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교실/명리학

도대체 占이 뭐기에...

풍월 사선암 2006. 2. 9. 10:53

도대체 占이 뭐기에...

 

우리나라 사람은 답답한 문제가 생기면 흔히 “점이나 보러 갈까?”라고 말한다. 대학입시가 다가오면 유명한 역술원에서는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일이 생긴다. 혼기(婚期) 넘긴 자녀를 둔 부모나 짝 없는 노총각, 노처녀도 점을 자주 본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김모(여ㆍ34)씨는 소문난 ‘점 매니아’. 처음엔 언제쯤 결혼을 할지, 애인이 생길지 궁금해 재미로 시작한 점집 나들이가 이젠 일상사처럼 되었다. “회사를 옮길 때나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끝낼 때, 선후배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등 선택이나 판단이 필요할 때 주로 점을 보러 가요. 한 군데서만 물어보기보다는 두세 군데 다녀보고 공통점을 취합해 선택의 기준으로 삼죠.”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점을 활용한다는 주장이다. 홍대앞에서 타로카드점(그림이 그려진 타로라는 카드로 보는 서양점)을 가장 잘 보는 곳, 사진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까지 맞힌다는 ‘신사동 보살’ 등은 그녀의 입소문을 타고 주변에 전파되었다. “압구정 사주카페의 ○○도사는 이제 신기가 떨어져 잘 못 맞힌다”는 것까지, 그녀의 대화 주제는 점과 관련되거나 점술업계의 새로운 뉴스가 대부분이다. 주변 사람도 점을 보러갈 때 어디가 용한지 그녀의 조언을 구할 정도다.


점은 흔히 여성, 그 중에서도 가정주부가 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승진을 앞둔 대기업 간부나 사업가도 점집의 단골손님.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사업을 하는 최모(45)씨는 명예퇴직을 신청할 때부터 점을 보기 시작했다. “사업하면서 무엇이 옳은지 분간이 서지 않을 때 아내에게 말하면, 아내는 그저 ‘욕심내지 말라’고만 하죠. 때론 며칠을 끙끙거리며 고민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업 관련 문제는 집사람보다 철학관을 찾아 의논하는 게 더 속 편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궁금해하는 데는 남녀가 따로 없다. 선거철도 점집이 바빠지는 시기다. 거물급 정치인치고 유명 역술인의 손님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대권주자는 자신이 바로 예언 속의 ‘정도령’이라고 주장하고, 선거 후에는 “내 예언이 적중했다”고 주장하는 역술인이 나타난다. 재벌가에서는 선친의 묘를 이장할 때도 유명한 풍수지리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면접 볼 때 관상을 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점 한번 안 보는 게 보는 것보다 더 힘든 현실이다. ‘점술 밸리’가 형성되고, 건물 하나에 온갖 종류의 역술인이 모여 원하는 종류의 점술 쇼핑을 골라서 할 수 있는 빌딩도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제 점은 연간 2조원 규모의 시장을 가진 거대한 비즈니스로 성장했다.


한국인이 점을 좋아하는 건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농업이 주된 산업이던 시대에는 점에 대한 의존도가 지금보다 더 높았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농점(農占ㆍ그 해 농사의 풍흉을 알아보려고 치는 점)이나 동물점(까마귀떼의 등장 등 동물의 행동으로 길흉을 알아보는 점)은 과학에 가깝다. 해몽점(꿈의 내용을 푸는 점)이나 관상, 토정비결 등은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져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서양의 별점과 타로, 우리나라의 띠와는 다른 일본의 동물점(사람 특성을 특정 동물의 행태와 비교해 파악하는 점) 등이 수입돼 젊은층의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 휴대폰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개발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점 자체가 흥미로운 주제로 부상해 이제는 세계의 각종 점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설을 맞아 전국 각지의 점집은 또다시 신년운세를 보러 오는 사람으로 대목을 맞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고 또 특색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처럼 큰일을 앞두고 점보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대체 무엇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점을 보러 가게 하는 걸까?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며 불안을 느낄수록 미리 대비를 하고 싶어한다”면서 “유난히 불안정하고 변화가 잦은 우리 사회구조 속에서 구성원들은 그만큼 불안을 느끼며, 안정적인 미래를 대비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언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 또는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점이란 때론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에 대처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특성과 점술 사이의 상관관계를 좀더 들여다보자.


불확실한 현실, 불안한 미래

원칙이 통하지 않고, 변화가 잦고 불안정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살펴보면, 왜 한국인이 점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정치는 언제나 불안하고, 사회의 변동도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보다 폭이 큰 편이다. 오랜 정치적 혼란에 따른 사회적 격동으로 비리와 편법을 동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다양한 계층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통적 유교 윤리와 다양한 서양의 사상이 혼재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회도 드물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보다 정치·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가가, 농부보다는 바다에서 일해야 하는 어촌 사람이 점을 더 많이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또한 그것이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미래와 관련될 때 더욱 강한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다. 점을 보는 행위는 그러한 본능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으로 지적 호기심의 충족과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욕구의 충족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점은 다양한 초능력 중에서도 예지 능력 위주다. 신 내린 집에서 보는 신점(神占)이든, 주역으로 풀어주는 철학관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유능한 역술인을 분별하는 기준 역시 “지나간 과거사를 잘 맞히는 것은 기본, 앞일을 잘 맞혀야 진짜 족집게”라고 말하는 데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현실과 예측불가능한 미래 때문에 점술가나 역술인을 찾는다. 결국 점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앞날에 대해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으며, 한국인이 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권위에 의지

점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을 잘 아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조언보다는 낯 모르는 역술인에게 들은 내용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경우가 많다. 서양사람도 동양의 다른 나라 사람도 점을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 유난히 점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점을 보고 난 후 그 내용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데 있다. 점을 보고 나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 내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예언은 확신으로 바뀌기도 한다. 대부분의 점술가나 역술인이 노처녀나 노총각에게는 “올해 결혼 운이 있다”고 하고, 사업가에게는 “조금만 더 참으면 곧 풀린다”고 말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시하는 방향을 곧이곧대로 따르진 않더라도 그 말에 대한 믿음만은 지인의 조언에 대한 믿음을 뛰어넘는다. 그 이유는 무얼까?


