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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바로알기

풍월 사선암 2018. 4. 3. 09:32



1. 518일은 '국가기념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후, 전두환과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며 군사 독재로의 회귀를 시도합니다. 1980518일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항쟁을 본격화한 날로서, 문민정부에 이르러 비로소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되었어요. '공휴일'은 아니지만, 엄연한 '국가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2. 광주사태? 폭동? no! 민주화운동 yes!  

5·18 민주화운동은 과거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폭동' 등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보수 세력에 의해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정신이 격하되곤 하는데요, '광주민중항쟁', '광주시민항쟁', '광주항쟁', '광주의거' 등이 올바른 표현법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7년 뒤 일어난 6월항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데 밑거름이 된 사건이랍니다.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광주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민과 학생들>

 

3. 북한 공작원이 주도한 폭력사태이다? no!

12·12 사태 이후 신군부의 군부 장악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극에 달합니다. 신군부 인사들의 퇴진과 김대중의 석방 등을 요구하며 서울역으로 학생들이 모여들자 17,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한 것인데요. 광주 시내에도 계엄군이 내려와 각 대학을 장악하고 등교를 저지하는 등 과도한 폭력 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화운동이 시작됐고, 광주에 있는 일반 시민들까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4. 공권력에 의한 사상 최악의 민간인 학살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상처는 상당합니다. 대략적으로 파악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약 200여 명, 부상자 등 피해자는 약 4,300여 명으로, 당시 한 광주시민은 "6.25 전쟁보다 더하다"고 표현할 정도였죠. 일반 시민들을 향한 이러한 무차별 폭력 사태는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공권력을 이용한 사상 최악의 민간인 학살이었습니다. 5.18 피해자의 자살률은 10%가 넘는 수준으로 일반인의 약 500배라고 하니, 여전히 그 상흔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죠.

 

5. '가짜' 언론 보도, 외신이 '진실'을 밝히다

당시 신군부가 주도한 광주의 고립 상황과 언론 통제가 맞물려 '광주사태는 북한 공작원이 주도한 폭력사태이다', '불순세력의 소행이다'라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죠. 왜곡된 소문을 바로 잡은 것은 파란눈의 기자였습니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 국제사회에 심각한 인권 침해 현장을 호소했습니다.

 

6. 5.18 민주화운동, 여전히 ING...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나 5·18 민주화운동 진압 방법에 대한 법적 논란이 제기되며 재판이 이루어졌는데요, 1996년 항소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5년을 선고 받습니다. 하지만 고작 2년 여의 수감 생활 후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고 말았죠. 또한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정확한 사망자수, 발포책임자 등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출처] [별별이슈] 5.18 민주화운동 바로알기 |작성자 국가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