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 年 - 피천득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有限)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되는 인생.
우리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은 그다지 애석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세모(歲暮)의 정은 늙어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햇수가 적어질수록 1년은 더 빠른 것이다.
백발이 검은 머리만은 못하지만 물을 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온아한 데가 있어 좋다.
때로는 위풍과 품위가 있기까지 하다.
젊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천하고 추한 것이다.
젊어 열정에다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과 같이 좋은 게 있으리오 마는,
애욕, 번뇌, 실망에서 해방되는 것도 적지 않은 축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에 회상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을 계산에 넣으면 늙음도 괜찮다.
그리고 오래 오래 살면서
신문에 가지 가지의 신기하고 해괴한 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노력하겠다.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 위하여 털신을 사겠다.
금년에 가려다 못 간 설악산도 가고 서귀포도 가고,
내장사 단풍도 꼭 보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