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엄마의 도전을 응원하며

풍월 사선암 2017. 1. 13. 12:25

[감동영상]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 '엄마의 밥'


<가족사랑 편지 쓰기> 금상


엄마의 도전을 응원하며

    

사랑하는 엄마,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요즘에 엄마는 열여덟 소녀처럼 기운차 보여.

엄마는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겠다고 했어.

나는 예순이 넘어 무슨 자격증에 취직하냐며 엄마를 나무랐지.

 

아빠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고된 식당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잖아.

이제 엄마가 편히 쉬길 바랐어.

긴 시간 식당에서 일한 탓에 엄마 손엔 온통 굳은살이 박였는데,

또다시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싫었는지 몰라.

나의 보잘것 없는 효심은 그럴 때만 발동하나 봐.

 

내 반대에도 엄마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지.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집에만 있기 갑갑하다고,

벌써 노인 취급하지 말라며 앞으로 계속 일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말했어.

나는 정 심심하면 차라리 문화 센터에 다니며 여가 생활을 즐기라고 했어.

왜 하필 힘든 요양 보호사를 하겠다고 나서는지 따져 물었지.

 

그러자 엄마는 한참 침묵한 끝에 답했어.

삼십 년전,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엄마는 쓰러진 아버지를 돌볼 수 없었서.

제대로 간호 한번 못하고 남편을 떠나보낸 게 늘 마음에 걸려

지금이라도 요양 보호사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했어.

 

순간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더라.

철없게도 엄마의 깊은 속내까지 헤아리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나는 엄마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리라 마음먹었어.

엄마가 학원에 간 첫날, 혹여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수업 중에 졸지는 않을까? 한참 어린 동기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앞섰지.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근심이었어.

엄마는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내게 학원 얘기를 들려주느라 쉴 틈이 없었지.

동기들이 엉뚱한 질문을 해서 웃는 통에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했지.

다들 직접 쑨 묵,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도시락으로 가져와 점심은 언제나 시골 밥상 차림이라고 했어.

모의고사에서 꼴찌 한 것 같다고 속상해할 때도 있었지.

그런 애기를 들려주는 엄마는 마치 여고생 같았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뒤 좋아하는 드라마 보는 것도 마다하던 엄마,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더듬더듬 시험 문제를 살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의 학창 시절이 저랬을까.

상상하곤 했어.

 

하루는 학원에서 배웠다며 내게 수화로 하는 <뽀뽀뽀>를 알려 주었지.

엄마의 어설픈 손동작이 귀여워 웃음이 나오더라.

나도 예순이 넘어 엄마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을까?

아직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용기가 없네.

 

삼십 년 동안 아빠 없이 홀로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엄마의 청춘은 지나가 버렸어.

이제 자글자글한 주름만 남았지만 또 다른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엄마야 말로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소녀야.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좋겠어.

하지만 떨어져도 낙담하지 마.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행복했다면 그걸로 됐어.

나 역시 엄마의 풋풋한 여고 시절을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즐거웠어.

 

그동안 쑥스러워 말하지 못했지만 엄마를 많이 사랑해.

티격태격해도 엄마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우리 매일 지금처럼 행복하자.

항상 엄마를 응원하며.

사랑하는 딸이.

 

남혜선 님 / 경기도 양주시



# 심사평 :

어머니와 딸 사이의 친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의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며 일어난 마음의 색깔을 잘 정리해서 어머니를 향한

응원가를 꾸며 낸 점이 재미있다.

 

박동규 님 / 문학 평론가. 서울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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