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최측근 마크 리퍼트 주한 美대사

풍월 사선암 2015. 3. 8. 00:13

피습 전날 만난 리퍼트 "난 한국이 정말 좋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최측근' 마크 리퍼트 주한 대사

 

3~4일 걸어서 출근 / 한국인 매우 개방적이고 따뜻하게 환대해 줘

모든 관계 도전 있는거지만 ·관계 튼튼하다 생각

 

수개월째 한국어 공부 / 매일 1시간 반 정도 한국어 개인교습 받아

아들, 한국식 이름 지어줘 / 사주 보고 이름 세개 받아그중 '세준'을 골라 / 한자도 마음에 들고 발음도 좋더라

 

"한국 음식은 문제다내가 너무 좋아해 몸무게 왕창 늘 것 같다"

직접 SNS 한다 / 한국인 직원·경호원에게 한국말 물어본 뒤 올려 / 문법 틀렸다고 지적하면 '감사합니다, 선생님' 답변

 

'그릭스비'로 애견외교? / 그런 역할 기대 안 했지만주변 사람들 몰려 놀라 / 그릭스비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까지 만들어

한국영화 '명량' 보고 싶다 / 일본군이 못 올라타도록 이순신 장군, 거북선 제작 / 혁신이 전쟁 판도 바꿔 나도 해군 출신이라 흥미

 

습격당하기 전날인 4,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 정동 주한 미국 대사관저 마당에서 애견 그릭스비를 끌어안고 웃음을 짓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리퍼트 대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흉기 습격을 받고 얼굴과 손에 부상을 입었다. 리퍼트 대사는 4·미 관계에 앞으로 여러 도전이 있겠지만, 어떠한 도전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한·미 동맹은 튼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일 아침, TV를 보다가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속보를 봤다. 리퍼트 대사는 얼굴과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날 오전 738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김기종씨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당했다. 김씨는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는 친북 성향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을 "·미 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습격당하기 전날인 4,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 정동 주한 미국 대사관저 마당에서 애견 그릭스비를 끌어안고 웃음을 짓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리퍼트 대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흉기 습격을 받고 얼굴과 손에 부상을 입었다. 리퍼트 대사는 4·미 관계에 앞으로 여러 도전이 있겠지만, 어떠한 도전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한·미 동맹은 튼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피습 전날인 4일 오후 서울 정동의 대사관저에서 리퍼트 대사를 인터뷰했다. 리퍼트 대사는 이날 "한국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줘서 내가 참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최연소 미국 대사'로 서울에 온 지 넉 달, 그는 여러 번 "서울 사는 게 참 좋다"고 했지만 이제 그렇게 생각하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리퍼트 대사는 피습 직후 병원으로 가면서 "여러분, 저 괜찮습니다"라고 했고, 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후엔 트위터에 "잘 있고 상태가 굉장히 좋다"는 글을 올렸다. "성원에 깊이 감동했다! ·미 동맹을 진전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겠다!"고도 했다. 트위터 마지막엔 한글로 "같이 갑시다!"라고 썼다.

 

하루 1시간 반씩 한국어 공부 중

 

5일 흉기 습격을 당한 마크 리퍼트 대사가 강북삼성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들어 서고 있다. 그는 취재진에게 난 괜찮다(I am OK)”고 말했다.

 

피습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인 4일 서울 정동의 미 대사관저에서 만난 리퍼트 대사는 좀 지친 듯했다. 빡빡한 일정 소화하랴, 태어난 지 40일이 좀 넘은 아들 세준이 돌보랴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인터뷰 자료로 준비한 메모를 보여주면서, "원래 이런 것은 안 보고 하는데 이번엔 자꾸 잊어버려서 여기저기 메모를 해뒀다"고 했다. 넓은 거실엔 그의 애견 그릭스비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날 대부분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던데.

 

"몇 달째 계속하고 있다. 개인 교습을 받으며 하루 1시간 반 정도 공부한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중국어도 배웠는데 많이 잊어버렸다. 한자를 아니까 한국어를 배울 때도 도움이 된다. 발음이 비슷한 게 많더라."

