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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풍월 사선암 2017. 4. 16. 00:10

4차 산업혁명

 

구글, 집안을 정복하다.

 

2014년 구글은 '네스트'라는 기업을 35억 달러에 인수했다. 조금은 의아한 일이었다. 구글이 그 유명한 유튜브를 인수할 때만 해도 165천 달러였다. 그런데 고작 보일러 온도 조절기를 만드는 회사를 유튜브의 2배가 넘는 금액으로 인수했으니까 말이다.

 

구글은 단순히 네스트의 현재 가치를 보지 않았다. 네스트의 미래를 보고 투자했다. 네스트는 단순히 디자인이 예쁜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아니다. 손으로 조작할 뿐만 아니라 무선 인터넷이 내장되어 있어 스마트 폰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심지어 동작 감지 센서가 있어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지한다. 처음에는 사용자가 네스트를 조절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집안 온도를 조절한다. 바로 학습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네스트를 쓰면 쓸수록 안 쓰게 된다. 안 쓰지만 사실은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집주인은 가만있어도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학습한 네스트가 알아서 온도를 조절하니까 말이다. 이런 네스트를 통해 스마트 홈 허브가 구성될 수 있다.

 

네스트는 TV, 냉장고, 전등, 시계, 전자레인지 등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다. 보일러 온도 조절기의 특성상 집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으며 모든 홈 디바이스를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까지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집주인의 또 다른 주인이다. 주인 뒤에 '실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구글은 이러한 청사진을 네스트를 인수함으로써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이미 주변기기도 완성했다. 집안을 감시하는 카메라 네스트 캠, 집안 공기를 감지하는 네스트 프로텍트가 출시되었고 이들은 상호 연결된다. 이제 구글은 인터넷 검색 창을 넘어 집안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집안 온도를 낮추면 구글은 스마트 폰으로 대출 안내를 해 줄지도 모른다. 난방비를 아껴야 할 정도로 당신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예상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정말 편리하지 않겠는가.

 

아마존, 사생활을 분석하다.

 

구글이 네스트를 인수하던 해, 아마존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통 스피커가 아니다. 7개의 마이크를 통해 음성인식을 하고 말을 하는 스피커, '에코(Echo)'. 이것은 마치 개인 비서와 같다.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주변 기기를 실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집안의 가전제품을 켜거나 끌 수도 있다. 마치 영화 '아이언 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자비스'를 연상케 한다.

 

에코 역시 구글의 네스트처럼 스마트 홈 플랫폼을 지향한다. 에코는 스마트 폰을 대신해 음악 어플을 이용할 수 있고 스케줄을 체크하거나 날씨를 확인할 수 있으며 뉴스, 이메일, 전자책 등을 읽어달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스마트 가전과 연동하여 모든 작동을 음성으로 지시할 수 있다. 심지어 에코는 사용자의 발음이 시원치 않거나 주위에 소음이 있어도 정확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그만큼 높은 음성인식률로 미국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사용자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아마도 에코는 집안에서 주고받는 모든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향상될 것이다. 조만간 당신이 집안에서 애인과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그 맥락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을 위해 피임약을 주문할지, 또 다른 소개팅 정보를 제공할지를 예측하고 실행해 줄 것이다. 정말 편리하지 않겠는가.

 

부모가 몰라도 시스템은 안다.

 

구글 네스트와 아마존 에코가 과연 편리하기만 할까? 몇 년 전 미국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한 대형 마트가 어떤 가정에 아기 옷과 유아용품 할인 쿠폰을 발송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받는 당사자가 아기 엄마가 아닌 여고생이었다.

 

그 가정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따위 쿠폰을 내 딸에게 주다니, 여고생에게 임신을 부추기는 것이냐?" 그러나 며칠 뒤 아버지는 딸이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아버지 입장에선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부모도 모르는 딸의 임신을 대형 마트는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사연은 이랬다. 최근 그 여고생은 로션을 무향 로션으로 바꿨다. 그리고 평소 먹지 않던 미네랄 영양제를 구입했다. 대형 마트는 이 여고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예측하게 되었다. 그것을 누가 예측했을까? 대형 마트의 마케터가? 아니다. 빅 데이터 시스템이 한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구매자의 상태를 예측하고 그에 알맞은 할인 쿠폰을 발송해 주는 지능적이고 자동화된 시스템을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부모도 모르는 딸의 임신 소식을 대형 마트가 먼저 알 수도 있는 세상이 왔음을 의미한다. 그 세상이란 이미 코앞에 와 있다. 우리는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이것은 편리한 세상일까? 아니면 무서운 세상일까?

 

알파고 쇼크

 

전 세계 주요 정치인과 경영자가 모인다는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 세계 거물들이 연회비 71,000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내고 일 년에 한 번 모인다는 이 포럼에서 거론된 어젠다는 세계적 관심사가 된다.

