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늙어서 미안하다 너희들은 절대 늙지마라

풍월 사선암 2018. 9. 20. 10:32

"늙어서 미안하다 너희들은 절대 늙지마라"


 

늙어서 미안하다. 너희들은 절대 늙지 마라. 나도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


투박하고 짤막한 이 한 줄에 마음이 저릿했습니다. 폭염이 들춘 노인 복지 실태를 다룬 지난 e글중심(노인들의 '인천공항 피서'를 보는 싸늘한 시선)에 달린 한 독자의 댓글입니다. 해당 댓글에 달린 좋아요’ 100개는 이 댓글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보여줍니다. 노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데, 어쩐지 미안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맘충, 한남충, 급식충혐오 표현이 횡행하는 요즘, 노인도 예외 없는 혐오 대상입니다. ‘꼰대는 양반이고, 온라인 상에서는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린다는 노인 비하 표현)’이라는 단어도 흔히 보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노인들은 가정교육을 못 받은 세대라 너무 제 멋대로임”, “요즘 늙은 것들은 예의가 없음등의 혐오 표현이나, “특정 연령 이상의 유권자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렇듯 노인이 소외된 온라인 공간에서 노인에 대한 혐오는 무분별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현실의 노인 혐오는 온라인 공간보다 심각합니다. 정보사회가 도래한 이후로 노인의 연륜과 지혜는 빛이 바래버렸고, 한때 경제부흥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사회에서 고립돼 짐짝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많지 않고, 사회는 시대에 뒤처진 노인을 챙겨 함께 가기보다 뒷방에 수용하려고 합니다. 노인의 존재를 지우는 데에는 미디어도 한몫했습니다. 노인이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고령화로 인한 부양비 증가, 지하철 무임승차 적자 등을 거론하며 노인을 사회적 부담으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 중인 우리 사회에서 노인 혐오는 더 이상 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통계청의 부양비 및 노령화지수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지난해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됐고,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됩니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소외감과 고립감이 분노로 변해 범죄를 저지르는 폭주 노인들이 큰 사회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자에 의한 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최근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봉화 엽총난사 사건의 피의자는 범행 동기를 묻자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노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 넘쳐나는 노인 혐오가 더욱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e글중심(衆心)’에서 더 다양한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8.24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