 

지난 1월 아들(제임스 윌리엄 세준 리퍼트)이 태어났다. 곧 백일인데 한국식으로 백일잔치도 할 생각인가.

 

"당연히 한다. 한국 친구들이 백일잔치를 하라고 한다. 문제는 아들 세준이 때문에 너무 바쁜 데다 일이 많아서 여력이 없다는 거다. 어떻게 백일잔치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뭐든 하려고 한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말로 "세준이 안 자서 너무 피곤해요. 그리고 요즘 너무 바빠요. 어젯밤, 오늘 아침 세준이 안 자요. 제발 잠 좀 자라. 아기는 기분 좋은데 난 피곤해요"라고 했다.

 

한국식 이름은 아들 사주를 보고 지었다는데.

 

"중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아이가 딸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여자아이 이름을 생각해봤다. 그런데 이름 후보 명단을 본 한국 친구들이 '너무 촌스럽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주를 봤다. 이름을 세 개 받았는데 그중에서 '세준'을 골랐다. 한자도 마음에 들고 발음도 좋았다."

 

아들 세준, 정말 예쁜데 안 자서 힘들어

 

아빠가 된 소감은.

 

"정말 좋다. 그런데 세준이가 안 잔다. 그래서 피곤하긴 하지만 기분은 좋고 정말 행복하다. 세준이가 정말 귀엽다. 또 한국인들도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기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게 참 좋다. 애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도 나누고 서로 도움도 준다. 우린 막 부모가 돼서 모르는 게 많으니까. 아들 세준이가 태어나기 전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0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자유시간이 마이너스다."

 

대사와 함께 한국에 온 애견 그릭스비도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나.

 

"그릭스비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냄새, 사람, 음식을 접하고 있다. 그릭스비 덕분에 한국 친구들도 생겼다. 그릭스비는 내가 사람들을 사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릭스비와 같이 걸어다니면 사람들이 그릭스비를 보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인사한다. 그럴 땐 대사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나눌 수 없는 인간적이고 소탈한 얘기를 하게 된다. 한번은 (거리에서) 어떤 사람과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즐겁게 했다. 며칠 후 덕수궁 근처를 지나가는데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그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당신이 미국 대사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

 

관저에서 대사관까지 매일 그릭스비와 함께 걸어서 출근하나.

 

"일주일에 3, 4일 정도 걸어서 대사관에 간다. 세준이 낳기 전에는 거의 매일 그릭스비와 아내와 함께 걸어갔다. 그릭스비는 내가 어른이 돼서는 처음 키우는 개다. 어렸을 때는 골든레트리버를 키웠다. 난 항상 개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집에서 키울 여건이 안 돼 못 키우다가 3년 전에 그릭스비로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해줬다. 바셋하운드종이 좀 게을러 보이지만 고집도 세고 똑똑해 사고도 많이 친다. 하루는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계속 긁더라. 마치 '빨리 문 열고 음식 내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릭스비가 '애견 외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데리고 왔나.

 

"전혀. 그릭스비가 이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릭스비를 처음으로 거리에 데리고 나갔는데 그릭스비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걸 보고 놀랐다. 그래서 그릭스비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도 만들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직접 하나.

 

"내가 직접 한다. 재미있다. 사전도 찾아보고, 한국인 직원들, 경호원, 기사에게 한국말을 물어봐서 올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문법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그럼 나는 다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쓴다. 굉장히 멋진 경험이다."

 

 

과거에 주한 미국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은 정부 대() 정부의 관계에 주력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보통 사람들과 접촉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한국에 와서 가장 우선시하는 일 중 하나가 보통 사람들과의 교류다. 정부 대() 정부,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 관계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엮여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 사람들 따뜻하게 환대해줘"

 

한국에 온 후 반미(反美)감정을 느낀 일이 있나.

