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수동<더 높은 구름>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여성주의 시인 고정희 시인의 시입니다.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하여 급류에 휩쓸리는 바람에 요절한 아까운 시인이기도 하지요. 갈대가 흔들리는 늦가을, 흔들린다는 것은 통곡이 몸으로 흘러나오는 일입니다. 갈대는 “마주 잡을 손 하나”를 애타게 기다리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서로를 벗 삼아 의지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지요.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비탄에 젖어 흔들리는 들판에도 미래의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 시인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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