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의 솔직한 생각 10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남과 중복되는 사업은 안한다‥자동차 진출 없을 것"
요즘 재계 최고 관심사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속마음이다
. 전에도 그랬지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지 1년이 지난 지금 삼성을 실질적으로 끌어가는 이 부회장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삼성을 오래 출입하면서 길에서,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화장실에서, 해외 출장지에서 여러번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속생각을 공개한다.
①“많은 사람들이 삼성그룹이 지주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성 전체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단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지주회사는 관련 법 개정 등 상황 변화에 따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삼성 전문가들이 삼성이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를 지배하는 산업지주회사와 삼성생명 등 금융업체를 지배하는 금융지주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가진 지분이 작아 지주회사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주회사란 자회사 주식을 보유해 자회사를 지배·관리하는 회사를 말한다. 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집단 총수들이 자회사를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삼성이 지주회사를 만들지 않을 것’이란 기사가 사실은 몇 차례 나왔다. 소스는 삼성 고위 관계자였다. 그러나 삼성 전문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삼성이 지주회사를 만들것이라고 본다. 작년 삼성 최고위 관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지주회사를 설립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했다. “지배구조를 강화할 목적으로 지주회사를 설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융 사업 효율화를 목적으로 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지주회사를 설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금융 관련 계열사의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선 금융지주회사는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 설립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 추이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론적으로 금융·보험·증권 분야 자회사를 지주회사 형태로 묶으면 이른바 백오피스라 불리는 후방 지원 업무를 일괄처리할 수 있고, 고객 정보 관리를 일원화해 비용 절감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문제는 관련 법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②“계열사 매각과 관련한 회의를 할 때 많은 임원들이 반대했습니다. 회의 도중 한화에 매각한 계열사 공장에 가 본 사람, 그쪽 직원들과 저녁에 술한잔 해 본 사람 있느냐를 물었습니다. 두어명만 그랬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회사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챙길 능력도 없었습니다.”
삼성그룹은 작년 11월 군사 화학분야 계열사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넘겼다. 매각 결정에 앞서 열린 회의에서 많은 임원들이 매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우리는 과연 핵심 계열사를 제외한 회사들을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를 자문했다. 결론은 주요 임원들은 비주력 계열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다들 핵심 계열사 그것도 삼성전자만 챙긴다”고 말했다. 또 “사실 핵심 사업 말고 다른 사업을 챙길 여력도 없다”고 자평했다. 삼성이 작년 이후 합병·청산·매각으로 정리한 계열사 숫자가 12개에 달한다. 계속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는 이유를 이 부회장의 또 다른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③“우리나라 산업은 지나친 중복 구조입니다. 한 곳으로 몰아줘야 겨우 경쟁력이 생깁니다. 삼성도 살아남으려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해야 합니다. 열정과 자신이 있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제대로 경영할 수 없는 회사를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은 경영인의 도리가 아닙니다. 열정과 자신을 가진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한국 기업의 포화 나아가 사업의 중복을 걱정한다. 좁은 땅떵어리에서 여러 회사가 같은 사업을 놓고 경쟁하면 결국 공멸한다는 것이다. 그는 머지 않아 한국 경제가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정 사업을 놓고 한국 기업끼리 경쟁을 벌여 힘이 빠진 판국에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을 생각하는 듯하다. 그때를 대비해 삼성은 핵심 사업은 인수합병 등으로 더 강화하고, 비주력 계열사는 계속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
④“내년, 후년엔 삼성그룹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외부인들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삼성의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은 이르면 연내에 작년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넘긴 것과 맞먹는 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요즘 삼성 임직원들은 바짝 긴장해 있다. 삼성 계열사 사람들은 곧 드러날 삼성의 미래 청사진 안에 들어가기 위해 다들 실적을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삼성전자 한 사장은 “핵심주력과 비주력을 가르는 조건은 아무래도 매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계열사들은 요즘 매출 증대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평가다.
⑤“모든 아들의 롤모델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고 싶지만 어렵습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묘사하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큰 그림을 보고 큰 틀과 방향만 제시한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디테일에 강하고 세심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렇게 아버지와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쩔 줄 모른다. 사실 그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흉내내고 있는 중이다.
그가 어린 시절 본 이 회장은 사소한 일까지 직접 지시하는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였다. 예를 들어 1980년 무렵 이건희 당시 부회장은 삼성 수원 공장 직원 화장실부터 식당까지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일일이 지시를 했다. 작업환경이 좋아야 직원들이 상쾌한 마음으로 일한다, 그래야 품질과 서비스도 좋아진다는 논리였다. 그랬던 이건희 회장이 경륜이 쌓이면서 큰 그림을 보고 큰 틀을 제시하는 경영자로 변했다. “세심하고 꼼꼼하셨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흉내내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큰 그림을 보고 큰 틀을 제시하는 경지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 3월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 참석했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포럼이 끝난 후 수행비서 없이 혼자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
⑥“완성차 사업엔 절대 손대지 않습니다. 전기차에 미래가 있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삼성에 관한 루머 가운데 가장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아 돌아다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동차 사업 진출설이다. 지금도 삼성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 것이란 이야기가 연간 몇번씩 각종 매체를 장식한다. 실제 삼성 내부 기술 전시회에 삼성이 만든 전기차가 등장한 적도 있다. 삼성은 전기차용 배터리, 전장장치, 소재를 만든다. 삼성이 만든 전기차에서 삼성이 만들지 않었던 것은 고강력 철판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 이유는 시장의 저항 때문이다.
