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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시대] 부모 등골 빼는 자녀 결혼비용

풍월 사선암 2015. 3. 6. 22:20

결혼 아들 서울 집 해주고 시골 간 65결국 우울증

 

[반퇴 시대] 부모 등골 빼는 자녀 결혼비용 <>

자식 위해 노후 희생한 부모들 / 충북 청원군으로 간 박현숙씨

도심생활도 친구도 사라져 고통 / 결혼비용 중 주택마련 비중 71% / 5060 혼례비 대출, 2년 새 2배로

 

박현숙(65·)씨는 최근 우울증을 앓았다. 발단은 아들의 결혼이었다. 2009년 결혼한 박씨의 아들 최모(36)씨는 회사 근처인 서울 금호동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3억원이 넘는 집값을 아들이 모두 조달하기는 힘들었다. 박씨는 자신이 살고 있던 충북 청주의 36평 아파트(시가 12000만원)를 판 뒤 모아 둔 돈까지 보태 아들에게 2억원을 줬다. 박씨와 남편(68)은 청주 인근 청원군으로 이사했다. 가끔씩 주말마다 오가기 위해 3000만원에 매입한 다음 15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집이었다.

   

아들 결혼비용으로 2억원을 내줄 때만 해도 부부는 은퇴자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아들이 빚을 안고 출발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집을 줄이는 게 낫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늘그막에 조용한 시골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청주에서 친구들과 정기모임을 하고 수영과 노래강좌에 다니던 박씨는 전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박씨는 소형 중고차를 사서 매일같이 청주시내로 나간다. 한 달 기름값만 20만원이 들지만 우울증을 앓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박씨는 청주에 있는 싼 아파트로 다시 이사하고 싶지만 마땅한 집이 없어 고민이라며 아들 결혼자금으로 목돈을 쓴 뒤 이렇다 할 수입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자녀 결혼비용은 5060세대의 노후자금을 갉아먹는 주요인이다. 5060세대 스스로 자녀 결혼은 부모의 행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여론조사팀이 50대 이상 부모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3%자녀의 결혼비용을 지원했거나 지원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지원 이유로는 결혼비용 지원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65.3%로 가장 많았다. 

 

수억원에 달하는 결혼비용을 자녀세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도 반퇴세대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웨딩업체인 듀오웨드 조사 결과 신혼가구당 주택비용은 평균 16835만원. 서울과 수도권은 18089만원이고 강원도·영남·충청·호남 등은 15419만원이다. 급등세를 이어가는 전셋값, 떨어지지 않는 집값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전체 결혼비용 중 주택 마련비용은 70.7%에 이른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결혼비용 상승이 주택가격 상승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생활 5~6년차인 신혼부부의 저축액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결혼비용은 결국 부모 몫으로 전가된다. 본지 조사 결과 부모 10명 중 3명은 지원할 여력이 없을 경우 빚을 내서라도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자녀세대 역시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2030세대 273명 중 절반 이상(55.4%)부모에게 결혼비용을 지원받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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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녀 결혼비용을 대기 위해 대출을 받는 부모도 늘었다. 은퇴자금을 마련하기는커녕 짐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근로자생활안정자금 중 혼례비 융자건수는 2012310건에서 2014563건으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대출액도 211900만원에서 2.5배인 545780만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원액을 두고는 부모세대-자녀세대 간 이견이 두드러졌다. 부모는 1000만원 미만을 지원하겠다는 응답이 30.2%로 가장 많았고 ‘1000~3000만원 미만’(25.4%), ‘3000~5000만원 미만’(18.8%) 순이었다. 반면 자녀들은 1000~3000만원 미만(26.7%), 5000~1억원 미만(26.1%)을 기대했다. 1억원 이상을 지원받고 싶다는 대답도 18.2%였다.

 

전문가들은 반퇴세대가 최소한의 노후자금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 결혼에 따른 출혈이 크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이사는 과거에는 자산을 축적한 부모가 자녀 결혼비용을 대주고 자녀가 은퇴한 부모를 부양하는 암묵적 신사협정이 있었지만 수명이 길어지고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미래에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이어 은퇴 후 생활자금을 치밀하게 계산해 결혼비용 지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힘으로 웨딩족 예물·예단 빼고 신혼집은 빌라 전세

 

반퇴 시대 부모 등골 빼는 자녀 결혼비용 <>

부모 도움 없이 셀프웨딩 어떻게 

유원지서 직접 웨딩 촬영 하고 / 드레스도 10만원에 해외 직구

신랑·신부가 비용 절반씩 나눠 / 비싼 혼수 대신 필요한 것만 장만

부모 은퇴 후 안정된 생활 위해 / 자녀가 먼저 간소한 예식 권해야

 

예식비 아껴 해외 신혼여행 가서 웨딩 촬영 지난해 4월 결혼한 홍승우(32).이채영(30)씨 커플은 판에 박힌 스튜디오 촬영 대신 69일간의 체코 프라하 신혼여행 동안 웨딩 촬영을 했다. 드레스와 구두 구입비등 120만원이 들었지만 결혼식 비용을 아껴 부릴 수 있었던 작은 사치였다. 홍씨 커플은 13평 빌라(전세 7500만원)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예물·예단도 생략해 부모 도움 없이 결혼식을 치렀다.

