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소이 부답

최후의 JP 목격기② 반신불수 된 뒤에도 골프 집념

풍월 사선암 2018. 6. 23. 19:42

한달전 신당동 자택의 JP "조세핀...군대...나폴레옹"

 

김종필 전 총리가 자신이 겪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매주 토요일 이어진 그의 구술이 14개월 만에 마감했다. JP의 현대사 회고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였다. 권혁재 사진기자

 

전영기 기자, 최후의 JP 목격기

반신불수 된 뒤에도 골프 집념


"골프는 나에게 신체의 온존함 증명하는 격렬한 의식"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풍운아다. 질풍노도, 혁명의 바람을 타고 일어나 서산(西山)을 벌겋게 물들이더니 구름처럼 하얗게 흩어졌다. 영면하기 한달 전 서울 신당동 자택을 찾아간 필자한테 JP는 대뜸 나폴레옹 최후의 발언을 소개했다. "밤하늘의 유성조세핀불란서의 영광스런 군대." 청소년 시절 품었던 나폴레옹의 불같은 열정과 낭만, 결의가 살아 있었다. 몸은 쇠해 2층 침실에 누웠지만 JP의 정신은 청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맑았다. "벌써 한 달 째 내 입이 밥을 초청하질 않아"라는 유머도 여전했다.


JP는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적 인간형이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인 가운데 유난히 동서고금 역사와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청소년 시절, '하루에 한권씩 독파 하겠다'는 자신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몰두했던 독서 취미가 평생 교양의 자양분이었다. 오히라와 식민지 청구권 담판에서 JP는 중학교 때 읽었던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카와 이에야스 세 영웅의 '두견새 울리기 고사'를 인용해 상대의 마음을 흔들었다.

 

오다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고, 히데요시는 '두견새를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다'고 했으며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JP는 오히라에게 "우리는 히데요시 방식으로 반드시 울게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든 JP의 입에선 그에 알맞게 처칠, 나폴레옹, 논어, 노자(老子),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이야기나 헤세, 바이런, 브라우닝의 시 구절이 툭툭 튀어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 세력 중 강경파들이 1996DJP의 정치적 접근을 무산시키기 위해 '정치인 70세 정년론'을 퍼뜨렸다. JP는 이 때 미국 시인 새뮤얼 울먼의 '청춘'이란 시를 번역해 맞불을 놨다. "청춘이란 인생의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어떤 상태를 말한다 /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는다 / 세월은 주름을 남기지만 열정을 잃으면 정신이 시든다." 김대중-김종필을 겨냥한 세대교체론은 잠잠해졌다.

  

여든 살이 넘어 맞은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됐을 때도 보조 장치를 달고 필드에 나가 혼자 골프를 치는 JP.

 

김종필의 음악·미술·건축·바둑·골프 사랑은 남다르다. 안목이 높고 조예가 깊다. 인문학적 향기가 빼어났다.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지휘했고 예그린 악단을 만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주인공은 당시 28세 패티김)를 무대에 올렸으며 세종문화회관에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를 설치하도록 했다. 건축가 김수근을 지원해 워커힐 호텔과 남산 자유센터를 지었다. 스스로 만돌린과 아코디언,피아노를 즐겼을 뿐 아니라 40대 초반 정치 좌절기에 입문한 서양화·동양화 솜씨는 수준급으로 평가됐다. 골프는 평생 그의 친구였다. 여든 살이 넘어 맞은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됐을 때도 보조 장치를 달고 필드에 나가 혼자서 쳤다. JP는 필자에게 "골프는 나에게 신체의 온존함을 증명하는 격렬한 의식"이라고 한 적이 있다. 초원이 그의 건강을 지켰다.

 

"은혜는 남아도 은인은 잊힌다.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 오늘은 내일의 아버지"

 

JP는 생전 유언에 따라 국립 현충원이 아닌 고향 부여에 묻히게 된다. 그는 "국무총리 두 번 했으니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아내(부인 박영옥 여사, 2015년 별세)가 누워 있는 양지바른 고향 땅에 가겠다"고 했다. 명예의 전당 보다 인정(人情)의 터전을 택했다. 아내 박영옥과 순애보적이며 낭만적인 사랑은 널리 알려졌다. 전쟁 때 남자 장교는 여자 교사를 만나 "한 번, 단 한번, 단 한 사람에게"(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라고 쓴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로 프로포즈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업적 깡그리 뒤집으려는 요즘 세태를 걱정

 

평소 "은혜는 남아도 은인은 잊힌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 오늘은 내일의 아버지"라는 말도 했다.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으나 과거는 그 자체로 존중했다.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 미래의 지혜로 삼자는 온고지신( 溫故知新)JP의 시간관이다. JP는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업적을 깡그리 뒤집으려는 요즘 세태를 걱정했다.

 

"세상에 추한 게 타다 남은 나무토막.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됐으니 이제 떠난다"

 

2004년 정계은퇴의 변은 "세상에 추한 게 타다남은 나무토막이다. 이제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됐으니 정치를 떠난다"였다. JP92년 세월을 유감없이 살다 세상을 떴다. JP의 죽음은 남은 이에게 삶의 각성을 불러 일으킨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김종필 증언록을 연재할 때 JP가 소년처럼 웃으며 해 준 디즈레일리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인생은 짧다.시시하게 굴지 마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입력 2018.06.23 12:51 수정 2018.06.23 15:29


정계를 움직였던 JP 어록 


1987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대통령 입후보자 포스터를 직원들이 검토하고 있다.


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뒤)

 

자의 반 타의 반(1963,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1980, 서울의 봄으로 찾아온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기를 우려하며)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 저서 새 역사의 고동)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 3당 합당 이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언급하며)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 민자당 대표 시절 민주계의 대표 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자)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줄탁동기[啐啄同機](1997,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에서)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 총리 서리 당시 서리꼬리가 언제 떨어질 것 같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박 대통령이 기반을 굳건히 다져 그 위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춤추고 있는 것이라고(2005, 박정희 전 대통령 26주기 추도식에서)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2011,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3/2018062301016.html



다음은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 전문.

◀미리만든 김종필 전 총재 납골묘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銘 雲庭 自僎 / 書 靑菴 高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