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

풍월 사선암 2019. 5. 1. 11:27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 : 쌀이 없으니 고기죽을 먹으라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진나라의 혜 황제(晉惠帝) 사마충(司馬衷)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군왕으로 꼽힌다.

궁에서 자란 그는 세상 물정 모르기로 유명하다.

백성들이 쌀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하자 그럼 "() 고기죽(肉糜)을 먹지 않느냐(不食)" 했다고 한다.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중국 버전이다.

돈이 없다고 하는 아빠에게 "자동인출기에 다녀오면 되지"라고 하는 요즘 아이들을 빗댄 한국판도 있다.

 

에피소드는 또 있다.

구리가 울자 혜 황제가 물었다.

"이놈들은 공적으로 우느냐, 사적으로 우느냐."(此鳴者 爲官乎 爲私乎)

누가 답하기를 "국유지에 있는 놈은 공적으로 울고, 사유지에 있는 놈은 사적으로 웁니다"라고 했단다.

이처럼 역사는 그에 관한 많은 웃음거리를 남기고 있다.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무능하다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궁중에서 호의호식했으니, 쌀이 귀한지 고기가 귀한지 알 턱이 없다.

경험의 문제이지 재능의 문제가 아닌지 모른다.

이 때문에 그는 조롱의 대상이 된 게 억울할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가 본의 아니게 황제가 되면서부터였다.

세간의 일을 모르고 황제가 된 탓에 그는 외척과 황족들에게 휘둘리며 평생이 불운했다.

 

그는 무능하지만 착했다.

한번은 반란군한테 잡힌 적이 있다.

반란군 병사가 그를 보호하고 있던 시중(侍中)을 죽이려 하자 "죽이지 마시오.

그는 충신이오"라고 애걸복걸했다.

병사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시중의 목을 베자 황제의 옷에 피가 튀었다.

나중에 황제는 옷을 갈아입으며 "그 옷에는 충신의 피가 묻어 있소.

지 말고 잘 보관해 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백성의 삶을 모르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와 백성의 생각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

지난주 '동물 국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