 

20161월에 개최된 다보스 포럼의 어젠다는 바로 '4차 산업혁명'이었다. 그러든 말든 관심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에서도 정확히 2개월 뒤에 상징적인 사건이 터졌다. 이세돌의 압승으로 예상됐던 바둑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것은 부모도 모르는 딸의 임신 소식을 대형 마트를 통해 알게 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사건은 잠잠하던 대한민국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인공지능(AI)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4차 산업혁명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도대체 4 산업혁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들과 결합하며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현실과 가상이 통합되고 사물을 제어할 수 있는 가상물리시스템(CPS) 구축이 예상되는 산업의 변화를 일컫는다. 애당초 4차 산업혁명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개념 따윈 없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어젠다로 정했던 클라우스 슈밥 회장조차도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이며 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이 알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에 전 세계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로봇, 빅 데이터, 3D 프린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가상현실, 증강현실, 공유경제, 드론, 스마트시티, 클라우드 컴퓨팅, O2O 등등 나열하기도 힘든 수많은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나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처음으로 인간을 이겼던 것은 1997년에 있었던 체스 대결이었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개리를 이겼다.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딥블루'에 경악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연산속도가 3배 이상 빠른 물건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도 전혀 놀라워하지 않는다. 바로 스마트 폰 말이다.

 

사람들은 이세돌의 패배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지만 아마도 10년쯤 뒤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알파고가 하나쯤 들어 있단 사실을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작아진 프라이버시

 

우리는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놀라운 문명 앞에 서있다. 하지만 마냥 편리하다고 하기엔 뭔가 섬찟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 뉴욕의 한 남자가 포켓몬 Go로 인해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그는 다수의 포켓몬을 포획했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전 여자 친구의 집이었고, 그 위치정보를 포켓몬Go를 통해 알게 된 현재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해 왔다. 정말 재수가 없긴 했다. 포켓몬Go만 아니었어도 그의 '양다리 연애'는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존 에코는 인간의 대화를 거의 모두 이해하고 심지어 뉘앙스의 차이도 감지할 것이며 그런 데이터를 저장하고 예측까지 할 것이다. 그 데이터는 어쩌면 본인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다.

 

구글 네스트는 온도조절기를 넘어 카메라와 마이크, 공기 감지기까지 장착하여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인식하고 컨트롤하며 저장할 것이다. 심지어 집주인 이외에 알면 안 되는 은밀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러한 정보들이 사물과 사물 간에 공유가 되고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유용한 정보를 예측하여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궁극적인 사물인터넷의 모습이며 4차 산업혁명의 세상이다.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이 우리를 보호해 줄 거라 믿을 수도 있겠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개인정보보호법이란 4차 산업혁명의 걸림돌이다. 결국 세상은 프라이버시의 범위를 좁히고 정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발걸음이 매우 늦은 상태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IT 인프라가 세계적인 수준이라 축적된 빅 데이터가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2015년 대한민국의 보건 의료 데이터는 28879억 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것은 엄청난 잠재력이다. 시장에서도 의료 정보의 가치는 매우 높다.

 

실제로 개인 정보 암거래 시장에서 신용카드 정보가 1달러에 거래된다면 의료 정보는 그에 10배인 10달러에 거래된다. 예시가 불법적이긴 하지만 설사 유용한 사업에 활용하려 해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꽉 막힌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엄청난 빅 데이터의 잠재력을 결코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참여, 공개, 공유

 

세상을 바꾸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시작은 인터넷의 탄생과 그것이 담고 있는 철학일지도 모른다. 참여, 공개, 공유에 기반을 둔 인터넷 정신 말이다. 최초 인터넷은 특정 국가의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의 참여와 공유를 지향했던 선구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 채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IRC는 핀란드의 한 프로그래머가 공유했고, 다수의 사용자가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시작됐으며, 시분할 time-sharing 기술은 MIT의 한 해커가 공개했다.

 

이것은 매우 가치 있는 기술이었지만, 비공개로 꽁꽁 숨겨두거나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모두가 널리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공개하고 확산시켰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가치를 나누게 되면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되지 않게 했으며, 특정 기업의 이익이 되지 않게 했고, 특정 권력의 권한이 되지도 않게 했다. 그들은 집단 지성이 꽃피우고 대중의 지혜가 모이는 인터넷을 함께 만들어가길 원했다.

 

인터넷은 이런 철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세계다. 간혹 무당 또는 사술을 신봉하는 자들이 사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또는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무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은 그들의 국가나 이익보다 더 넓은 세상이다.

 

이제는 더 많은 참여, 공개,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세상을 4차 산업혁명이 넓혀나갈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갈등은 존재한다. 프라이버시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프라이버시 개념에도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개인의 존립을 위해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온전치 못한 프라이버시를 만들지 않으려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자신이 정의하는 프라이버시, 혹은 꺼림직 한 프라이버시의 범위가 넓을수록 누릴 수 있는 정보의 혜택은 작아지고 운신의 폭도 좁아지게 될 것이다. 마치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하늘을 우러러 드론과 인공위성이 있음을 의식해야겠다.

 

4차 산업혁명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해 줄 것이다. 다만 참여, 공개, 공유를 온전히 누리려면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인의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