⑦“예를 들어 독일에 가솔린 엔진 엔지니어만 수만명이 있습니다.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사업은 그 국가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업입니다. 삼성이 부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만들겠다고 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반감을 살 것입니다.”
사실 이재용 부회장을 제외한 자동차 부품 관련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은 자동차 사업 진출에 욕심을 낸다. 작년 한 관련 계열사 사장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발언을 생각하면 자신은 하고 싶지만 그룹 최고위층에서 반대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삼성은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다. 새로운 시장을 열겠다고 이미 열려 있는 시장을 닫을 순 없다. 결국 전기차는 삼성에겐 그림의 떡이다.
사실 국내 주요 관련 기업 오너들도 전기차 사업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한다. LS그룹은 자동차 전장부품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런 LS그룹 구자균 회장도 올해 초 이재용 부회장과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유럽·미국 등에 내연기관 엔진 개발로 먹고 사는 사람만 몇 명일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차 시대가 당장 열린다는 생각은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또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이 부회장이 경영을 할 때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복 투자다. 국내에 이미 경쟁사가 있고, 해외에 쟁쟁한 강자들이 즐비하다. 삼성의 완성차 시장에 진입한다면 이른바 레드오션에 뛰어드는 꼴이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⑧“미래 신사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회사의 최고 기밀입니다.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사업 선정의 원칙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핵심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업을 합니다. 다음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 업체가 있어 중복이 생기고 분쟁을 피할 수 없는 사업엔 손대지 않을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완성차 사업 진출은 중복과 분쟁을 피한다는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자동차 사업에 손댈 생각이 없습니다.”
삼성의 미래 핵심 사업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이 부회장은 ‘핵심 역량’과 ‘새로운 가치 창출’이란 2개 키워드를 꺼냈다. 회사가 잘 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다른 기업 혹은 산업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말 그대로 신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지만 그는 “미래 신사업에 대해서만은 절대 말할 수 없다, 회사의 진짜 기밀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업에 이미 글로벌 강자, 글로벌 강국이 있다.
이 부회장 말대로라면 삼성의 미래 핵심 사업은 지금은 없는 사업이다. 지금 없는 신사업을 위한 핵심 기술을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사업 나아가 산업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 일류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라면 초일류 기업은 시장을 만드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소니는 워크맨이란 전에 없는 제품을 만들었고 이후 워크맨 시장까지 만들었다. 삼성도 지금은 없는 제품과 시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2013년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야구 경기를 보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
⑨“콘텐츠 사업은 기본 원칙은 물건을 팔 지역에서 1등인 파트너와 손을 잡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메신저 라인이 1위인 국가에서 파는 스마트폰엔 라인을 집어 넣습니다. 그 지역 소비자들이 라인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소비자들이 왓츠앱을 선호하는 곳에선 왓츠앱을 설치해 판매하는 식입니다.”
삼성의 강점은 하드웨어, 약점은 콘텐츠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전세계 다양한 콘텐츠 소프트웨어 사업 강자들과 손을 잡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은 올해 2월 자체 개발한 메신저인 서비스인 챗온을 접었다. 챗온 뿐 아니라 삼성북스, 삼성뮤직 등 많은 자체 콘텐츠 서비스를 포기한다고 비슷한 시기에 선언했다. 강자들과 손을 잡기 위해 손가락 일부를 잘라낸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⑩“갤럭시S6는 성패는 이제 시장에 달려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과 같은 심정입니다. 사실 지금은 갤럭시S7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현재 이 부회장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품은 갤럭시S6가 아니라 내년 출시할 갤럭시S7이다. 사실 갤럭시S6에 대해 물었을 때는 지난 2월쯤이었다. 당시 삼성은 이미 갤럭시S6 개발과 디자인을 마치고 공장에서 제품을 뽑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고등학교에 막 입학해 첫 중간고사를 마치고 기말고사를 걱정하는 수험생 같은 분위기였다. 채점은 선생님 격인 소비자들이 한다. 걱정해도 점수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펼친다는 식이었다. 지금쯤 이 부회장의 생각 속에서 갤럭시S6가 차지하는 공간이 더 줄어들고, 갤럭시S7이 차지하는 공간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조선일보 2015.05.07 13:31 백강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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