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11) 남한산성 성곽길서 만나는 아픈 우리 역사
남문에서 바라본 성 밖 풍경.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역사의 관찰자로 서 있다.
지난달 남한산성을 찾았다. 올해만 두 번째다. 단풍이 절정이었던 10월의 풍경은 간 곳 없었으나 나뭇잎마저 지고 나자 성곽이 둘러싼 산의 형세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남한산성 공원서 수어장대 거쳐 회귀하는 5시간 코스
수어장대선 서울 송파, 경기도 광주 풍경 한 눈에
서문, 인조가 삼전도로 가던 길에 통과한 치욕의 문
◀이번 산행의 시작이자 끝 지점인 남문 '지화문'. 남한산성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으로 현판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사진 하만윤]
동서남북 4개의 문과 문루, 4개의 장대, 16개의 암문이 있는 남한산성은 총 길이 12.4Km, 높이 7.3m에 달하는 산성이다. 최근 발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0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의 옛터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오랜 세월을 견고하게 버텨온 역사적 터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절로 경건해졌다.
남한산성은 찾는 들머리가 다양하다. 필자와 일행은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남한산성공원까지 걸어서 이동한 후 남문(지화문)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택했다. 남문에서 왼쪽 성곽을 따라 주봉이라고 할 수 있는 청량산(해발고도 497m)으로 향하면 수어장대를 만나게 된다. 남한산성공원에서 남문까지의 여정은 계속 오르막이나 그리 힘들지는 않다. 남문에서 수어장대까지도 평지보다는 오르막이 더 자주 나타난다. 그럼에도 계절에 따라 주변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며 걷는 즐거움이 더 크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 오르막길이긴 해도 그리 힘들진 않다. [사진 하만윤]
오르막의 끝에 청량산 정상과 수어장대에 다다르면 서울 송파지역 풍경, 경기도 광주지역 풍경과 더불어 산성 안의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트이면 마음마저 트이는 법.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크게 둘러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4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다. 장대는 지휘관이 올라서 군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지은 누각이다. 수어장대에 오르면 주변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등까지 조망할 수 있다. 건립 당시에는 단층 누각의 서장대였으나 영조 27년 2층 누각으로 증축하며 수어장대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수어장대 안으로 들어서면 ‘무망루(無妄樓)’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효종의 비통한 죽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영조가 2층 누각에 걸었던 편액을 지금은 전각을 따로 건립해 옮기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 놨다. 후세의 절치부심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남한산성 주봉인 청량상 정상에 자리한 위풍당당 수어장대(사진 좌) 수어장대에 있는 현판 '무망루'.(사진 우)
조금 이른 시간이었으나 수어장대 근처에 볕 좋은 곳이 있어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제각각 싸 온 점심을 꺼내 놓으니 직접 싼 김밥에 숙성한 연어, 치킨까지 그야말로 한 상 가득했다. 이 점심이 여느 만찬 부럽지 않은 까닭은 일행과 같이 먹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온 그 마음들 때문일 것이다.
수어장대까지 조금 힘들게 올랐다면 서문(우익문)부터 북문(전승문), 동문(좌익문)으로 향하는 성곽길은 두어 곳의 짧은 오르막을 빼면 훨씬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서문은 인조가 삼전도(송파 삼전나루)로 내려가 삼궤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를 했던 치욕과 아픔의 역사적 공간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강화로 가는 길이 막혀 이곳 남한산성으로 행궁을 옮겨 청의 12만 대군과 대치하며 45일간 항전했으나 결국은 삼전도의 굴욕을 겪어야 했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이런 역사를 되새기며 그 의미를 곱씹어 봐도 좋으리라.
서문(우익문)을 지나면 성곽 길 걷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인조가 45일 항전을 끝으로 삼전도로 향했던 서문.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에 성곽의 옹성에 들렀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다. 이중 연주봉 옹성은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중심 성곽길에서 잠시 벗어나 옹성에 오르면 그 끝에서 만나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난다.
(좌)성곽 길을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옹성. 끝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우)멀리 보이는 동문 끝으로 산성 342호 지방도와 산성마을이 보인다.
북문을 지나 동문으로 가는 길은 현재 성곽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니 특별히 주의해 걸어야 한다.
동문에 다다르면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서 양평군까지를 잇는 342호 지방도와 맞닥뜨리게 된다. 성곽 사이를 지나는 그 길을 따라가면 산성마을 입구에 도달한다. 처음 산행 때 갔던 길이라 이번에는 남문을 향해 다시 가파른 성곽길로 들어섰다. 성곽 옆 음지에는 벌써 살얼음이 얼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남문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오르막길. 뒤돌아보니 지나온 성곽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사진 하만윤]
오르막길을 오르고 이번 산행의 끝이 보이자 필자와 일행은 평지에 모여 앉아 조금씩 남은 주전부리로 허기를 달랜다. 이른 점심 탓에 다들 허기졌을 터. 얼마 후 길을 내려가니 아침에 출발했던 남문의 낯익은 풍경이 나타났다. 비로소 남한산성 종주를 완성한 것이다.
이번 산행의 수고로움을 시작이자 끝 지점인 남문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후 남한산성공원으로 편하게 하산했다.
남한산성공원을 들머리로 남문-수어장대-서문-북문-동문-남문-남한산성공원까지.
총거리 약 11.4km, 시간 약 5시간 20분.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 남한산성 성곽길서 만나는 아픈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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