 

올해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권나영(25·)씨는 예비 신랑과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자는 다짐부터 했다. 모아둔 돈이 많진 않았지만 양가 부모에게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 이를 위해 지난 1스튜디오 촬영대신 카메라 하나만 메고 경북 고령의 유원지에 셀프웨딩 촬영을 다녀왔다. 데이트하는 모습을 타이머 설정을 이용해 찍었다.

 

예산은 인터넷으로 구입한 원피스(4만원)와 풍선 등 소품(2만원), 식비까지 포함해 10만원도 들지 않았다. 오는 5월엔 대구 근대거리에서 드레스를 입고 셀프촬영을 할 계획이다. 드레스는 값싼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 알아보고 있다. 웨딩플래너도 없다. 대신 스스로 발품을 팔고 있다. 식장도 저렴한 웨딩홀이나 경북 청도 친정집 마당에서 치르는 하우스웨딩을 고민 중이다. 권씨는 부모님께서 돈을 보태줄 테니 더 좋은 곳에서 하라고 한다그래도 우리 힘으로 형편에 맞게 하고 싶다고 설득해 도움 없이 치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모 세대들에게 자녀 결혼 비용은 곧 노후 비용을 허무는 주요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결혼 독립을 선언하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홍승우(32)·이채영(30·)씨 부부는 부모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결혼식을 치렀다. 비용은 1억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비결은 신혼집 환상 버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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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처음에는 좀 더 큰 집에서 번듯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집은 어차피 나중에 돈 벌어서 옮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응암동에 1990년대 초반 지어진 13평 빌라를 전세 7500만원에 구했다. 이씨는 부모님께서 왜 그런 집에서 시작하려고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다. 부모님 노후자금을 건드리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우리가 더 움직이고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설득했다고 했다.

 

결혼 독립을 택한 이들은 예물이나 예단 같은 인사치레를 생략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13년 결혼당사자·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 비용 중 집값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예물(평균 737만원)과 예단(평균 666만원)이었다. 응답자의 85%결혼에 호화·사치 풍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사진사 없이 직접 찍기도 올해 결혼 예정인 노광운(31)·권나영(25)씨 커플. 스튜디오 웨딩 촬영 대신 지난 1월 셀프 촬영을 했다. 이들은 사진사 없이 타이머를 이용해 데이트하는 모습을 찍었다.

 

셀프웨딩족은 이 같은 거품을 걷어낸다. 홍승우·이채영씨 부부도 불필요한 예물·예단을 하지 않았다. 결혼반지는 110만원. 양가 아버지들이 식장에 입고 올 양복도 인터넷으로 각각 30만원씩에 맞췄다. 4월 광주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최유진(28·)씨도 예물·예단을 생략하기로 했다. 최씨는 양가 부모님들이 덮을 이불이 없고 쓸 그릇이 없어 그런 걸 해오느냐며 양해해주셨다고 말했다. 최씨는 남편과 결혼 비용을 절반씩 분담하기도 했다. 결혼 비용이 2억원 조금 넘게 들었지만 부모님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지금까지 신랑 쪽에서 집을 해오고 신부 쪽에서 가구·가전을 해오는 게 통념이었다집 마련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신부 쪽에서도 비싼 가전·가구를 구매하면서 결혼 비용이 올라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1 1로 동등하게 결혼 비용을 쓰면 필요한 것만 장만하게 되면서 스스로 결혼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결혼한 이경한(33)·최홍희(29·)씨 부부는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공식을 깼다. 꾸준한 대화를 통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했다. 신부 드레스는 미국 인터넷 쇼핑몰 이베이에서 10만원 상당의 롱드레스를 직접 구입했다. 신랑 예복은 50만원을 주고 결혼식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세미 정장을 골랐다.

 

결혼식은 레스토랑에서 치러 대관료를 따로 지불하지 않았고, 결혼식 당일 메이크업도 레스토랑 근처 중소업체에서 33만원에 했다. 200~300만원 상당의 스드메93만원에 해결한 것이다. 최씨는 해외 유학 시절 현지 친구 집에서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는 걸 보고 작아도 정말 축하받을 수 있는 결혼식을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김동엽 이사는 부모 세대들이 결혼을 앞둔 자녀들에게 노후 걱정을 선뜻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자녀들이 먼저 부모님은 은퇴 후에 어떻게 사실까생각해보고 터놓고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5.03.05 01:07 / 특별취재팀=채윤경·노진호·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