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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해도 못 쉬는 '반퇴시대' 왔다

풍월 사선암 2015. 1. 15. 11:20

은퇴해도 못 쉬는 '반퇴시대' 왔다

 

반퇴시대1노후설계는 가족설계다

정년퇴직 뒤 노후 20~30년 생계 위해 일해야

60년대생 포함 해마다 퇴직자 80만 명 쏟아져

"임금피크제 등 실질적 정년연장 대책 필요"

 

현대중 1500명 구조조정

 

현대중공업은 14일 과장급 이상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대상은 1500여 명에 이른다. 사무직 전체 직원 1만여 명의 15%에 해당한다. 262명이던 그룹 내 조선 3사의 임원 숫자도 31%(81) 줄였다. 지난해 3분기까지 320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낸 데다 내년부터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는 데 따른 비상조치다. 현대중공업뿐만이 아니다. 경기 침체에 정년 연장이란 복병이 만나 국내 산업 전반에 50대 퇴직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지난해 KT8000여 명, 은행·증권·보험이 5000여 명 감원 했다.

 

그러나 최근 50대 조기 퇴직은 앞으로 5년 후 덮칠 퇴직 쓰나미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1955~63년생 1차 베이비부머 세대(710만 명·14.3%)의 퇴직 쇼크가 가시기도 전에 2차 베이비붐 세대인 68~74년생(604만 명·12.1%) 퇴직이 바로 이어진다. 그 뒤엔 1차 베이비부머의 자녀인 에코 베이비붐 세대(79~85년생 540만 명·10.8%)가 기다리고 있다. 55~85년생 퇴직이 30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인구 비중이 높은 ‘3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30대였던 90년대 진보정권 탄생을 주도한 세대)의 선두주자인 6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20년 전후엔 법정 정년으로 퇴직할 인구가 한 해 80만 명이 넘는다. 여기다 구직 시장을 떠나지 못한 조기 퇴직자까지 엉킨다.

 

 

386세대부터는 평균수명도 높아졌다. 2013년 생명표 기준으로 기대여명은 평균 81.9(78.5, 85.1)에 이른다. 전광우(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세대 석좌교수는 사고나 중대 질병을 겪지 않으면 9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의미라 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퇴직하고도 은퇴하지 못하고 수십 년 구직 시장을 기웃거려야 하는 반퇴(半退) 시대가 일상이 됐다. 본지가 지난해 12월 만 40~59세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앞으로 30년간 퇴직 쇼크 노후 준비 패러다임 바꿔야

 

이미 퇴직을 경험한 55~59년생 다섯 중 네 명이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내 민간기업의 실질 퇴직연령이 평균 53세를 갓 넘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퇴직자 상당수가 재취업·창업·귀농 등을 통해 구직 시장을 떠나지 않은 셈이다.

 

서울시 은평구 의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2년 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고영수(56)씨는 요즘 도심에서 고부가가치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하는 도시농업 기술을 익히고 있다. 고씨는 중소기업으로 눈높이를 낮춰 여기저기 원서를 내봤지만 오라는 곳이 없었다함께 퇴직한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요즘 이 센터는 고씨처럼 재취업이나 새 일거리를 찾아 나선 50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원창수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사무국장은 “20132월 문을 연 지 2년도 안 돼 센터를 찾은 상담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올해는 지난 2년의 두 배로 늘 것에 대비해 예산도 지난해 20억원에서 35억원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제도와 관행은 여전히 고도성장기에 맞춰져 있다.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된다고는 하나 실제 정년이 늘어나자면 임금피크제나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등 후속 대책이 따라줘야 한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채 386세대의 퇴직 쓰나미를 맞는다면 좌우 이념대립 못지않게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퇴 시대가 장기화하면 경기회복도 요원해진다. 무직과 비정규직을 오가며 30년을 버텨야 하는 반퇴 시대 퇴직자들이 많아지면 안 그래도 위축된 소비가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15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