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맛·흥 데이트 “우린 청계천으로 간다”
[경향신문 2005-09-30 18:45]
‘이제 청계천을 100배 즐길 차례다.’ 2005년 가을. 서울 시민 모두가 함께 받은 ‘선물 보따리’ 청계천. 아이들 손 잡고, 연인 어깨에 팔 두르고, 되살아난 물길 15리(里)를 여유롭게 걸어보자. 즐거운 발품을 팔다보면 곳곳에 숨은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물과 빛이 만나, 낮보다 밤에 더 예쁜 청계광장부터 청둥오리·백로 등 ‘진객’이 찾아오는 버들습지까지 청계 비경(秘境)은 열손가락을 꼽아도 부족하다.
신당동 떡볶이촌에서 떡볶이도 사먹고, 평화시장 헌책방 골목에서 모처럼 서권기(書卷氣)를 느껴보자. 지난 2년여 동안 도심 교통정체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씻은 듯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청계천의 ‘다섯 얼굴’
청계천은 청계광장 바로 아래 인공 2단 폭포에서 시작해 정릉천, 중랑천과 섞이며 자연하천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모전교부터 고산자교까지 22개 다리를 기준으로 보면 크게 5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개성 있는 배우처럼 5가지 ‘페르소나’를 지닌 셈이다. 먼저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부터 수표교까지는 ‘축제의 거리’다. 무교동 ‘음식문화 가을 대축제’ ‘스타와 함께 청계천 걷기대회’ 등 청계천 복원과 함께 연일 공연, 전통놀이, 각종 행사가 한창이다.
수표교부터 나래교까지의 구간은 말 그대로 시장통이다. 유서 깊은 광장·방산시장과 1970년대 근대화를 상징하는 세운상가 일대는 볼거리 많은 ‘쇼핑의 거리’다.
지하철로는 종로 5가역에서 동대문역에 이르는 나래교~버들다리~오수간교~맑은내 다리는 ‘패션의 거리’다. 두타, 밀리오레 등 대형 쇼핑몰이 즐비해 24시간 활기에 넘친다.
수양대군에 의해 12세 단종이 폐위된 뒤 귀양가며 그의 비 정순왕후 송씨와 헤어졌다는 영도교, 황학동 벼룩시장을 곁에 끼고 있는 황학교 구간은 ‘역사의 거리’라 이름 붙여도 손색없다.
비우당교를 거치며 마지막 다리인 고산자교를 지나면 버들습지와 갈대 숲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청계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자연의 거리’다.
이 5개 구간을 맘 먹고 하루에 둘러봐도 좋겠지만 주말마다 한 곳씩 보물찾기 하듯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어디 가서 무얼 보고 즐길까
청계광장, 서울광장 등이 위치한 축제의 거리에서는 청계천 새물맞이 축제를 비롯, 다양한 축제가 예정돼 있다. 청계광장서 조금 떨어진 덕수궁의 왕궁수문장 교대의식도 볼거리다. 젊은이들은 종로의 시네큐브, 코아아트홀, 시네코아 같은 개봉관에서 영화 한편을 본 뒤 청계 야경을 즐겨도 좋다. 인근의 일민미술관이나 신문박물관, 서울갤러리 등은 주말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쇼핑의 거리에 접어들면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를 들러보자. 문화재 감상은 물론이고 연못과 울창한 숲길이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보행자 전용인 청계 4~5가 사이 방산시장 앞 새벽다리도 소문난 명물. 종로3가는 서울극장, 피카디리극장, 단성사 등 오래된 영화관이 몰려 있어 ‘골든 트라이앵글’로도 불렸다.
패션의 거리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념한 전태일 거리, 청계 6~7가 사이의 오간수문터(조선시대 수문)가 눈길을 끈다. 전태일 거리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에 기부금을 낸 시민의 이름·소망이 적힌 동판 6,000여개가 깔려 있다. 열사가 분신한 평화시장 모퉁이에는 전태일 열사의 말로 채워진 ‘말의 꽃을 든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이 구간은 갖가지 의류와 장신구를 저렴한 가격에 골라 살 수 있는 쇼핑몰이 즐비하다. 해 떨어질 무렵부터 동대문운동장·야구장 앞에 하나 둘 들어서는 노점상도 새벽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역사의 거리에는 청계빨래터(다산교~영도교), 소망의 벽(황학교~비우당교), 황학벽천(황학교~비우당교), 동묘공원이 있다. 다산교 인근 차인동에 위치한 동묘는 보물 제142호로 삼국지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과거에는 무과 응시자들이 반드시 이곳을 참배했다고 한다. 중국의 사당 양식대로 화려하게 지어져 어딘지 모르게 우리 궁궐과 다른 맛이 있다. 인근 삼일 아파트 일대는 고달팠던 서울 개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또 다른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는 황학동 벼룩시장이 있다. 중고·저가품만 팔아 다른 곳과 구별되는 황학동 시장에서는 말 잘하면, 운 좋으면 싼 값에 괜찮은 물건을 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의 거리는 충주 사과나무길, 상주 감나무길, 버들습지가 명소다. 지난달 26일 개장한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는 청계천 역사와 문화·복원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청계천도 식후경
축제의 거리 주변은 워낙 음식점이 다양해 먹고 싶은 것을 먼저 정한 후 비슷한 곳 가운데 선택하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청계 광장 옆 ‘JS 텍사스’처럼 야외 테라스를 갖춘 노천 카페나 맥주집이 즐비하다. 점심 때 커피, 퇴근 후 생맥주 한잔이 제격이다. 유명 음식점으로는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관철동 삼겹살집 ‘떡삼시대’나 화로구이 전문점 ‘화로연’, 이탈리아 파스타 전문점 ‘뽀모도로’, 청계천이 한 눈에 보이는 스파게티 전문점 ‘몰리제’ 등이 있다. 장통교 옆 젊은이 취향의 ‘불닭집’ 등도 최근 산뜻하게 단장을 마쳤다.
쇼핑의 거리에서는 광장시장 안 먹자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큰 길 한복판에 늘어선 좌판만도 줄잡아 200여개. 국수, 빈대떡, 파전, 족발, 순대, 비빔밥 등 비싸야 5,000원을 넘지 않아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방산시장 한 귀퉁이의 우래옥이나 이북식 냉면전문집 ‘을지면옥’도 식도락가 사이에 꽤 알려져 있다.
청계7가(패션의 거리)에서 흥인동 쪽으로 틀면 신당동 원조 떡볶이를 맛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중·고생들 사이에 인기있던 유서 깊은 동네다. 대부분 하루 24시간 영업한다. 마복림 할머니집 등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역사의 거리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황학동 4거리의 곱창골목이 명물이다. 대부분 20년 이상 곱창을 팔아 일가를 이루고 있다. 상인들은 최근에는 직장인뿐 아니라 데이트족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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