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임계장 이야기' 펴낸 조정진씨

풍월 사선암 2020. 6. 12. 19:20

"삐뚤빼뚤 그의 유서… 남일 같지 않아 펑펑 울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박돈규기자의 2사 만루] '임계장 이야기' 펴낸 조정진씨
"내 자식 정규직 될 때까지, '임계장'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지난 15일 어느 광역시 배출물 집하장에서 만난 경비원 조정진씨. 어깨에 경찰처럼 ‘이파리’ 3개가 붙어 있다. 그는 “가스총도 없고 이 견장이 유일한 무기다. 무궁화를 단 경비원도 있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조씨는 이날 치아를 드러내지 않았다. 경비원으로 일하다 다쳐 앞니 세 대가 부러졌다고 했다.

 

"어이, 경비! 너 이 ××,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그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음식 쓰레기통을 씻다가 경비원 조정진(63)씨가 당한 갑질이다. 호통친 사람은 아파트 주민 김갑두. '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으로 붙인 별명이다. 이 작자 등쌀에 경비원 여럿이 그만뒀다. 40대 중반인 김갑두는 조씨를 세워놓고 한 시간이나 훈계했다. 그 뒤에도 마주칠 때마다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괴롭혔다.

"아파트 주민이 모두 김갑두는 아닙니다.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나쁜 사람 극소수, 이렇게 세 유형이 있어요. 고마운 사람도 많지만 아파트마다 악질이 한두 명씩 있습니다. 김갑두가 보기에 경비원은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지 사람이 아니에요. 잘못한 게 없어도 무릎 꿇고 빌어야 상황이 끝나요."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 최모(59)씨가 입주민 A(49)씨의 상습적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년퇴직 후 아파트나 버스 터미널 등에서 일해온 조정진씨는 "갑질을 당할 때마다 내 자존이 무너지고 삶의 의지가 희미해지는 경험을 했다"며 "고인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긴 유서, 서너 줄밖에 안 되는 그 마지막 외침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엉엉 울었다"고 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서 '임계장'이라 부른다. 어느 광역시 주상 복합 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근무하는 조씨가 틈틈이 쓴 일지(日誌)를 바탕으로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 刊)를 펴냈다. 경비원 눈에 비친 세상은 아슬아슬하다. 지난 15일에 만난 그는 "이번에 일어난 비극은 악질 한 명 때문에 아파트 주민 전체가 해를 입은 사건"이라며 "만행이 스무 날 동안 계속됐는데 비통하게도 우리 사회는 경비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남긴 유서. 맞춤법이 틀렸지만 ‘억울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라는 뜻이다. 

청년 실업이 낳은 노인 노동?

종이 상자, 스티로폼, 음식 쓰레기…. 지하 1층 배출물 집하장은 빌딩의 항문 같았다. 밀걸레와 수도꼭지, 널어놓은 수건과 소독약, 낡은 밤색 소파와 전기장판도 보였다. 천장에는 굵직한 파이프들이 내장처럼 드러나 있었다. 늙은 환풍기가 그르렁그르렁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곳에서 일하나요.

"건물 밖으로 내보낼 온갖 쓰레기가 여기에 모입니다. 어수선해 보여도 제가 전에 일하던 곳들보다는 깨끗해요. 소독을 하거나 택배를 받거나 할 땐 위로 올라가요. 코로나 사태로 택배가 10배쯤 늘었고 날마다 방역 작업도 합니다."

―38년간 공기업에서 근무했다고 들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신의 직장'인데 밝히고 싶지 않아요. 2016년 퇴직하고 보니 그 경력은 녹슨 훈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4년 동안 4번 해고됐고 이곳이 다섯 번째 일터예요. 동료 경비원들에게 공기업 출신이라고 했다가 몇 달 동안 왕따를 당했어요. 그다음부턴 이력서에도 안 적어요."

―노후 준비를 안 했나요.

"저 나름대로는 했는데 삶이 그렇듯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어요. 딸은 출가했고 10년 터울인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퇴직할 무렵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는 거예요. 문과생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이 10%밖에 안 된다면서. '학비 댈 능력이 없으니 가지 마라' 할 순 없잖아요. 퇴직 후 3년 이상 고액 교육비를 감당하며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부동산은요?

"지방 중소도시에 내 집이 있었어요. 하지만 2010년 광역시로 발령받아 보니 그쪽을 팔아 이쪽에 아파트를 마련한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더군요. 주택 담보대출과 직장인 신용 대출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퇴직하자마자 은행은 '신용이 사라져 대출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고 통보했어요. 국민연금은 조기에 받으면 평생 월 수령액이 많이 축난다고 담당자가 말렸습니다. 결국 생활 정보지 구인 광고를 들여다보게 됐지요."

―어떤 일자리들이었나요.

