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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검사들이 사는 법?

풍월 사선암 2015. 2. 4. 11:57

펀치검사들이 사는 법?

 

지난달 19일 배우 최명길씨 모친상 부고가 신문에 실렸다. “윤 장관님 앞으로 조화를 보냈어야 하는데.” 문상을 갔던 한 전직 장관은 최씨의 남편인 김한길 의원에게 농담을 던졌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문상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최씨가 윤 장관으로 불린 건 S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펀치에서 법무부장관 윤지숙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펀치가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그 관심은 분개에 가깝다. 주요 등장인물인 검사들이 온갖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로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를 복마전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검사들은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검사를 실제와 전혀 다르게 묘사하고 검찰 조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나같이 나쁜 검사들 밖에 없느냐” “1, 2회 시청하고 말도 안 되는 얘기란 생각에 더 이상 보지 않았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드라마 속의 검찰과 현실 속의 검찰은 얼마나 다를까.

 

드라마를 보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든 것을 수사로 한다. 총장직에 오르는 것도, 기업 하나를 가족 앞으로 돌리는 것도, 대통령의 꿈에 도전하는 것도, 총리 후보를 만드는 것도, 심지어는 뇌종양 수술 받고 어린 딸을 국제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도 수사를 통해서 한다. 공권력을 검사 개개인 내지 검찰 내부의 특정 집단이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강재 대검 반부패부장(박혁권)-박정환 검사(김래원) 

 

박정환 검사(김래원)가 자신의 보스였던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의 배신에 결별을 선언한 뒤 아내였던 신하경 검사(김아중)에게 내 방식대로 할께라고 말할 때 내 방식이 바로 공권력의 사적 이용이다. 그것은 또한 이태준 검찰총장과 조강재 대검 반부패부장(박혁권)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드라마 초반 정의를 대변하는 듯 했던 윤지숙 법무부장관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총리 후보가 되기 위해, 병역비리 아들의 무사안녕을 위해 의탁한 방식이기도 하다 

 

지금 검찰을 움직이는 이들이 이태준, 윤지숙, 조강재, 박정환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허구일 뿐인가.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어쩐지 낯익은 것들인 탓이다.

   

정의로운 세상? 내가 잘되면 그게 정의로운 세상이고 내가 안 되면 그게 더러운 세상이야.”

 

원칙과 룰을 지켜라. 아드님은 그런 말 듣습니까? 어디 아들한테도 안 통하는 말을 저한테 하십니까?”

 

세상 안 변해. 너부터 살아.”

   

검사 박정환의 대사들은 사법허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사권을 휘두르고, 이를 통해 판세가 끊임없이 뒤집힌다.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이 정의와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검사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메시지다. 문제는 이러한 대사와 장면들이 실제 상황처럼 다가온다는 데 있다. 그만큼 수용자, 즉 시청자들이 검찰 수사에 불신을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신하경 검사(김아중)-대검 차장검사 정국현(김응수)

 

반면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정의를 지키겠다는 다짐들은 외려 허구인 듯 다가온다.

   

가난한 사람,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이 조롱받는 세상이야. 사람들한테 보여줄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이기는 거. 법대로 할 거야. 원칙대로 수사할 거고.”

 

저는 검사입니다. 검사가 따라야 할 것은 청와대의 하명이 아니라 법의 명령입니다.”

 

검사 신하경과 대검 차장검사 정국현(김응수)의 입에서 나온 이 말들은 이상적인 검찰상()을 지향하고 있지만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부의 악()과 정면으로 맞서는 검사들이 있을까에 선뜻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검찰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굳어져 있는 건 아닐까 

 

법무부장관 윤지숙 (최명길)-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지금의 검찰 조직이 그렇게까지 타락했다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과거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이용해 권력과 부를 누리려 했던 사례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정치검사논란이나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그랜저 검사시비가 그것이다. 다만 검찰 내부의 협잡이 드라마처럼 팽팽한 플롯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부정(不正)과 불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실제로도 나쁜 검사보다 좋은 검사들이 훨씬 많다. “작가가 과거 기사 검색을 해서 그간의 검찰 비리를 총망라한 것 같다는 검사들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윤지숙, 이태준, 조강재, 박정환이 살아가는 방식이 검사 수사의 부정적인 방식을 극대화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방식이 닮아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간 검찰에서 수사한 정치적 사건들을 보라. 이명박 정부 때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이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됐다가 재수사나 특검 수사 수순을 밟았다. 정권 전반기,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순한 양이었다가 후반기에는 죽어가는 권력 앞에서 호랑이의 이빨을 드러내곤 했다. 그 과정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일그러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개는 검찰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개개인의 출세욕과 얼마나 분리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펀치는 드라마다. 이태준과 박정환 같은 검사는 현실 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앞에 있는 건 현실 속의 몇몇 사건들에서 드러난 편린들뿐이다. 그 편린에 육신을 입혀 의인화한 것이 이태준과 박정환이다. 그렇다고 펀치를 보면서 시민들이 던지는 물음들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박정환 검사(김래원)-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지금 검찰은 법 앞에 평등하게 수사를 하고 있는가.

 

검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수사권과 기소권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행사하고 있는가.

 

자신을 위해, 자신들을 위해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무시무시한 질문들을 외면한다면, 그 경고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검찰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이태준과 박정환의 방식으로부터. 검찰을 끌어당기고 있는 관성과 인력(引力)으로부터.

 

[J플러스] 입력 2015-02-03 / 권석천 중앙일보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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