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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선 LIVE ②] 호강 못 시켜줘 아내에게 미안하다

풍월 사선암 2015. 1. 24. 23:46

[강인선 LIVE ] 호강 못 시켜줘 아내에게 미안하다

 

만화에 등장한 첫사랑

대학 때 소식 끊긴 그녀 총리된 다음해에

모범적 여자 통장이라며 집무실로 표창 받으러 와

 

끝없는 세상의 반려라고 한 박영옥 여사가 요즘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다.

 

병원에 있다. 간호사들이 참 열심히 돌봐준다. 미안한 일이 많다. 호강 못 시켜준 게 제일 미안하다. 전시(戰時)였고, 5·16혁명이 있었고. 젊어서는 예뻤지. 그런데 내가 고생시켜서.”

 

김 전 총재는 19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박상희의 딸과 결혼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

 

“1950년 전쟁 중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 바쁘지 않으면 나랑 얘기 좀 할까?’ 하더라. 무슨 얘기 하려나 하고 따라갔더니, ‘내 조카딸 봤지? 어때?’ 하길래 아하, 나한테 주려는 모양이다했다.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야, 좀 데려갈 수 없어?’ 하더라. ‘본인이 좋다고 하면 나는 좋습니다했더니 본인이 좋대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의장

 

박정희 대통령의 결혼 선물

전쟁 중이라 못 간다면서 소 한 마리 보내 와

그 소로 사흘 동안 잔치 그래도 고기가 남았다

 

결혼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황소 한 마리를 선물로 줬다고 하던데.

 

결혼식날 저녁에 밖이 시끄러워 나가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소 한 마리를 보냈다. 편지에는 내가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전쟁 중에) 싸우느라 도저히 못 가니 소 한 마리를 보낸다고 쓰여 있었다. 그게 1951215일이다. 그 소로 사흘간 잔치를 하고도 고기가 남았다.”

 

김 전 총재는 이날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좌진들은 요즘 식욕이 없으신지 잘 안 드셔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신 박 여사를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줄 거라면서 빵과 간식을 챙겼다. 김 전 총재는 200812월 뇌졸중을 겪은 후 계속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 가장 규칙적인 일과는 두 개 병원에 차례로 들르는 것이다. 오후에 서울 아산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고 순천향병원에 가서 부인을 돌본다.

 

국민을 호랑이로 알아라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정의했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실업(實業)이라고 한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씨를 뿌리고 수확으로 보수를 받지 않나. 정치는 보수가 없다. 잘한 일은 국민들이 나눠 가지니까. 정치인으로서는 일종의 허업 아니냐는 뜻으로 한 얘기다.”

 

정치인은 보수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인가.

 

남는 게 있으면 국민이 나눠 갖는 것이다.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이다. 정치인이 자기가 잘해서 나라가 잘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트루먼 기념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해본 사람으로서 작은 나라에서 봉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들려줄 교훈이 많을 테니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교훈은 무슨 교훈이냐고 한참 웃더니, ‘국민을 호랑이로 알라, 맹수로 알라고 했다.”

 

국민을 무섭게 생각하라는 뜻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좀 해놓으면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사육사가 여름에 더울까 봐 물 끼얹어주고 배고플까 고깃덩어리 주고, 아무리 잘해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맹수다. 사육사는 내가 사랑하고 돌봐주니까 호랑이가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기가 뭘 좀 했다고 해서 국민이 아주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다. ? 호랑이는 아무리 사육사라 해도 자기 발을 밟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왕 하고 물어버린다. 그게 국민이다. 내가 국민을 위해서 이렇게 했으니 날 알아주겠지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미련한 거다.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트루먼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 죽이는 호랑이처럼 국민도 대통령과 정치인을 쫓아낸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 정치인은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국회에 정치하는 사람 많지만 국민을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을 그렇게 무서워했으면 지금처럼 되지도 않는 일을 저렇게 할 리가 없다. 정치인은 더 겸허하게, 더 노력해야 한다. 자기를 버리면서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인다.”

 

[Why] [강인선 LIVE ] "내가 대통령 됐다면 더 못했겠지?"

 

정치는 虛業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 보수를 바라서는 안 돼

그들이 잘하면 국민들이 나눠 가지게 돼

 

지난 20075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5.16 민족상 수상식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그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소통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진짜 소통 안 되나? 내 보기에 박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엔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지지율이 떨어질까.

 

국민이 호랑이라 그런 거다.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물고 늘어지는 게 호랑이다. 열심히 하는 대통령에게 왜 지지율을 30%밖에 안 주느냐고 국민 탓해봤자 소용없다. 그게 국민이니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상당 기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건 잘해달라는 기대다. 날이 갈수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 왜 그러느냐. 그걸 묻는 게 바보다. 그런 게 국민이다.”

 

2년 전 미수(米壽) 때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뭐가 가장 아쉬운가.

 

뭔가 한 거 같은데 제대로 한 게 뭔가 싶다. 한탄스럽고, 후회스럽고, 국민에게 죄송하고, 그런 느낌뿐이다.”

 

뭐가 그렇게 후회가 되나.

 

조금 더 자유롭고 좀 더 민주적으로 자기 희망대로 살 수 있는 기반이 국민을 위해 다져졌으면 해서 혁명도 하고 했는데 미흡하니까 아쉽다. 미안하고 그런 감정이다. 더 잘했었으면 하지만, 내 능력껏 한 것이니까.”