"이 도시만 해도 하루에 2만개가 나옵니다. 대부분 더럽고 힘들어요. 경비나 청소원, 주차 관리원 같은 단순 노무직인데 청년이 피하니까 노인에게 오는 일자리입니다. 인공지능(AI)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할 수도 없는 직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군요.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배출 기능이 멈출 테니까요. 시급(時給) 노동을 하는 제 동료들 중에는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 공무원을 준비하는 자녀가 많아요. 노인 노동 문제는 청년의 취업 절벽과 불행하게 얽혀 있습니다. '개천에서 정규직 나기 어려운' 시대잖아요. 아들딸 비정규직 시키지 않으려고 늙은 아빠·엄마가 비정규직이 됩니다. 아이러니죠. 자식이 합격할 때까지 기약 없는 세월을 쓰레기 더미와 매연, 배출 가스 속에서 보내는 거예요."

―일터 환경은 어떤가요.

"제가 머물던 경비원 공동 숙소에선 요즘도 16명이 같은 이불과 베개로 잠을 잡니다. 한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누구도 감기를 피하지 못했어요. 거기서 일하는 동료를 최근에 만났는데 '닭장 같은 콜센터에 비하면 우리가 낫다'고 하더군요. 씁쓸했어요."

경비원 조정진씨가 지난 15일 한 주상 복합 건물의 배출물 집하장에서 종이 상자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노인 노동자에게 위험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아플 때 하루 이틀 질병 휴가가 허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는 잡일만 100가지

은퇴 후 첫 직장은 한 고속버스 회사 배차 계장. 면접관은 “화려한 시절은 갔으니 빨리 잊어야 이 바닥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조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 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무슨 뜻입니까.

“버스를 운행하려면 노선 하나당 배차원과 탁송원, 최소 두 명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회사는 운행 세 노선을 저한테 맡겼어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배차하며 1대당 10건 이상 탁송 소화물을 실어야 했습니다. 대합실에서 ‘대구! 승차하세요’를 외치면서요. 한여름에는 쏟아진 땀이 안경알을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임계장’으로 불렸지요.

“처음에는 성씨를 잘못 아나 싶었습니다. ‘임시 계약직’에 어른 ‘장(丈)’ 자를 덧붙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일컫는 말이더라고요. 용역 회사들은 ‘고다자’라고도 불러요.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입니다.”

―어쩌다 해고됐나요.

“급하게 짐을 싣다 화물칸 덮개에 머리를 부딪혔어요. 넘어져 허리도 다쳤지요. 업무상 재해로 생각했고 질병 휴가를 신청했더니 ‘버스 회사에서 업무상 재해는 교통사고 하나뿐인데 책임을 떠민다’며 즉시 잘랐습니다. 임계장의 세계에서 해고와 채용은 일상적이었어요. 아파트 경비에 지원했는데 ‘19명 중 제일 젊다’는 이유로 제가 뽑혔습니다.”

 

―아파트 경비는 어떤 일을 하나요.

“경비원 일과표에 적힌 건 실제 하는 일의 10분의 1도 안 돼요. 두 동 일곱 라인 210가구를 제가 담당했어요. 초소는 7개인데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경비 인원을 줄여 과거에 7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했습니다. 재활용 분리 수거, 택배 관리, 주차 관리, 음식 쓰레기 처리, 공용 구역 청소, 화단에 물 주기, 조경수 가지치기, 잡초 뽑기, 민원 처리 등 잡일이 100가지가 넘어요. 관리 사무소, 자치회, 부녀회, 동대표들이 별의별 지시를 다 내립니다. 경비원은 ‘늙은 소’ 취급을 받지요.”

―늙은 소요?

“소가 굴레를 쓰고 일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안 보잖아요. 노인이 일하면 혹사를 당해도 당연하게들 봅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됐어요. 일하다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노환이래요. 방한복이 필요하다고 하면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하고, 방진 마스크를 요청하면 ‘노인이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그러느냐’며 혀를 차고….”

―최근에 일어난 경비원의 비극은 이중 주차한 차를 밀자 입주민이 폭력을 휘두르며 시작됐습니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오래된 아파트를 경비원들은 꺼립니다. 제가 있던 곳도 지상 주차장만 있었는데 차량이 수용 능력을 300%나 초과했어요. 경비원의 새벽은 이중 삼중으로 주차한 차를 옮기는 데 다 바쳐집니다. 스마트키를 장착한 차는 오토 브레이크를 설정해 놓은 경우가 많아 밀어도 굴러가지 않아요. 차주에게 일일이 전화하거나 열쇠를 넘겨받아야 합니다.”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이런 날씨가 제일 반갑다고요?

“비 오는 날은 공동 작업이 없고 밤까지 오면 주차 단속도 면제됩니다. 불법 주차 스티커 때문에 멱살 잡히거나 욕설을 듣는 곤욕을 피할 수 있어요. 경비원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낙엽, 꽃잎은 전부 치워야 할 쓰레기입니다. ‘빗방울님’만 예외지요(웃음). 덕분에 라디오 들을 여유도 생기고요.”

