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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 중대형 붐 이끈 50대 … 이젠 서울 떠난다

풍월 사선암 2015. 1. 20. 10:48

집값 상승, 중대형 붐 이끈 50이젠 서울 떠난다

 

반퇴 시대 4탈 서울 겁내지 마라

예전엔 평수 줄여 서울 살았지만

이젠 부동산 침체로 남는 돈 적어

집값·생활비 싼 외곽으로 대이동

"탈 서울, 탈 도심은 선택 아닌 필수"

 

경기도 일산에 살다 충남 태안군 남면으로 주거지를 옮긴 김창영(75)·권영희(73)씨 부부가 9일 오후 집 앞마당에서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방배동에 살던 한모(57)씨는 퇴직 2년 만인 지난해 초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으로 이사했다. 방배동 아파트(84, 이하 전용면적)95000만원에 팔아 성복동 같은 크기 아파트를 45000만원에 샀다. 차액은 주택담보대출(3억원)을 갚고 아들 결혼비용(1억원)으로 썼다. 남은 1억원은 노후자금으로 남겨뒀다. 한씨가 이사를 결심한 건 생활비 때문이었다. 고정수입도 없는데 매달 100만원의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번잡한 도심 생활도 싫증이 났다. 한씨는 서울~용인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아들 집이 있는 서울 양재동까지 30분도 걸리지 않는다광교산이 있어 등산도 실컷 할 수 있는 데다 물가가 싸 생활비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만족해했다.

 

반퇴 시대엔 한씨처럼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탈 서울’ ‘탈 도심을 선택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고정수입이 없거나 줄어든 상황에서 집값·생활비가 비싼 도심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퇴직 후 탈 서울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된다는 얘기다.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 홍석민 실장은 정년 퇴직 후 평균 30년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생활비(주거비용)는 줄이고 쾌적성은 높일 수 있는 도심 외곽으로 나가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설문에서도 만 55세 이상 서울 거주자 71.9%현재 주택을 처분해 다른 주택으로 이주하고, 남은 자산 일부를 생활비에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

 

주택시장이 오랜 침체를 겪으면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진 것도 탈 서울 추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서울 집값은 4.19% 떨어졌다(KB국민은행 기준). 주택산업연구원 김태섭 연구위원은 과거엔 퇴직하고 집을 오래 깔고 앉아 있을수록 시세차익이 늘어나고 이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지만 앞으론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되레 감가상각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집을 오래 보유할 유인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이른바 ‘386세대의 선두주자인 1960년생이 만 60세로 법정 정년이 되는 2020년 무렵부터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내년 정년 60세 연장을 앞두고 직장에서 밀려난 조기 퇴직자와 정년 퇴직자가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부동산시장에도 또 한 차례 지각변동을 몰고 올 전망이다. 386세대가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동산투기 바람이 불었다. 2000년대 이들이 큰 집으로 갈아타기에 나서자 강남 중대형(전용면적 85초과)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 앞으로 30년 동안 이 세대가 퇴직 쓰나미에 휩쓸리면 다시 한번 부동산시장에 지각 변동이 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서울과 지방의 주택가격도 재편될 전망이다.

 

이 같은 50대의 탈 서울 러시는 서울 집값을 떨어뜨려 반퇴 시대 퇴직자에게 이중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종전까지는 주택 크기를 줄이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으로 노후설계 자금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중대형(전용면적 85초과) 아파트 인기가 높아 중소형(전용 85이하)으로 갈아타면 차액이 컸다. 당시 이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면 연 6~7%의 이자는 받을 수 있었다. 평균 수명도 지금보다 짧았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중대형과 중소형 아파트 매매가격 차이가 크게 줄었다.

 

실제로 서울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 아파트 전용 137형에서 같은 아파트 84형으로 옮기면 20081월엔 68000만원이 남았지만 지금은 37000만원밖에 안 남는다. 게다가 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연 2%대로 주저앉았다. 이 때문에 집만 줄여선 반퇴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집을 줄이면서 집값이 더 싼 수도권이나 아예 지방으로 이주하는 대안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권대중 교수는 “386세대의 탈 서울 러시는 서울에 집중된 주택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20 0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