 

뭘 더 했으면 더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는 결과다. 국민이 지금보다 더 윤택하고 자유롭고 희망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굳혔으면 더 잘했다고 했겠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는 거다.”

 

만일 김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됐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더 못했겠지? 하하하. 남 하는 거 비평하는 건 쉽다. 자기가 해보라고 해. 더 못한다고. 그런 거다.”

 

대통령이 됐다면 이건 꼭 했을 텐데 하는 게 있나.

 

솔직히 얘기해서 나는 대통령 하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두 번 대통령에 입후보는 했다. 그건 당을 만들고 정치를 계속 하려니까 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잘 도와서 대과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밑에서 도와 드리자는 게 내 정치 철학이었고, 그대로 했다.”

 

하지만 197910·26 직후처럼 대통령이 될 뻔한 기회도 있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난 아니었다. 그때도 난 원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 비해 권력 의지가 약한 것일까.

 

대통령 하면 뭐 하나. 역대 대통령을 잘 봐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나대로 그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만 안 한다. 지난 일이니까. 다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할 텐데 내가 뭐라고 평을 하겠나. 수고들 했다고 생각하지. 그건 역사가 평가하는 거다. 국민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 평가한다.”

 

영원한 2인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내가 그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2인자였던 노태우에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2인자로서의 처신에 대해 조언하지 않았나.

 

이왕에 일을 벌였으니 잘하라는 뜻이었다. 잘하려면 전두환과 사이가 벌어지면 안 된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 다음 사람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 나는 나라를 위해 그런 말을 한 거지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위해서 한 게 아니다. 절대 권력자는 예외 없이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내부에 대립을 일으켜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둘째 놈을 못살게 군다. 전두환 성격을 보니 그럴 것 같아서 둘이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다.”

 

[Why] [강인선 LIVE ]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내각 책임제로 바꿔야

 

6·25 직전 육군 정보장교 시절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북한을 어떻게 보나. 조만간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보나.

 

내가 믿는 바에 의하면 북한은 시간문제다.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모르지만 그 시간 안에 끝나는 거다. 북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걱정하는데 핵무기는 무용지물이다. 갖고 있어도 쓸 수 없다. 쓰면 망하니까. 그러니 핵 가지고 자꾸 떠들지 말고 어떻게 하면 10년에 끝날 북한을 7~8년 안에 끝나게 할지 그걸 현명하게 알아내서 자꾸 촉진시켜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만나자고 뛰어들지 말고. 정상회담,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다.”

 

1970610, 중앙정보부 창설 9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역대 중앙정보부장들. 2대 부장을 지낸 고() 김재춘 전 의원이 맨 왼쪽에 서 있다. 그 옆으로 김용순(2), 김종필(초대), 김형욱(4), 김계원(5)씨가 나란히 섰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활 치료 받으면서 봄이 되면 골프 한번 쳐야 한다고 했는데.

 

독일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골프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카트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견본이 하나 와 있다. 욕심이 나서 그걸 갖다 달라고 해서 한번 타보고 스윙도 해봤는데 괜찮았다. 그래서 독일에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집사람이 너무 아팠다. 다음 날로 부탁한 걸 취소했다. ‘마누라가 다 죽어가는데 골프 칠 생각을 하다니 나쁜 놈 같으니라고.’ 나 혼자 그렇게 뉘우치고 취소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조금 나아졌다. 골프장 나가고 싶지만 이젠 그것도 꿈에 그칠지 모른다.”

 

내각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인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내각 책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정치의 가갸거겨의 자를 알까 싶은 정치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내다보지도 못한다. 대통령 중임제, 부통령제, 이원집정제 등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나보고 얘기하라면 그건 다 쓸데없는 소리다. 과거에 있었던 심각한 일을 정치인들이 잘 모른다. 나는 대한민국의 산증인이다. 한 사람에게 전권을 주되 정당이 맡아서 정당의 지혜를 여과시켜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종필전총재의 집에 방문한 일본 모리 요시로 전수상

 

일본에서 아베 총리가 등장한 이후, ·일 관계가 매우 경색돼 있다.

 

아베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좋지. 하지만 이웃 나라 사람이 인기가 있다 없다 할 수 있나.”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 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답은 아마 그가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한 우회적인 설명일 수 있을 것이다.

 

후세는 김종필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나.

 

·일 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일 때 내가 대학 돌아다니며 연설했다. ‘여러분은 한반도가 어디 있는지 알 거다. 지정학적으로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중국과 소련이 서부와 북부에 있다. 북쪽에서 센카쿠 열도까지 3000는 일본이 막고 있다. 갇혀 있는 한반도는 어디로 나가야 하나. 북쪽이나 서쪽으로 못 가니 일본을 딛고 태평양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더라. 하지만 다 헛것이었다. 학생들이 그다음 날 다시 데모하러 나갔으니까. 내가 그걸 밀어붙이고, 기본적인 합의를 만들고 외교부에 넘겼다. 2의 이완용, 매국노, 별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다. 난 매국노가 아니다.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합리적으로 나라를 만들려는 사람이다.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잘되라고 애를 쓰고 다닌 사람이다.”

 

김 전 총재의 만화 일대기 출판기념회는 31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다. 그는 남산에 있는 호텔에서 하면 지인들이 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을 골랐다고 한다.

 

조선일보 입력 : 2015.01.24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