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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집 가훈 및 그 내력

풍월 사선암 2006. 2. 14. 17:48

 

경주 최부자집 가훈 및 그 내력

 

300년 동안 부를 지켜온 "최부자 집" 이라? 년간 지속되어 온 경기 침체로 인해, 하루 사는 것도 각박한 그 당시 사회에서 어떻게 하여 부자가 되었으며, 또한 그 부를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 낼수 있었을까? 우선 '최부자'라 하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부를 지켜온 가문이다. 최부자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졌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거의 모두 ''를 일구고, 당대에 망했거나 길어야 3대까지도 가기가 어려웠다.

 

'경주 최부자'17세손인 최진립(1568-1636)과 그의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최국선(1631-1682)으로 부터 28세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는 약 300년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말하는 것으로 최부자 집안은 병자호란때 숨진 최진립(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의 공신 토지를 기반으로 만석의 재산을 일컸다, 최진립은 병자호란때 왕명에 의하여 공주 영장(3품 당상직)으로 군사를 이끌고 청군과 싸우다 용인 험천에서 전사 하였다. 만석지기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1568-1636)에서 전재산을 영남대 설립에 기부한 12대 최준(1884-1970)까지를 말한다.

 

1947년에 대부분의 재산을 영남대 설립에 기부해, 부자 가문의 막이 내렸다, 후손들은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다. 영남대학교는 19473월 최준에 의해서 '대구문리과 대학'으로 개교 하여 1947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을 인가 받고 196712월 학교법인을 '영남대학교'로 교명을 변경 하였다. 최준은 대학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 사회운동가, 교육인으로서 본관은 경주, "경주 최부자 12"로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져 있다(198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대통령표창을 추서 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다.)

 

 

최부자 가문의 육연

(자신을 지키는 교훈)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대인애연(大人靄然) :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고,

유사감연(有事敢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패했을 때는 태연히 행동한다.

 

최부자 가문의 육훈

(집안을 다스리는 교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최부자의 고택(옛집)7대인 최인경(1743-1804)대에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속칭 "게무덤(물이 모이는 기름진 땅)" 에서 이곳(경주시 교동)으로 옮겨 왔으며, 최부자의 옛집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부자의 옛집 "경주시 교동" (방이 99개나 되었다 한다)

 

경주교동 최씨고택[慶州崔富子屋]은 경주최씨 최언경(崔彦璥 1743~1804)이 이곳(경주시 교동)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약 2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이전까지는 최부자집의 파시조(派始祖)인 최진립(崔震立)부터 약 200년 동안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 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교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경주 내남면 게무덤에서 7대를 내려오면서 살았고 교동에서 5대를 만석꾼으로 유지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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