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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걸맞는 인물을 판별하는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

풍월 사선암 2015. 4. 10. 22:58

 

최기영의 세상이야기  

자리에 걸맞는 인물을 판별하는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

 

어제는 제법 큰 사업을 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면접을 통해 사람을 고르는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조언을 구하기에 나름 올바른 판단기준. , 신언서판을 두고 적임자를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중국 당나라 요직의 관리를 뽑을 때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네 가지 판단기준을 말한다.

 

첫째 신()이란 체모(體貌). , 몸가짐을 이르는 말로써 한마디로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 번째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재걸(才傑)이라 할지라도 첫눈에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한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신은 풍위(豊偉)일 것이 요구되었다. 흔히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운 사람을 가리켜 멋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외모를 치장하는 의복이야 얼마든지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를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신체의 일부를 그저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함부로 칼을 대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했다. 이는 몸과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라는 말이다. 아무리 제 멋에 산다지만 멀쩡한 턱뼈를 깎아 얼굴의 윤곽 자체를 물리적으로 바꾸고, 곱디고운 살갗에다 영원히 지울 수도 없는 해괴망측한 문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라 딱히 해 줄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다만 시대의 유행은 언제나 복고되기 마련인데, 유행이 바뀌면 의복이야 얼마든지 바꿔 입으면 되지만, 한 시대의 유행이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유행이 다가와도 영원히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양악수술이나 영구문신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요즘의 대세인 깡마른 사람을 보고는 폐병환자 같다고 하며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사람들을 마른 체구의 사람보다 훨씬 선호했었다. 물론 지금은 반대지만...그러나 명심불망해야할 것은 이런 시대의 유행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언()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언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어 바로잡을 수 있는 이른바 변정(辯正)이 요구되었다.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이는 것을 가리켜 횡설수설(橫說竪說)이라고 하는데 순우리말로는 선소리라 한다. 그래서 이치에 맞지 않는 서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익은 밥 먹고 선소리하지 마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말본새가 가닥이 잡힌 달변가들은 대체로 의로운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결코 궤변(詭辯)을 잘 늘어놓는 사람을 가리켜 달변가라 하지는 않는다. 역사속의 리더들 중에는 달변가가 많았는데, 오늘날 미국인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대통령인 링컨이 상원의원 입후보 때 반대파의 더글러스와 유세전을 벌이던 중 더글러스는 링컨의 약점을 잡아 비방하였다. “링컨은 그가 전에 경영하던 상점에서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상원의원이 되겠습니까?” 이에 링컨이, “더글러스후보가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의 최대 고객은 더글러스 후보였습니다. 저는 이미 그 가게를 떠났지만 지금도 더글러스후보는 그 가게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있습니다.” 당황한 더글러스는,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입니다.” 링컨은 이에 당황하지 않고, “더글러스의 말대로 제가 두 얼굴의 소유자라면 오늘같이 중요한날에 왜 이 못 생긴 얼굴을 들고 나왔겠습니까?” 이말 한방으로 유세전은 끝나 버렸다.

 

셋째 서() 글씨. , 필적(筆跡)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필적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한 까닭에 서()에서는 준미(遵美)가 요구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필가에는 단연 진()나라의 왕희지를 손꼽을 것이며, 우리 조선 역사 최고의 명필로는 우리에게 한석봉으로 잘 알려진 한호,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 가장 유명한 시조중의 하나인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봉래 양사언, 추사 김정희, 자암 김구 등이 손꼽힌다.

 

다소 상충되는 이야기지만, “천재는 악필이다.”라는 말도 있다. 유명인 중에 악필의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전쟁과 평화의 저자인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소문난 악필이었다. 남이 글을 알아보기가 하도 어려워서 그의 아내 소피아가 남편의 원고를 해독하여야만 했다고 한다. 또한 위대한 악성 베토벤의 수작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그가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 말파티를 위하여 만들고 그 제목을테레제를 위하여로 붙였다고 하는데, 작품의 명칭이 오늘날에 엘리제를 위하여로 굳어진 것은 1867년 초 처음으로 이 작품을 출판한 루트비히 놀이 친구 브레들의 집에서 베토벤 자필 악보를 보며 하도 악필이라 글자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깃발〉〈행복등으로 유명한 청록파시인 유치환은 그의 자서전에서 세상에 나 같은 악필은 드물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넷째로 판()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判斷力)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하다 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하여 문리의 우장(優長)할 것이 요구 되었다. 판단력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울러 당서(唐書)》〈선거지(選擧志)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무릇 사람을 가리는 방법에는 네 가지(신수, 말씨, 글씨, 판단력)가 있다. 네 가지를 신언서판이라 하여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덕행·재능·노효(勞效)의 실적을 감안한 연후에 주요관직에 등용한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란 것이 사실 쉽지 않음에 옛 성현들은 전선(銓選). , 알맞은 사람을 골라 뽑아 제대로 기용하는데 있어 객관적이고 엄격한 판단기준을 만들어놓고 항상 신중하게 인재를 뽑았던 것이다. 알맞은 인재를 뽑아 알맞은 자리에 기용하는 적재적소의 판별이야말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통솔하는 수장으로서의 으뜸덕목이 아닌가 싶다.

 

- 2015.04.02 한림(漢林)최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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