   

리퍼트 대사가 지난달 27일 부산 국제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먹고 있다. 그는 영화 국제시장의 무대인 이곳에서 두 나라의 군사적 역사(6·25전쟁)를 공유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없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개방적이라 따뜻하게 환대해줬다. 내가 운이 좋은 거 같다. 나와 내 가족 모두 한국 사회에서 아주 큰 환영을 받아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든 관계에 도전이 있겠지만 한·미 관계는 어떤 도전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생각한다. 대사로서 보내는 몇 년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 관계에 어려운 이슈가 생겼을 때 공개적으로 토론할 생각도 있나.

 

"일반적인 미국의 외교 트렌드는 이제 더 쌍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열려 있고 투명한 관계를 지향한다. 토론은 당연히 하고 싶다. 나의 다음 계획은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국회, 언론, 시민단체, 학생단체 등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양국 간의 투명하고 오픈된 대화는 공통의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기습 참배 했을 때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는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외교적 직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 일은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적 전통은 주재국 정부와 좋은, 또한 공개된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한국과도 마찬가지다. 듣는 것,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네이비실 정보장교로 이라크에 간 경험도 있다. 외가 쪽에 군인이 많아 군에 자원했다고 하던데.

 

"외할아버지는 공군 조종사, 외삼촌도 조종사였다. 엄마의 사촌은 해군장교로 일했다. 그런 분위기가 내가 이라크에 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둘째 이유는 9·11 이후 나도 국가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또 항상 군에 가야 한다는 소명의식 같은 게 있었다. 군에 3년 있었는데, 군 생활을 아주 좋아했다. 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다."

 

군 복무 경험이 외교관 생활을 할 때도 도움이 되던가.

 

"우선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과 한국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군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됐다. 또 군의 봉사와 희생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알게 됐다. 군인들은 장시간 가족과 떨어져서 위험한 일을 한다. 두 나라 군이 함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미 양국 군대는 함께 많은 것을 이뤄왔다. 이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에 갔을 때 위험한 일을 겪은 적은 없나.

 

"없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 식당에서 게딱지에 손을 베인 것 정도랄까. 난 운이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사고는 없었고, 부모와 아내는 그것에 매우 감사한다."

 

오바마 처음 만났을 때 뭔가 될 거라 느껴

 

오바마 대통령과 농구를 자주 했다는데, 서울에 와서도 농구를 가끔 하나.

 

"한국에선 아직은 안 해봤는데 이제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나와 자주 농구를 한 것은 그가 항상 날 이길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다. 난 농구를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정말 즐긴다. 원래 운동을 다 좋아한다. 얼마나 잘하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풋볼 야구 농구 등을 고등학교 다닐 때 다 했다. 군대 있을 때는 달리기와 웨이트트레이닝에 꽂혔다. 하이킹도 좋아하고 태권도도 배우고 싶다."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곧 일본을 방문한다는데 한국 방문 계획은 없나.

 

"내가 알기로 없는 거 같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부부 마음속에 한국이 매우 특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은 전례 없이 4번이나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 음식과 문화도 좋아한다. 내가 한국 대사로 올 때도 '가서 불고기 많이 먹어라'고 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자주 전화하나.

 

"미국의 전통은 대통령과의 대화나 사적인 일은 비밀로 하는 거다. 그걸 깰 수는 없다. 그는 좋은 친구이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함께 재밌는 일도 많이 했고.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건 매우 즐겁다. 멀리 있지만 마음은 항상 가깝다."

 

오바마 대통령과 처음에 어떻게 만나 같이 일하게 됐나.

 

"내 친구 데니스 맥도너(지금 백악관 비서실장)가 전화해서 상원 외교위의 오바마 의원 정책보좌관 자리 면접을 보라고 했다. 난 그때 새 직장을 찾고 있진 않았지만, 오바마에 대해 읽은 게 있어서 관심이 생겨 만나러 갔다. 맥도너에게 '가긴 가는데 일을 할 거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의회 건물 지하 오피스에서 오바마를 만났다. 오바마는 정말 똑똑했고 친근했고 유머 감각이 넘쳤다. 그는 매우 진지하다가도 웃겼다. 한참 얘기하면서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오바마가 나중에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그가 정말 특별하다는 건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그의 정치적 이력을 보면 일리노이주에서 상원 예비 선거를 할 때 당시 후보가 6명이었는데 오바마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당선됐다. 일리노이 사람들이 나중에 '그 친구는 정말 뭔 일 낼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미국 정치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 돈도 많이 들고 선거운동도 어렵다. 하지만 그가 뭔가 될 거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특출나게 훌륭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동아시아) 과거사 갈등은 한··3국 모두의 책임"이라고 발언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 문제에 대해선 워싱턴에서 충분히 해명한 걸로 안다. 거기에 추가할 건 별로 없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어렵고 감정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것도 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기 왔을 때 '위안부 문제는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다. 전쟁 상황을 감안해도 쇼킹한 일'이라고 했다. 또 고노 담화(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은 담화)를 지지한다고 했다."

