있었어. 크게 봐야 해.

 

과거 독일 군대가 강했던 것은 신발 바닥에 박힌 등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었어요. 하사관들이 그걸로 사병을 막 때렸어요. 하사관보다 군화가 더 무섭다는 얘기가 있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론 안돼. 사건 하나로 전체를 측량하면 안되지.”

 

모병제는 아직 성급한 겁니까. 언젠가는 모병제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모병제로 갈 수가 없는 게, 경제가 못 따라가요. 졸병 하나에 미군이 1500불 줘야 되거든. 한달에. 하사관들은 3000. 그러니 이 경제 가지고는 아직 안돼. 이 경제 가지고, 우리가 60만이지? 비행기 함정 총기 이런 거 비싸거든. 예산을 보게 되면 인건비 내면 뭐 살게 없어.”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2014-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