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탄생 140주년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한국 관광객도 자주 찾는 곳이다. 이 궁전에 있는 시계는 모두 9시 5분에 멈춰 있다.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이곳 집무실에서 서거한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리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케말 파샤’로 널리 알려진 아타튀르크는 1차대전 후 주변국과 싸워 터키 영토를 수호하고 제정(帝政)을 공화정으로 바꾸는 근대화 혁명을 이끌었다.
아타튀르크는 독재자였다. 반(反)정부 언론을 탄압했고 개혁에 반대하는 정당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타튀르크에 대한 터키인의 존경은 그 때문에 달라지지 않았다. 터키 곳곳에는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의 다리·경기장이 수없이 많고 도시마다 아타튀르크 기념관이 있다. 공공건물은 물론 학교 교실, 집마다 아타튀르크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아타튀르크가 없었으면 터키도 없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사학자 이인호 교수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버금가는 대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민족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그렇고,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인권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이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역사적 이중(二重) 혁명의 중심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승만에 대한 예우는 터키의 아타튀르크와 다르다. 4·19혁명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그의 이름은 ‘독재자’와 동의어가 됐다. ‘분단의 주범’ ‘미국의 앞잡이’ 같은 오명(汚名)도 함께했다. 이승만을 역사 속에 매장해 대한민국 건국 의의(意義)에 흠집을 내려는 세력의 공세가 집요했다. 대한민국은 건국절도 없고 다른 나라에는 흔한 건국 기념 공원, 건국 기념관도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이승만 지우기’에는 반(反)대한민국 세력뿐 아니라 정부도 한몫했다.”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승만의 며느리 조혜자씨가 한 말이다. 이승만은 1965년 망명지 하와이의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서거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5년 동안 묘비 하나 없다가 세운 게 '우남 이승만 박사의 묘’였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합장한 후인 1998년 유족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묘비를 준비했지만 정부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라고 바꿔 세웠다. 올해는 이승만 서거 50년이 되는 해. 내일은 그가 태어난 지 꼭 140년 되는 날이다. 이승만에게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국 현대사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다.
-조선일보 2015.03.25 김태익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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