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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곳은 아파트 지하실 뿐” 이 시대의 노인 노동

풍월 사선암 2020. 4. 26. 16:00

쉴 곳은 아파트 지하실 뿐이 시대의 노인 노동


일하는 노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정오가 되자 김정국씨(가명·60)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김씨가 찾은 곳은 아파트 지하실이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는 깜깜했다. 김씨가 스위치를 올리자 그제야 앞이 보였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노란색·파란색·빨간색 배관부터 눈에 들어왔다.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지하실 한쪽에 김씨가 마련한 공간이 보였다. 침대와 담요, 책상, 냉장고, 옷장, 선풍기 등 살림살이가 빼곡했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서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물었다. 김씨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어쩌겠어요.” 2000세대가 넘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서 김씨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지하실뿐이다.


순식간에 무너진 중산층


김씨는 성실하게 살았다. 20대에는 전국 곳곳 건설현장을 누비며 일했다. 1980년대 중반, 건설 호황이 끝나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30대에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이 둘을 키웠고 집을 샀다. 40대 중반, 아내가 시작한 식당도 잘됐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중산층의 삶이라 생각했다.


정년퇴직하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부부 모두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자식들은 모두 30대 중반, 이미 자기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자식들의 결혼자금이 걱정되긴 했지만 집을 팔고 전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도움은 못 줘도 부부가 살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삶의 토대는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이 쓰러진 게 시작이었다. 아내가 식당을 쉬는 날이 잦아졌고 수익이 줄었다. 공무원 월급보다 식당을 유지하는 게 나아 보였다. 김씨는 20년 만에 일을 관뒀다. 돈이 급했던 김씨는 연금 대신 일시금을 택했다. 그 돈은 모두 식당에 들어갔고 1년 뒤 식당은 문을 닫았다.


50대 초반,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엇이 없었다. 20년 공무원 경력은 재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건설현장을 찾아 3년을 일했다. 56, 김씨는 자신이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 노인으로 규정되는 나이도 아니다. 하지만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인 일자리밖에 없었다.


주차관리원·경비원 등을 전전했다. 모두 2교대 또는 3교대를 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임금은 늘 110만원에서 190만원 사이를 오갔다. 일하는 시간을 따지면 최저임금 이하다. 경비원은 명목상 8시간에서 10시간가량 휴게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에 쉬는 경비원은 없다. 음식물 쓰레기·화단 청소·택배 정리 등 일이 넘쳐난다.


심지어 김씨의 야간 휴게시간은 3시간, 4시간으로 나눠져 있다. 새벽에도 차와 주민은 오가기 때문이다. 각 동의 경비원들이 교대로 한 시간씩 근무한다. 김씨는 “3시간 자고 1시간 일하고 다시 4시간 자는 게 사람 몸으로 가능합니까? 쉬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야간에 일하는 경비원이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오르자 해고됐다.


경비원 김정국씨(가명·60)가 쉬는 지하실 일부. 해가 들지 않고 배관이 노출돼 있어 습한 환경이다.


일하는 노인?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운이 나빴던 걸까. 김씨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김씨의 의견이 아니다. 숫자가 김씨의 얘기를 뒷받침한다. 60대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노인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02월 고용동향을 보면 60세 이상 인구 1171만 명 중 468만 명(39.9%)이 일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2680만 명) 17%가량이 60대 이상인 셈이다.


높은 고용률은 일하는 노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60대 이상 남성의 고용률은 50.7%에 이른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기는 여가를 중심으로 삶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노후 소득보장이 불충분한 한국사회에서 고령자에게 노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468만 명에 이르는 노인들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65세 이상 노인 노동시장 동향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는 절반 이상의 노인이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2017년 농림어업 종사자 비율은 27.4%까지 떨어졌다. 대신 보건복지업(간병인·요양보호사), 사업관리지원서비스업(경비원·청소부), 공공행정(공공근로)의 취업자 비중이 증가했다.


이런 일자리 상당수는 임금이 낮고 해고 위험은 높다. 노동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최 교수는 고령자는 주로 재취업자이며 (노인은 노동생산성이 낮을 것이라는) 시각을 고려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수용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74세의 연평균 소득은 1275만원이다.


이는 전체빈곤율과 노인빈곤율의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빈곤율과 전체빈곤율 격차는 1.1%(2015) 수준이다. 은퇴 후 계층 이동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의 격차는 34.4%로 나타났다. 이른바 소득절벽을 겪으면서 보통의 삶을 영위했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김씨가 바로 이 34.4% 중 한 명이다.


게다가 한번 빈곤층으로 들어가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김은영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빈곤노인의 은퇴 후 노동시장 재취업연구에서 한번 빈곤 상태에 놓인 노인은 노년기를 빈곤하게 보낼 가능성이 높고 빈곤 지속기간이 증가할수록 빈곤 탈출률이 감소한다빈곤 진입과 탈출에 은퇴가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소득절벽을 겪는 방식의 재취업이 아니라 성별·지역·연령별로 맞춤화된 고용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지하실에 있는 김씨의 냉장고. 냉장고가 텅 비어있다.


노후 소득보장 높여야


일하는 노인은 증가해왔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일단 노인인구라는 분모 자체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2017년 이미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로 들어섰다. 65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2026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책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먼저 은퇴제도의 강화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전까지 기업 안에서 근로시간 단축, 정부의 부분 실업급여 지급 등으로 고용안정을 이루고 이후에는 정년 후 재고용, 파트타임 직무로의 재취업을 통해 고용연장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공공근로를 두고 일각에서는 돈 주고 일자리를 만든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건강하게 일하는 노인이 많을수록 복지와 의료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 특히 한국처럼 노후 소득보장이 낮은 나라일수록 이런 일자리는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노후 소득보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모아놓은 재산이 없는 한, 은퇴한 노인들의 주요 소득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노인가구의 전체소득에서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58.6%이고, 프랑스는 80%가 넘는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고령층의 높은 고용률은 기본적으로 노후소득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한국과 해외의 노후보장은 수준 자체가 다르다당장 논의가 가능한 것은 국민연금과 달리 1차적 연금 역할을 해주는 기 초연금을 더 광범위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사각지대가 많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김씨가 일하던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 공고문이 붙었다. 공고문에는 경비 용역업체 재입찰이 안건으로 쓰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씨는 용역업체가 바뀔지, 바뀐다면 자신은 고용승계가 되는 것인지, 해고되는 것인지, 몇 명의 경비원이 해고될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또 담담하게 답했다.


나가라면 나가야죠. 노인네가 무슨 힘이 있나요.”

 

경향신문 이하늬 기자

입력 : 2020.04.26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