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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다정가(多情歌), 하여가(何如歌)

풍월 사선암 2020. 1. 16. 11:54

[시조가 있는 아침] 다정가(多情歌)

 

다정가(多情歌)

이조년 (1269-1343)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 이뤄 하노라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는 새해

 

은하수가 흐르는 자정 무렵, 달빛에 비친 배꽃이 희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슬피 우는 두견새가 나의 이 한 가닥 연심(戀心)을 알겠느냐마는 이렇게 잠 못 들어 하니 다정도 병인가 한다.


고려 충혜왕 때의 문신 이조년(李兆年)이 쓴 연시다. 시조의 초창기 때 사대부가 이런 사랑의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야말로 연애시의 백미(白眉)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향(安珦)의 제자로 벼슬이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던 그는 충혜왕의 황음(荒淫)을 여러 차례 충간하다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한 강직한 선비였다. 이 시조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星州)에서 만년을 보낼 때 임금의 일을 걱정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던 시절, 고려 중기의 호족이었던 이장경(李長庚)은 아들들의 장수를 빌며 이름을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라고 지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형제가 길을 가다 황금 두 덩이를 주웠으나 의가 상할까 봐 강에 던졌다는 의좋은 형제는 억년과 조년의 이야기로 전한다.


새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열어갔으면······


유자효(시인)

 

[시조가 있는 아침] 하여가(何如歌)


 

하여가(何如歌)

이방원 (1367-1422)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왕조의 존망을 가른 시조


우리는 시조 한 수에 왕조의 존망이 엇갈린 역사가 있다. 바로 이방원의 이 작품이다. 역성혁명을 꿈꾸며 세력을 키워가던 이성계가 사냥하다가 낙마를 해서 벽란도에 드러누웠다. 정몽주는 이 기회에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눈치를 챈 이방원이 이성계를 그날 밤 개경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실패하였다. 정몽주를 포섭하라는 이성계의 지시를 받은 이방원이 병문안 온 정몽주에게 던진 노래가 바로 이 시조였다. 그때 이방원의 나이 26. 아버지의 친구이자 정적인 30세 연상의 수문하시중을 당돌하게도 감히 설득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 정몽주도 시조로 맞받아쳤으니 그 유명한 단심가(丹心歌)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시조 한 편으로 회유를 포기한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고려는 망했다. 서슬 퍼런 시의 대결이며, 그 결과는 왕조의 몰락과 새 왕조의 탄생으로 귀결되었으니 그야말로 무서운 시조의 힘이다.

 

유자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