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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 행복해진다

풍월 사선암 2015. 10. 3. 09:19

걸어야 행복해진다

 

 

'걸어야 행복해진다!'. 걷기는 모든 의사가 권하는 돈 안 드는 운동처방이다.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건강을 꼬박꼬박 저축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발은 '2의 심장'으로 불린다. 발에는 무수한 혈관이 있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피를 펌핑해 위로 올려 보낸다. 혈액을 순환시키는 모터가 양쪽 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혈류의 흐름은 전신 건강의 지표. 각 기관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할 뿐 아니라 혈관을 청소해 탄성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가 '죽음의 4중주'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사중주는 내장 지방, 고지혈증, 당뇨 전 단계인 내당능 장애, 그리고 고혈압이다. 이들 4인방의 협주가 혈관을 막아 사망률 1위인 뇌졸중. 심근경색의 원인이 된다. 뿌리는 뱃살이다. 내장에 낀 지방이 4중주의 지휘자인 셈이다.

 

걷기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에 120, 빨리 걸으면 300까지 열량을 태운다. 죽음의 자객인 뱃살을 빼는 데 이보다 좋은 처방약은 없다.

 

걷기는 인체 골격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우주공간에 오래 머물렀던 우주비행사들에게 건강의 최대 적은 골다공증이다. 무중력 상태가 뼈세포의 생성을 막아 뼈를 바람 든 무처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구에 귀환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운동이 걷기다. 이른바 압전(壓電)효과. 몸무게를 이용한 뼈 강화 훈련이다.

 

걷기가 골격을 붙들고 있는 근육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할머니의 걸음걸이를 보면 안다. 보폭이 짧고,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진다. 하체의 근육이 퇴화해 뇌가 위험을 인지해도 순발력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걷기를 하면 근육이 유지될 뿐 아니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근력(근육)은 자극을 주면 향상하고, 방치하면 금세 위축한다.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할 수 있는 90대 노인에게 두 달간 걷기 운동을 시켰더니 근력이 70%, 걷는 속도는 50% 빨라졌다는 미국의 연구논문도 있다. 우리 몸의 장기에서 근육만큼은 세월을 거스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다리가 잘 붓는 사람에게도 걷기가 특효약이다. 부종은 정맥이나 림프관에 체액이 정체되는 현상. 따라서 걸으면서 근육이 혈관과 림프관을 꽉꽉 짜줘 체액의 흐름이 좋아지면 부종이 개선된다.

 

걷기가 달리기보다 좋은 것은 운동 손상이 적기 때문. 해부학적으로 보면 걷는 것은 발을 구성하는 26개의 뼈와 114개의 인대, 20개의 미세한 근육, 그리고 힘줄과 신경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합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발을 '공학의 최대 걸작'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달린다는 것은 다리엔 '고문'이다. 착지하는 순간 한쪽 발에 실리는 무게는 체중의 2.3~2.8배에 달한다. 1를 달릴 때 발이 받는 하중은 무려 16t. 아킬레스건염.족저근막염이 생기는 것은 물론 발바닥의 아치가 무너지거나 무릎에 퇴행성관절이 일찍 생길 수도 있다.

 

뱃살을 줄이는 데도 빠르게 달리기보다 걷기가 유효하다. 문제는 지방과 탄수화물 소모 비율이 다르다는 것. 예컨대 달리기를 하면 지방보다 탄수화물 소모량이 많지만 걷게 되면 지방을 에너지로 더 많이 활용한다.

 

"나에겐 새 삶을 준 '생명 길'입니다. 자동차 매연이나 지하도 악취쯤은 문제가 아니죠."

 

10여 년째 IT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황동열(41). 그는 매일같이 오전 7시면 어김없이 청바지와 흰 면티, 푸른색 운동화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서울 봉천동에서 여의도 사무실에 이르는 10가량을 걸어서 출근하기 위해서다. 황씨는 업무 특성상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결국 지난해 11월엔 체중 과다로 인한 고혈압 증세를 보였다.

 

황씨는 고민 끝에 걷기를 통한 다이어트에 나섰다. 석 달 만에 101에 이르던 몸무게는 70으로 줄었다. 허리 치수도 10인치 이상 줄어 바지 12벌을 새로 마련했다. 그는 "걷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아 13년간 몰던 차도 팔았다""'40대 돌연사'와 관련된 기사가 나올 때마다 걱정을 하던 가족들도 '사람이 달라졌다'며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걷기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십만 명의 걷기 애호가가 한강 둔치, 남산 순환로 등 집 주변의 걷기 명소를 찾아 나서고 있다. 올 한 해에만 전국 각지에서 300여 개의 걷기 대회가 열린다. 서점가엔 매달 수십 권의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걷기 운동과 문화 답사를 결합한 '도보 여행'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의학 교수 100여 명이 활동 중인 한국걷기과학회(회장 이강옥 상지대 교수)에 따르면 운동을 목적으로 매주 세 번 이상, 30분 넘게 걷는 성인은 2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만 명 넘는 초대형 동호회 등장

 

걷기 열풍을 타고 관련 동호회도 크게 늘었다.

 

다음.네이버 등 대형 포털에서 '걷기' '도보여행' 등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모임은 500여 개에 이른다. 1만 명을 넘는 초대형 동호회부터 10여 명의 소모임까지 다양하다. 235개 시..구 보건소들은 2005년부터 지역 주민의 걷기 모임을 운영 중이다.

 

창립 1년 만에 17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네이버 걷기클럽'엔 요즘도 하루 평균 20여 명의 신입 회원이 찾아온다. 신필상(43) 회장은 "실직의 아픔을 달래려고 혼자 시작한 동호회가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걷기에 대한 지식도 얻고 동행자를 찾으려는 회원들의 욕구가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초보자에겐 특히 장시간 걷기에서 오는 외로움과 지루함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뇨를 앓던 중 의사 권유로 걷기를 시작한 정광진(60)씨는 올 2월 동호회에 가입했다. 3개월 동안 정씨는 하루 20, 모두 1500이상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혼자 걸을 땐 하루 5도 넘기기 어려웠다""힘들어 그만 걸을까 해도 묵묵히 걷는 다른 회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도보 여행, 맨발 걷기로 확장

 

최근 걷기 동호회 사이에선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나 문화 유적지로 찾아가 걷기를 즐기는 '걷기 여행' 행사가 활발하다. 포털 다음의 걷기모임 '세상걷기' 회원 40여 명은 13일 문경새재 옛길 10를 따라 걸었다. 주제는 문경새재에 얽힌 역사와 전설이다. 이 모임은 올해 섬진강, 수원 화성, 파주 헤이리 등을 방문하는 행사도 열었다. 대표 황규석(38)씨는 "걷기는 체력 단련 차원을 넘어 지역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엔 황학동 골목 등 오래된 거리를 찾는 '골목길 걷기', 성벽을 따라 4대문을 도는 '성벽 따라 걷기' 등 테마 걷기도 유행이다. 해외 도보여행에 나서는 이도 늘고 있다.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회원 8명은 지난달 80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출발, 서울을 거쳐 일본 도쿄까지 2500대장정에 나섰다. 회장 박용원(57)씨는 "차를 타고 하는 여행보다 걸을 때 10배 이상 구경할 게 많다""정신과 육체에 모두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