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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노년… '老老부양' 15만가구

풍월 사선암 2015. 2. 7. 13:49

고달픈 노년'老老부양' 15만가구

 

60이상 자녀가 팔순·구순 부모 모시는 가구 급증

"몸도 힘들고 경제적 여력도 없어"노후문제 악화

   

인천에 사는 한모(65)씨 부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95)를 모시고 산다. 목욕을 시키기 위해 옷을 벗기려 하면 어머니는 "왜 나를 버리려고 하느냐"며 욕하고 화를 낸다. 한씨는 "아내도 유방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고 있어서 생활비 마련조차 어려운데 홀어머니 모시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요양보호사가 집에 와서 도움을 주지만, 어머니는 "수건을 훔쳐가는 도둑"이라며 적대시한다.

 

한씨는 "나도 50대까지는 몰랐지만 환갑이 넘으니까 부모 모시기가 너무 벅차다. 어딜 모시고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머무르게 하니 나도 죄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급속한 고령화 여파로 백발의 60대 자녀가 팔순·구순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老老) 봉양' 가구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주 명의로 노부모가 가구원으로 기재된 가구는 2013년 현재 142065가구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28"지난해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15만 가구 안팎일 것으로 추정한다""초고령 인구인 85세 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서 노·노 봉양 가구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령인 85세 이상 노인 수는 작년 말 498321명으로, 2013(455785)보다 4만여 명 늘어났다. 하루 평균 116명이 초고령 노인으로 바뀌는 셈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뒤인 2025년이면 85세 이상 노인이 현재의 2배가량인 116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평균 수명이 198066.2200076201080.8세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노 봉양 가정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는 노·노 봉양 가구가 늘면서 60·70대 노인이 노부모를 학대하거나, 빈곤 때문에 노인 자살로 이어지는 일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의 복지 死角'버거운 동거'老老학대 부르기도

 

['老老부양' 15만 가구]

노후 준비 못한채 은퇴후 노부모 모셔야하는 이중고 "나도 대우받을 나이인데"

80세 이상 老人 자살 많아 "고령화 따른 필연적 결과정부가 老老케어 지원해야"

 

85세 이상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노·(老老) 봉양 가구가 늘고 있다. 자손들과 오손도손 사는 가정도 많지만, 노인들끼리 사는 가정에는 장수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제대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한 60, 70대 자녀 노인들이 팔순, 구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수가 축복만은 아닌 시대다. 더욱이 늙어갈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 속에서 노인 빈곤은 노인 학대나 자살로 치닫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며느리·사위 눈치 보는 노인들

 

서울 영등포구에서 아들(80)·며느리(73)와 함께 사는 A(100) 할머니는 교회 목사와 상담했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무서워 반찬도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말도 못한다""내가 오래 사는 게 죄"라고 했다. 며느리와 툭하면 다퉈 며칠간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아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하소연이었다. 목사가 중재에 나서 화장품 포장공장에서 일하는 며느리와 상담했다. 며느리는 "내가 70이 넘은 나이에 반찬투정하는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남편도 먹여 살려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아들은 "맏이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데 나도 몸과 마음이 지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만 쌓인다"고 했다. 이인수 한서대 교수는 "육순의 노인 며느리가 구순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스트레스는 점차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101세 어머니 모시는 칠순 딸 - 서울 성내동에서 101세 어머니 김금순씨를 모시고 사는 딸 권옥순(70)씨가 김씨의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고 있다. 이처럼 60~70대 자녀가 팔순·구순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老老) 봉양가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선 노인 질병·빈곤으로 인한 노·노 학대도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부산 수영구에 사는 박모(78)씨는 장모(93)6년째 모시고 산다. 처남들이 모두 사망해 큰사위인 그가 장모를 모시고 있다. 그는 "장모님이 원체 성격이 까다로워 함께 사는 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 나도 자식들에게 대우 받으며 살아야 하는 나이인데 각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다툼으로 변하기 일쑤다"고 했다. 장모는 온종일 방에만 누워 있고 나도 얼굴을 맞대기 싫어해 밥상도 함께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인 학대 늘고 자살로 내몰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노 학대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자녀와 며느리, 사위 등 존속에 의한 학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B(82)씨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휴가를 가자며 남해로 떠났다. 아들 내외는 그를 휴가지에 혼자 놔두고 돌아와 버렸다. 길을 헤매던 B씨는 경찰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왔으나, 아들은 "처음 본 사람"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결국 경찰은 관련 기관과 협의해 B씨를 요양시설로 보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노·노 학대 조사에 나서도 존속폭행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가 없다""피해 노인이 처벌 의지를 접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작년 말 서울의 한 노인 보호전문기관에 온 박모(92) 할머니는 울기만 했다. 할머니는 며느리(64)가 주먹으로 때려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는 맏아들 집으로 왔으나, 아들 내외가 "재산은 동생에게 주고 빈 껍데기로 왔다"며 폭언을 하고 옷 보따리를 집어던지거나 집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다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은 빈곤 노인들이 늘고 가족에게 학대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8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123.3명이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우리나라 자살률(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9.1)4배 이상이고, 10대 청소년 자살(5.2)24배에 가깝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사회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생긴 필연적 결과"라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책임을 가정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시대적 변화에 맞춰 노노 케어 사업을 늘려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도 급증작년 132만명, 10년뒤 225만명

