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맞으며 써내려간 詩… 열여섯 효진이 세상을 적시고 떠나다
산 길 - 박효진
산길 오르막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올라갔습니다
산길을 올라가다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올라갔습니다
산길을 계속 올라가다
어두운 그림자와 마주쳤습니다
나는 중요한 것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올라갔습니다
지금도 오르는 중입니다
산은 언제나 정상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시화전 공모 최우수상 받았지만 급성 백혈병과 싸우다 9월 숨져
돌배기 때부터 홀로 키운 할머니… 지팡이 짚고 시상식 나와 눈물
◀사진은 지난 9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박효진(16)양의 아프기 전 모습.
시(詩) '산길'을 쓴 이는 부산 부곡여자중학교를 다녔던 박효진(16)양.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부산대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효진양이 반복된 항암치료로 이(齒)가 모두 빠지는 고통을 겪을 때 썼다. 효진양의 시는 지난 19일 소아암 등 중증질환 어린이를 지원하는 한국 로널드맥도날드하우스재단(RMHC)에서 주최한 시화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상식장에 오른 건 효진양이 아니라 친할머니 김월선(75)씨였다. 효진양이 '산'을 넘지 못하고 지난 9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김씨는 "휘어진 왼쪽 다리 때문에 지팡이 없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날 부축해 장을 봐주던 아이였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효진양은 첫돌이 지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맡겨져 단둘이 살아왔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다. 둘 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월 100만원 남짓한 정부 지원금에 의지해 살았다. 김씨는 "항암치료를 받던 효진이가 딱 한 번 '왜 가난한 우리에게 이런 아픔까지 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목놓아 운 적이 있었다"며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효진양의 장래 희망은 '의사'였다. 아프기 전부터 할머니에게 '부산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도 곧잘 했다. 효진양의 중학교 3학년 담임 교사였던 안미영(여·44)씨는 "효진이는 수업 집중도도 높았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며 "수련회에선 코믹한 춤을 춰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던 아이"라고 추억했다.
할머니의 가장 큰 후회는 손녀를 일주일에 한 번씩밖에 못 찾아갔다는 점이다. 병원비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국가의 의료급여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한 번 갔다 올 때마다 5만~6만원씩 드는 택시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김씨는 "다리 때문에 계단이나 버스 출입문 턱도 제대로 오를 수 없어 택시를 탔는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그 고통 속에 어린아이를 홀로 둔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효진양이 있던 중환자실은 보호자가 머무를 수 없는 곳이다. 하루에 한 차례 면회만 가능했다.
한국 RMHC는 현재 후원금을 모아 부산대병원에 효진양 할머니처럼 소아암 등 희귀·중증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 가족이 무료로 머물 수 있는 '하우스'를 짓고 있다. 소아암 전문병원들이 대도시에 몰려 있기에 통원 치료나 보호자 상주가 힘든 환자 가족들이 머무를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소아암 완치율은 80%에 달하지만, 평균 치료 기간은 2~3년이 걸린다. RMHC 하우스는 내년 6월 완공될 예정이다.
효진양이 마지막 순간 내뱉은 말은 "나 때문에 할머니가 너무 고생했다"였다. "빨리 완치되고 다음엔 의사로 병원을 찾겠다"고 말하던 소녀는 자신이 꿈꾸던 장소에서 눈을 감았다.
조선일보 입력 : 2017.12.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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