―평소에는 온갖 민원의 총알받이일 텐데.

“경비원은 절대 주민과 맞서면 안 돼요. 스티커를 붙였더니 ‘대대손손 경비나 해 처먹어라!’ 욕을 했어요. 또 ‘누가 내 차를 박아 버리고 도망갔는데 넌 뭐하느라고 그것도 못 봤어? 당장 찾아내!’ 고함을 질렀지요.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자른다’였습니다. 근로계약서에 ‘사회 통념상 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요. 서러워도 그저 목을 내놓고 일해야 해요. 2017년엔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오르자 그 상승분 440원을 주기 싫어 무급 휴게 시간을 늘리더군요. 경비원에게 휴게 시간은 임금이 쉬는 시간이지 몸이 쉬는 시간은 아닙니다. 노인 노동 현장은 거의 무법천지예요.”

―항의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동료들은 체념하고 살았지만 저는 용납이 안 됐어요. 그런데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그런 부당한 처사는 비정규 일터에서 일상적이다. 사례가 너무 많아서 행정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해고는 불법이 아니고, 계약 자체의 무효를 법정에서 다투려면 몇 년이 걸릴 거라고도 했지요. 충격을 받았고 절망했습니다.”

사진은 ‘임계장 이야기’의 바탕이 된 조씨의 수첩. 억울함과 설움, 하소연을 적었다.

 

노인 일자리의 질도 살펴야

그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설움과 하소연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화단에 양동이로 물을 퍼부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일, 고층 빌딩에서 본부장 사모님 차량을 몰라보고 호루라기를 불었다고 해고당한 일…. 버스 터미널 보안 요원으로 일하던 2018년 여름에 쓰러져 실직하곤 입원 중에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임계장 이야기’는 지난 3월 세상에 나와 1만부 가까이 팔렸다.

―치료는 다 끝났나요.

“아뇨. 척추에 구멍을 뚫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이튿날 병상에 누워 있는데 전화로 해고당했습니다. 척추염은 치료했지만 항생제 부작용으로 콩팥이 상했어요. 뭐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24시간 격일 근무라는 조건을 이용해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서 투잡을 뛰기도 했더군요.

“아파트에서 주는 급여로 생계를 유지할 순 있어도 생활엔 턱없이 모자랐어요. 로스쿨 학비도 대야 했고. ‘일을 찾아보겠다’는 아내를 막았습니다. 제가 동시에 두 탕을 뛰었는데 그게 무리였어요. 강철 같은 정신은 있지만 강철 같은 몸이란 건 없지요.”

―지금 이 일터는 어떤가요.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니 좋아요. 노동 강도도 제일 가볍고요. 지난달에 재계약 통보를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제게는 천국 같은 직장이에요.”

―책을 읽은 동료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아무도 ‘잘 썼다’고 안 해요. 자기네가 지독하게 당한 갑질이 빠졌다고 서운한 거예요. ‘더 적나라하게 썼다면 세상이 좀 더 진지한 반응을 보였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듭니다. 하지만 서울 그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실에 붙여놓은 쪽지들 보셨지요? 입주민 절대다수는 그렇게 따스한 사람들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막아보자고 진통제 맞아가며 병상에서 썼는데, 경비원이 또 극단적 선택을 해 안타깝고 무력감을 느껴요.”

―가족은 뭐라 하나요.

“애들은 모르고 아내만 대충 알 텐데 책을 안 보여줬어요.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부끄럽진 않지만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지금 두 가지 공포가 있습니다. 아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애들이 알고 아파하면 어떡하나. 이렇게 일간지에 실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으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합니다.”

―취재에는 왜 응했습니까.

“저는 극렬한 노동운동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부는 노인 일자리 수뿐 아니라 질, 안전과 보건도 살펴야 합니다. 그 불쌍한 경비원은 스무 날 동안 죽음을 머리에 두고 눈으로는 두 딸을 보면서 번민했을 거예요. 제가 만난 아파트 주민은 대부분 선량하고 상식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실상을 알게 되면 경비원의 노동 여건이 개선될 거라고 믿습니다.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렇게 문제를 알리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동료 경비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약자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까지 하느님이 다 세고 계십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기로 약속해요.”

노인 노동자는 450만명에 이른다. 임계장은 우리 부모·형제의 이름일 수도 있고 은퇴 후의 삶일 수도 있다. 환풍기 소음을 뚫고 그가 말했다. “나이 들어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어느 수녀원에서 봤는데, 원장 수녀님으로 계셨던 분이 정년퇴직 후 경비실에 앉아 계셨어요. 안내도 하고 풀도 뽑고 하셨지만 아무도 그분을 멸시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온화한 눈빛으로 사람들 살펴주고 존중받는 노동, 그게 제가 꿈꾸는 경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