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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낮아진 정신과]사람의 마음을 약으로 조절하냐고요? 됩니다, 되고 말고요

풍월 사선암 2018. 7. 14. 09:50

[문턱낮아진 정신과]사람의 마음을 약으로 조절하냐고요? 됩니다, 되고 말고요



정신과 치료, 편견에 답하다

 

이번 정신과 수가 체계 개편 소식은 일제히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문턱이 낮아졌다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기실 정신과와의 거리감은 비싼 진료비 때문이 아니었다. 2011년 정신과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국민에게 보다 친근한 의미로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편견 극복과 개방성 확보는 정신과 내부의 오랜 숙제였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꾼 것도 같은 취지에서였다.

 

정신과 의사들은 사회적 편견이 위험한 이유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 사회, 국가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인 편견으로 인해 치료를 기피하거나 지연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입원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종종 연출된다. 충분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치료 기회를 놓쳐 사회구성원으로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도 편견의 나비효과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정신과 전문의들은 어떤 편견에 맞닥뜨리고 있을까.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네트워크의 의사 10명이 취재에 협조했다.

 

1> 정신과 약 먹으면 중독되나요?

 

“30년간 저희 병원에서 진료 중인 어르신께서 이 약 먹으면 치매 걸리지 않냐고 물으시는데, 그분이야말로 온몸으로 치매 걱정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계시는 분이죠.”(신동인)

 

환자들은 약물치료에 대한 편견과 걱정이 가장 컸다. 4명의 의사는 중독을 우려하는 질문이 많았다고 답했고, 6명은 치매나 졸음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약물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은 정신과 치료에 비교적 개방적인 서양에도 존재한다. 김종훈 원장은 타이레놀도 오래 먹으면 간에 안 좋은데, 우울증 약은 30년을 먹어도 몸에 큰 이상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약물치료에 대한 우려는 덜어도 좋다고 했다. 정신과 약의 중독을 걱정하는 환자에게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곳이 어디일까요?”라고 반문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방현 원장은 “(중독은) 제가 끊어드립니다라고 응수한다고 했다. 강화연 원장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고 묻는 환자에게는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을 비롯한 도파민, 전두엽 등 정보를 설명한다고 답했다.

 

2> 정신과 진료 땐 취업 안되지 않나요?

 

혹시 산부인과, 비뇨기과 다닌 기록이 직장 면접관 손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정신과도 마찬가지입니다.”(송형석)

 

서양에서는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경우 전문가를 찾는 반면 동양에서는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도 정신과 치료로 인한 사회적 불이익이나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하다. 물론 정신과 진료기록은 남지만 환자와 병원 이외에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서 이를 아는 것은 불법이다. 현장의 의사들이 공무원, 기업체 임원, 군인, 경찰 등 흔히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사람들도 치료를 잘 받고 있으며 일체의 불이익이 없다고 알기 쉽게 설명해도 편견은 여전하다. 이분희 원장은 “(정신질환)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우면 그로 인해 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증상이 조절돼야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거나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고 전했다.

 

3> 보험 가입이 어려워지나요?

 

자살 또는 입원의 병력이 없으면 보험 가입을 해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 치료 종료 2년이 지나면 확인절차를 거쳐 가입할 수 있고, 일반적인 보험약관상 5년이 지나면 고지의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겠죠.”(윤병문)

 

진료비 및 진료기록이 얽힌 걱정이 바로 보험 관련 부분이다. 원칙적으로 자살시도를 하거나 입원병력이 없다면, 보험 가입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수면제 처방이나 단기간 치료가 가능한 정신장애의 경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존에는 F코드(우울증, 불면증,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일컫는 상병코드) 진단을 받고 병의원 진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실손손해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511월 약관 개정 이후 2016년부터 새로 가입하는 환자부터는 F코드를 받아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단 알코올 사용 장애 및 일부 정신질환은 제외된다.

 

정신과 의사, 그것이 알고 싶다

 

정신과가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힌 데에는 스타 정신과 의사들의 활약도 한몫했다. 방송 패널로 맹활약 중인 이들 외에도 국민육아멘토라 불리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도 있으며 심리서, 자기계발서, 여행기 등 베스트셀러를 쓴 정신과 의사 작가도 있다. 이 때문에 진료실에서 정신과 의사를 만난 환자들의 질문도 다양하다.

 

한 원장은 술 한잔 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한다정신과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매개로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절대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잘 설득해서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 외에도 의사들은 어떤 황당한 질문을 받는지 들어봤다.

 

1> 정신과 의사들은 얼굴만 봐도 심리를 알아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오셨느냐는 질문에 의심에 찬 눈초리로 그건 왜 물어보시죠?’라고 반문했다는 송형석 원장의 환자는 양반이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맞혀보세요라고 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이쯤 되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무속인에게 점을 보러 온 모양새다. 윤병문 원장은 본인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시면 더 정확한 진단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2> 정신과 의사가 된 거 만족하세요?

 

진로고민이 있는 중·고생 환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또 마다하기 힘들다. 양재원 원장은 누구든 자기 갈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과를 택했는데 외과적 성향이면 소화기나 순환기내과를 가고, 외과를 선택했는데 내과적 성향이면 수술이 많지 않은 일을 택하게 된다원하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면 된다고 일러준다. 한 의사는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전도유망한 정신과에 와서 부모님이 행복해하신다고 했더니, 나이 많은 선배가 그 얘기 우리 때도 들었는데 아직도 여전해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전도유망이 수십년째 실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신과는 의사 직군 중에서도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 오래 한다고 자궁이 튼튼해지는 거 아니고, 내과 오래 한다고 감기 안 걸리는 거 아니다. 하지만 정신과는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스스로 성숙해질 기회를 많이 갖는다고 말했다. 강화연 원장은 열심히 육아하거나 성실히 사는 환자들을 만나면 그분들을 닮으려고 노력한다환자를 위로하며 스스로도 그 문제에서 위로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반면 경제적 만족도는 의사 직군 중 최하위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정신과 입원실을 세운다고 하면 반대 집회를 여는 등 님비 현상에 시달리는 것도 앞으로 정신과에 대한 편견 해소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3>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정신건강을 지키나요?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며 운동을 하며 오히려 몸에 집중한다는 답이 많았다. 이분희 원장은 심한 운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운동이 스트레스 관리나 감정 관리에 더 많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기, 사우나로 땀 흘리기, 친구와 만나서 수다 떨기, 마사지 받기 등 정신과 의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답도 이어졌다.

 

박성근 원장은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병원일은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송형석 원장은 상태가 안 좋아질 시간을 계산해 미리 휴가를 조금씩 잡아두고, 저녁이 되면 악기 연습을 한다고 답했다.

 

사람 없는 공원이나 산에 가서 안 좋은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가기(송형석),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윤병문), 자기 전에 스스로 칭찬하기(강화연) 등의 노하우는 공유해도 좋겠다.

 

경향신문 입력 : 2018.07.14 0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