 

돌봄 서비스 혜택 20만명뿐장기적인 대책 세워야할 때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사는 독거노인 이모(85) 할머니는 새벽 6시쯤 리어카 한 대를 끌고 폐지를 줍는다. 1~2시간씩 동네를 한 바퀴 돌아 폐지를 줍고, 2시간 정도 15평짜리 집에서 쉬다가 다시 폐지를 주우러 나오길 하루 4차례 이상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하루에 버는 돈은 많아야 4000원이다. 기초연금 20만원이 이 할머니의 주 수입원이다.

 

"50대 아들은 희귀병에 걸렸고, 출가한 딸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자식들이 날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지." 할머니는 자식 때문에 괴롭고, 몸이 아파 힘든 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다.

   

이 할머니처럼 일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욕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독거노인이 해마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2005777000, 20101056000, 지난해엔 1317000명으로 증가했다. 통계청은 독거노인 수가 2025년엔 2248000, 2035343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했다.

 

대전의 보증금 200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94) 할머니는 폐지도 못 줍는다. 귀가 잘 안 들리고 허리도 불편해 걷기조차 힘들다. 치아가 하나도 없어 씹는 음식을 먹기도 힘들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암에 걸려 위독한 상황이라, 가끔 감기약이나 노인 기저귀,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아파트 반장이 유일하게 보는 이웃이다.

 

이처럼 독거노인들의 삶이 고달프다 보니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3년째 하락하고 있음에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64.2(2013)으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남자 노인 자살률은 2013102.3명으로 여전히 인구 10만명당 100명을 넘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거노인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기본 돌봄 서비스' 수혜자는 20만명이다.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독거노인 대상자를 올해 22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선우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금은 저소득층 중심으로 방문 서비스를 하지만, 앞으로 중산층 이상 독거노인도 늘 전망"이라며 "독거노인을 서로 만날 수 있게 연계하는 서비스 등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老人도우미가 독거노인 말동무'老老케어' 활발

 

21조로 10회 방문하고 한달 20만원 수당 받아각 지자체 잇따라 도입

 

"또래 노인들이 와서 말동무해주니 얼마나 고맙소. 나는 하루 중 말동무들이 찾아오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에선 여유가 있는 노인을 모아 독거노인을 돌보게 하는 '노노케어(老老care)' 사업이 활발하다. 지난해 서울시 25개구가 노노케어 일자리로 고용한 노인은 6731명이고, 돌봄 대상인 독거노인은 5741명이다. 노인 인구는 급증하고 돌볼 노인은 많은데, 노인 복지를 담당하는 한정된 공무원들이 일일이 독거노인을 돌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노케어는 정부가 벌이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노노케어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은 65세 이상 중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 노인이다.

 

서울 동작구는 2005년부터 노노케어 사업을 해왔다. 지난해엔 노인 142명을 고용해 독거노인 338명을 돌보게 했다. 노노케어를 하는 노인은 21조로 지역 독거노인을 찾아, 3시간 정도 말동무가 돼주고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는 등의 활동을 한다. 이렇게 월 10회씩 독거노인을 방문하면 수당 20만원을 받는다.

 

노노케어 일자리에 참여한 70대 할머니는 "나이 들면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며 "20만원 용돈도 받고, 외롭게 지내는 노인 친구도 사귀어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외로운 독거노인은 혼자 방치되다 고독사(孤獨死)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노케어는 이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젊은 사람이 독거노인을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정서적 공감대를 나누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노인끼리는 '몸이 어디 아프냐' '나도 어디가 안 좋다'는 식의 대화 등을 나누면서 공감대 형성이 쉽고,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어 노노케어 제도가 어느 정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