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리더십 부재가 낳은 `2015년 메르스 참사`

풍월 사선암 2015. 6. 3. 09:33

2003`사스 예방 모범국` 한국, 어쩌다 이 지경까지

 

리더십 부재가 낳은 `2015년 메르스 참사`

 

메르스 비상

 

메르스 확산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대응 단계를 '주의'로 유지하기로 한 2일 오후 서울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관광을 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국내 확산과 관련해 현 정부 대응 수준이 참여정부 시절 사스(SARS·중증호흡기질환증후군) 확산 방지에 성공했던 '선례'와는 너무나 대비되고 있다.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12년 전 '사스' 때보다 훨씬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았던 한국이 지금은 '메르스 민폐국'이라는 오명을 듣게 됐다. 현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두고 국민은 "사스 때 고건 전 총리의 '솔선수범 리더십'을 상기해야 한다"며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정부 리더십 부재를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청와대에 '메르스 컨트롤 타워'를 만들라"고 촉구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2003년 사스 때와는 컨트롤 타워부터 달랐다. 사스 사태 때는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사스 컨트롤 타워'부터 만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질병관리본부장 지휘 아래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를 운영하다가 대응 소홀 논란이 일자 지난달 28일에야 장옥주 차관으로 대책본부장을 격상시켰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 2명이 사망한 이달 2일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본부장을 복지부 차관에서 복지부 장관으로 격상했다.

 

대응 방안도 비교된다. 고 전 총리는 사안이 심각함을 직감하고 몸으로 움직였다. 2003년 중국과 홍콩 등지에 사스가 퍼지면서 국내에도 '사스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하자 고 전 총리는 사스 환자 국내 유입 방지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고 전 총리는 그해 423일 관계차관회의를 열어 현황을 살펴본 결과 국립보건원 사스 전담 인력이 4~5명에 불과한 태부족 상황임을 파악했다. 상급기관인 국무조정실이 직접 나서 국방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를 총동원시켰다. 그는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을 불러 "사스 방역도 국가를 방어하는 일이다. 군의관과 군 간호 인력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청해 그 다음날인 24일 오후 인천공항 검역소 등 4곳에 군 의료진 70명을 신속히 투입시켰다.

 

현장을 몸소 찾아가는 '솔선수범 리더십'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425일 사스 방역 최전선인 인천국제공항으로 간 그는 감염 의심자 채혈 현장 등 곳곳을 둘러보며 현장 인력을 독려했다.

 

민간에 적극적으로 협력 손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428일 오전 김광태 대한병원협회장,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 강문원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장 등 민간 의료단체 대표를 초청해 의견을 들은 다음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관련 부처 모두가 나서 대응하라"는 주문을 내렸다. 그리고 이날 오후 2시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스 방역에 총력을 기울인 고 전 총리는 상황실에서 하루 두 번씩 보고를 받으며 사안을 실시간으로 챙겼다. 이 같은 '솔선수범'이 있었기에 한국은 환자 4명이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1명도 나오지 않은 채 사태 수습을 마무리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는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 없이 우왕좌왕했다. 확진 환자가 국내에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도 현 정부는 쉬쉬하기 바빴다. 지난달 18일 질병관리본부는 첫 환자에게 메르스 증상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 의사가 검사를 요청한 데 대해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달 20일 질병관리본부 측은 "사람 간 전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만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가 없다"며 심각성을 외면했다.

 

각 보건소에는 지난달 20일 처음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 엿새가 지나서야 메르스 대응지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2015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전 총리 스스로 현장을 누비며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현장을 챙기는 사람이 없다.

 

 

고 전 총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WHO 총회로 출국했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귀국한 지난달 23일 이후 횡보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난달 23일 귀국한 문 장관이 국립인천공항검역소를 찾아 메르스 특별검역 상황과 환자 격리치료, 접촉자 추적조사 등 현장을 점검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이것이 고위 관료가 메르스 관련 현장을 찾은 유일한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10년 사이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현격히 퇴보한 것을 보여주는 것" "당시 한국은 WHO도 인정한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주변국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는데 이 무슨 망신인가"라는 불만이 높았다.

 

매경 기사입력 2015.06.02 17:4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