우리 사회가 겨우 이룩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힘겹게 현실에 적응하려 하면 할수록 앞날은 더욱 예측할 수 없어졌다. 문화가 다원화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개인이 적응해야 할 상황은 복잡해지면서 변함 없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권위는 사라졌다. 사회학적으로 봐도 문화가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는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보다 더 불안하다.


또한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엄청난 속도로 생성되고 있는 각종 정보다. 세계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들 만큼 발달한 인터넷 덕분에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넘치지만, 그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정보가 부족하고 통제되던 때보다 지금이 더 혼란스럽다. 정보란 불확실성을 줄여준다고 하지만, 알면 알수록 무엇이 옳다고 판단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종교로 그 불안함을 극복하려 애쓰고, 어떤 사람은 점을 보며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고자 애쓴다. 권위가 사라진 사회에서 역술인이나 점술가의 위압적인 태도가 때로는 권위와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인기 있는 역술인 가운데는 반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이야기조차 자신 있게 말한다. 위압적인 말투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 후에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듯 조언을 할수록 듣는 사람은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족집게 같은 점쟁이’는 이렇게 탄생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편리함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빠른 것’을 좋아한다는 건 이제 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 점과 무속이 가진 특성이 이러한 한국인의 코드와 부합한다는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점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오래 기도해도 확답을 들을 수 없고 현실이 아닌 내세에서의 행복을 보장하는 다른 종교에 비해, 점은 그 자리에서 예언을 들을 수 있다는 면에서 훨씬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근거가 불분명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확신을 주는 건 종교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역술인이나 무당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하늘의 소리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곧 하느님이나 신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철저한 대리인일 뿐이다.


철학관 앞에 걸린 신장대(점집을 표시하는 긴 막대)는 하늘과 교신하는 안테나이자 신탁을 전달한다는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근거는 들지 않고 확신만을 준다. 신점 역시 신의 능력을 빌려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뿐이다. 무속의 이런 특성은 한계이자 장점으로 작용해 보다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신을 믿는 비합리적인 사람만 점을 보는 것이 아니다. 점 보러 갈 때 하는 말처럼 단지 재미로만 보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현실적인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을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합리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왜 점에 의존하는가?


그건 점이나 무속도 나름대로 과학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 간 농경사회 속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에게 농점은 그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을 대신하는 과학적 기능이 있었다. 농점뿐 아니라 풍수(風水ㆍ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집, 무덤의 방위, 지형의 좋고 나쁨이 사람의 화복과 관계를 갖는다는 설), 관상, 수상(手相ㆍ손금으로 사람의 운수, 길흉을 판단하는 점), 주역(周易ㆍ음과 양의 이원으로 자연과 사회의 원리를 설명)도 일종의 통계학이다.


어떤 과학도 진리만으로 이뤄지진 않았고 그 속에 믿음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점술이나 역학을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몰아세울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동양적인 운명론에 대한 믿음

사회가 아무리 복잡 다변화하더라도 우리의 문화적인 바탕에는 동양적인 것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동양적인 운명론을 믿는 것도 한국인이 점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다.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정해진 숙명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명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점을 보러 간다. 운명에 대한 연구가 바로 역학과 점술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미 제도화된 고등종교나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변화를 인간이 따라가려면 무언가가 필요하다.


고민을 나눌 누군가의 不在

역사를 보면 점이란 신화에서 나온 것이며 하늘의 뜻이었다. 예언을 하려면 영험이 필요했고 영험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성직자를 찾는 것과 같았다. 현대사회에서 인정 받는 고등종교인 가톨릭의 신부나 불교의 고승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과 점술가에게 돈을 주고 점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근원은 같은 심리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점 보는 것은 여전히 신탁을 받는 것이지만 신화가 고등종교에 밀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신이라고 치부할 뿐이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무언가 비합리적인 힘에 의존할 때 일시적으로나마 심리적인 안정감과 불안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무속은 지금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능력을 이용하여 영(靈)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인에게는 믿음의 근거로 다가온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고민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외국에서는 정신과의사나 카운셀러를 찾아 상담하듯, 우리나라 사람은 점을 보고 역술인을 찾는다.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까지도 전문의나 전문가와 상담하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이유 중에는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도 무시할 수 없다. ‘정신과를 드나든다’는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 전문의의 상담을 받으려 하기보다 조용히 찾을 수 있는 점집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찾은 곳에서 듣는 이야기는 미래에 대한 대체적인 것을 알려 주기는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의 의지다.


점을 보러 가는 사람도 그 사실을 알지만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가 더 크다. 점은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상은 유용한 카운슬링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주카페나 인터넷 등에서 재미로 점을 본다는 젊은층에서 카운슬링에 대한 필요와 효과는 더 강하게 드러난다.


부모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친구나 선배와 고민을 얘기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지만 ‘유명한 무슨 선생’이 있는 사주카페에서는 속 시원한 조언이 나오기 때문이다. 역술인과 상담하는 동안 심신의 안정을 찾는다는 사람 가운데는 믿을 수 있는 혹은 자신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고민을 털어놓으며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 해체되고 맞벌이가 대세인 한국 사회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배우자와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점술가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워진 현실도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점술이 성행하는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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