 

·일 관계가 껄끄러우면 미국 입장에서도 어려울 것이다.

 

"·일 관계는 매우 어렵고 힘든 이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중요한 국가가, 양국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다. 평화로운 관계가 모든 이에게 이익이 된다."

 

영화 '국제시장' 외에 다른 한국 영화도 봤나.

 

"많지는 않다.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는 '명량'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군 전략 혁신가라고 들었다. 거북선은 일본군이 한국 배 위에 올라타는 걸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해전에서 혁신이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게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해군 출신이라서 더 관심이 많다."

 

대사 부임 전에도 한국에 자주 왔었나.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하면서 여러 번 와봤다. 예전에 한국 출장 왔을 때는 차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창밖으로만 한국을 봐야 한다는 게 참 속상했다. 차에서 내려 커피 마시고 길에서 사람 만나 얘기하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대사가 되니 아주 좋다. 길을 걸어다니며 경험하는 게 진짜 경험이다."

 

북한 김정은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봤나.

 

"봤다. 미국의 전통은 표현의 자유다. 영화나 정치 풍자는 다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그 영화는 풍자 코미디인데 영화사에 사이버 공격을 가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거다. 21세기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미국은 새로운 제재를 발동했다."

 

"한국에 살 수 있어 좋다"

 

한국 대사로 부임한 후 북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던가.

 

"그렇진 않다. 내가 어디 사느냐와 관계없이 북한의 행동 그 자체가 중요하다. 북한이 지난 몇 년간 해온 걸 보면 도발적 행동,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했다. 북한의 행동은 매우 위험하고 문제가 많다."

 

미국과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공은 북한 쪽에 넘어가 있다. 우린 반복해서 책임 있는 대화를 하자고 했다. 우린 북한의 의지를 계속 테스트해왔다. 다른 트랙에서 남한이 남북 대화를 제의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 중국 누구와의 대화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열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현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인가.

 

"아니다. 오바마 정부는 지속적으로 대화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란, 쿠바, 미얀마의 경우에서 보지 않았나. 그쪽에서 진지하게 나오면 우린 항상 진짜 대화를 하며 진전의 길을 모색해왔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570주년 전승기념일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여부와 관련해 미국은 부정적인 입장인 것 같은데.

 

"아니다. 우선 이 결정은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이니까. 미국과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90년대 초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신 안보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행동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10대 소년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해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극단 세력은 그동안은 한국과는 먼 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테러리즘은 국경이 없는 문제다. 전 세계적인 위협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모든 자원과 기술을 동원해서 IS를 퇴치하려고 한다. 군사적 행동은 중요하다. IS 퇴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아니, 지금 시점에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주한 미국 대사로 있으면서 가장 좋은 게 뭔가.

 

"그냥 한국에 사는 것 자체가 좋다. 나는 항상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한국 사람, 문화, 음식은 물론, 일도 매우 재미있다. 이렇게 역동적인 나라를 지켜보는 게 좋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나라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가 행복하고 운이 좋다고 느낀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문제다.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몸무게 왕창 늘 것 같다. 매일 달리고 운동하는데도 그렇다. 한국 음식은 방심하면 끊임없이 먹게 된다."

 

어떤 주한 미국 대사로 기억되고 싶나.

 

"이 지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한·미 관계를 새롭게 한 차원 높이는 방향으로 이끈 대사로 기억되고 싶다."

 

입력 : 2015.03.07 03:00 | 조선일보 강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