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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우리 몸에 남길 흔적… '확찐자' '살천지' '비만희'

풍월 사선암 2020. 4. 21. 22:35

[김철중의 생로병사] 코로나가 우리 몸에 남길 흔적'확찐자' '살천지' '비만희'

 

사회적 거리 두기 석 달, 대사성 질환 늘어먹은 만큼 움직여라

암은 잠시만 방치해도 급속 악화, 건강검진·암검진 미루면 안 돼

바이러스에 시달린 몸과 마음 달래줘야이제는 힐링이다

 

방역을 위해 억지로 흩어져 지내야 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그 기원은 1918년 스페인 독감 팬데믹 때다. 기실 이 인플루엔자의 시작은 스페인이 아니었다. 어디서 유래됐는지 잘 모른다. 미국 중부 캔자스, 프랑스 북부 병원 등 설이 분분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당시 참전국은 전염병 소식을 통제했는데, 중립국 스페인은 독감 보도를 자유롭게 했다. 스페인을 통해 인플루엔자 폭증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나중에 스페인 국왕이 감염돼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현재, 스페인은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20만명이다. 인구수 대비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됐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스페인 독감은 2년에 걸쳐 3()가 돌면서 지구인 넷 중 하나를 감염시켰다. 18억 인구에서 사망자가 5000만명 이상 나왔다. 한반도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구 선생도 '확진자'였음을 '백범일지'에 남겼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던 시절, 스페인 독감 종식은 앓고 나은 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치유된 사람들의 집단면역으로 끝을 봤다. 말 그대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됐다.

 

19189, 미국 주요 도시들은 유럽서 벌어진 전쟁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는 군인 600여 명이 이미 스페인 독감에 걸려 있었는데, 행사가 그대로 진행됐다. 반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는 퍼레이드를 취소하고, 대중 모임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취했다. 한 달 후, 필라델피아서 1만명 이상이 독감으로 생명을 잃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사망자가 700명 이하에 머물렀다. 당시 어떤 지역은 감염자가 속출했고, 다른 지역은 확진자가 뜸했는데, 학교·극장·교회·집회 등을 일찍 차단한 도시의 사망률이 훨씬 낮았다. 그때부터 사람 대 사람 접촉으로 전염되는 감염병 유행 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대한 방역 수단임을 깨달았다. 코로나 백신과 특효약이 없는 지금도 그렇다.

 

 

 

거리 두기가 지겹고 힘들어도 당분간 따라야 한다. 다만 그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확찐자' '살천지' '비만희' 등이 코로나 유행어가 됐듯이, 거리 두기 석 달 만에 대사성 질환이 점차 늘고 있다. 만성질환 진료 의사들 얘기로는 예전에 비해 혈압이 높아지고, 혈당이 오르고, 고지혈증이 늘고 있다. 체중과 칼로리는 수학인지라, 움직인 만큼 먹고, 먹은 만큼 움직여야 한다. 거리 두고 나름대로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건강검진센터는 지난 두 달간 거의 휴업 수준이 됐다. 3월에 조기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 대신 내시경 시술만으로 완치되었을 검진자가 대거 사라졌다. 4월에 초기 대장암 확진을 받고 수술로 떼낼 상태로 발견돼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을 암환자가 대폭 줄었다. 서울의대 암예방관리팀 연구 논문에 따르면,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수술이 1개월 이상 지연된 환자는 1개월 이내 수술받은 환자보다 5년 후 사망률이 높게 나왔다. 유방암은 59%, 직장암은 28% 높았다. 의학계에서 1개월 방치는 유방암 환자 상태가 암 전이(轉移)로 급속히 악화될 수 있는 기간으로 본다. 암 검진 휴면이 암 진단과 그에 따른 수술을 미뤄놨으니, 그 여파가 1개월 수술 지연과 같은 셈이다.

 

지금이라도 정기 검진에 나서야 한다. 요새는 병원이 제일 안전하다. 정상 체온이어야 하고, 마스크를 한시라도 안 쓰면 돌아다닐 수 없는 곳이니 말이다. '맨얼굴 용의자'는 병원 내 모든 동선을 비추는 CCTV와 보안요원의 눈을 벗어나기 어렵다. 코로나 안 걸리려고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필요한 진료와 검진을 받으시라. 이러다 다른 병에 치일 수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조사에 따르면, 장기간 코로나 사태로 국민 10명 중 2명이 주변 관심이 필요할 정도의 불안·우울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 금융 위기 때도 그랬다. 급격한 사회 변화는 신체에도 흔적을 남긴다. 이제는 힐링이다. 바이러스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달래고 보듬어 줘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질병 악화가 일어나고,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고,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고, 끼리끼리 문화가 고착돼선 곤란하다. 물리적 거리 두기만큼 심리적 껴안기를 할 때다.

 

조선일보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입력 2020.04.20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