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따스한 영혼

풍월 사선암 2019. 9. 10. 09:06


따스한 영혼

 

사람 체온이 건강과 굉장히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고 말은 여러 번 들었는데 겨울 한파를 통해 더 실감하고 있다. 보통 체온이 37면 건강한 몸으로 면역력도 왕성하지만, 36만 되어도 몸이 떨리면서 열을 낸다.거기에 1만 더 내려가면 암세포가 가장 많이 증식하게 된다. 34면 물에 빠진 사람이 죽음과 삶의 경계선의 체온이요, 33는 동사 직전에 환각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가 되어버린다. 30가 되면 의식을 잃게 되고, 27는 숨이 멈춘 사람의 체온이다.


결국 체온이 1도씩 내려가면 면역력은 30%떨어질 뿐 아니라, 알레르기와 비만의 원인이 되고 암세포가 종양으로 커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1등 공신이 되고 있다. 아니 체온이 내려가면서 이런 변화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해보았겠는가. 우린 단순하지만 심각한 이러한 변화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현대인은 살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기에 운동할 때 가장 먼저 체중계로 올라갔지만, 알고 보니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체온 체크였던 것이다. 적절한 체온만 갖고 있어도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려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충분한 영양과 적당한 수분 섭취와 적절한 수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건강지킴이의 기본사항들이다. 물론 거기에 규칙적인 운동까지 겸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우리 몸이 온도에 이렇게나 민감한 것처럼 인생도 마음의 온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는 알 듯 하다.

 

사람도 따스한 사람이 있고 차가운 사람이 있다. 왜 차가운 저온(低溫)체질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인생 체온을 낮추고 있겠지만 첫 근원지는 <미움>이다. 미움은 중노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 아니라, 분노와 원망이라는 3형제가 저체온을 만들면서 우리 몸에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분비시켜 온갖 병을 제공한다.


어느 의사는 암 환자가 미움과 원망의 마음을 갖고서 낫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나가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미움의 3형제를 내 보낼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폴 마이어>의 글에서 찾았다. 바람을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풍차를 만들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배의 돛을 조종할 수는 있다.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없다. 하지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질그릇처럼 쉽게 상처받고 쉽게 잘 깨진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은 하는 일마다 허물투성이 이지만 그 중에서도 상처를 입힌 사람을 가슴으로 품거나 용서하는 일만큼 어렵게 느끼는 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용서처럼 쉬운 일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일은 어차피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의지로 내 인격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쉽게 포기하고 묶인 것을 풀어야 내가 산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용서도 사랑도 섬김도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내 자신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에 빨리 동의해야만 자유하며 평안히 거할 수 있다.

 

물론 이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방법은 추운 방에 보일러를 틀어야 하듯이 미워하는 마음에 뜨겁게 불을 지펴야 한다. 마음이 따뜻하면 별처럼 인생의 어둠이 없다. 마음이 열리고 사람이 열리고 만사가 열린다. 따뜻한 물, 따뜻한 밥은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하지만, 따뜻한 말, 따뜻한 마음, 따뜻한 사람은 몸과 이웃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인생의 진리는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인간은 불쌍한 존재이므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 행복한 인생이 되지만, 서로를 대적하고 경계한다면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어느 공동체를 가든 항상 5%의 적의적인 사람은 있는데, 문제는 어리석게도 5% 때문에 자신의 좋은 에너지 95%를 다 뺏기며 피곤하게 살아가면서 세상과 인생을 탓한다.


아는가. 적이란 애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었다. 다만 내가 만든 적이 있었을 뿐이다. 만약 진정한 내 적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맡겨야 한다. 조물주에게 맡기고 시간에게 겸허하게 내려놔야만 문제도 해결되고 자신도 메이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현대인은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가기에 언제나 가슴 따스한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그들은 겉으론 바보 같은 구석이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만나면 영혼이 평안하다. 왜 그들이 바보같이 보였을까. 외모가 아니다. 세상 이치를 넘어 손해 보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순수한 내부의 부름에 따라갔기에 세상에서 많은 유익은 얻질 못해도 그들만의 삶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는 진실함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훈훈한 감동과 꿈을 안겨주기에 중독성이 있는 것처럼 만나도 또 다시 만나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바보는 긴장하지 않는다. 바보는 화내지 않는다. 바보는 남에게 상처주질 않는다. 세련되지 않지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위로와 누구에서도 고칠 수 없는 치유와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평안을 주기에 바라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넉넉해진다.


가슴이 따스한 그들은 돈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 명예보다 친절에 더 마음을 둔다. 자랑보다 상대를 세워주려 애를 쓴다. 언제나 만족하고 나눌 줄 알기에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 몸에 열기가 흘러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꿈꿔본다. 나도 그런 사람과 함께하기를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며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영혼의 겨울이 가까워지자 따스한 사람이 더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저도 누군가에겐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므로  뜨거운 눈물이 되고 싶습니다. 복잡한 머리를 식혀주고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는  뜨거운 찻잔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