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라이벌] (13) 오리구이 - 면역력 강화 보양식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인지 온몸이 나른해지고 쉽게 지칩니다. 이럴 때 보양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뭘 먹을지 고민이라면 이번에 소개하는 오리고기집 두 곳을 눈여겨 보시죠. 오리고기는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옛 한의서에 허약체질과 병후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다른 육류에 비해 비타민A가 풍부해 면역력 강화에도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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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이』 김은조 편집장과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식도락동호회 에피큐어 최유식 대표, 요리연구가 강지영씨의 추천을 받아 6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6곳을 4월 2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예소담과 신정이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라이벌 (14) 낙지집’ 결과는 5월 28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해물찜 투표 방법은 19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서 경영학 공부 중 바비큐 전문점 ‘블루 스모크’ 보고 착안
오리뿐 아니라 참나무까지 최고 재료만 고집
“돈보다 음식이 더 중요한, 나는야 음식쟁이”?
◀예소담은 직접 주문·제작한 가마에서 참나무로 오리고기를 훈연한다. 기름은 빠지고 특유의 훈제향이 더해져 식감이 쫄깃하고 향이 구수하다.
타닥타닥, 그 가마엔 참나무 향기가 스민다
“할머님. 다음엔 더 건강해져서 오셔야 해요. 전처럼 힘차게 걸으셔야해요. 꼭이요.”
지난달 15일 오후 5시30분쯤 예소담을 찾았을 때 마침 송재원(39) 대표가 가게 입구까지 한 백발 어른을 배웅하는 중이었다. 손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눈을 못 떼던 송 대표가 말을 꺼냈다. “지난 번엔 건강하게 걸으셨는데 오늘은 영 불편해 보여 마음이 안좋다”고. 마치 집에서 자기 할머니나 어머니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자꾸만 다시 오고 싶을 수밖에.
“단골이 많아요. 일주일에 여섯 번씩 오는 손님이 꽤 돼요. 장사하는 입장에서 봐도 지겨울 법한데 오히려 다들 ‘맛있다’며 찾아주니 정말 고맙죠.”
예소담은 참나무 바비큐 전문점이다. 사람들이 자주 먹지 않는 바비큐 요리를 하는 데다 멀리 다른 지역에서 찾는 사람이 더 많지만 송 대표 말대로 손님 대다수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는 단골이다. 그렇다보니 손님이 굳이 뭘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알아서 챙겨준다. 어린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된장찌개를 주문하면 알아서 간을 약하게 해서 내놓는 식이다. 또 고객 기호에 따라 맵기를 조절해준다.
송 대표는 스스로를 ‘음식쟁이’라고 불렀다. 돈이 목적인 ‘장사쟁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을 내놓는 ‘음식쟁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실 그는 요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직장생활 하다 30대 초반에 경영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갔다. 그런데 유학 시절 그의 눈에 띈 게 뉴욕의 바비큐 전문점 블루스모크(Blue Smoke)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훈제 요리가 잘 알려지지 않아 바비큐 전문점을 내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단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2007년 수서에 예소담을 열었다.
“수서는 강남이지만 한산하고 여유롭잖아요. 산이 가까운 것도 장점이고요. 대모산과 구룡산이 근처에 있어 등산갔다 오는 사람이 많거든요. 등산은 꾸준히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찾는 식당도 괜찮을 거고.”
문 열 당시 주변엔 식당 하나 없는 주택가였지만 송 대표 예상대로 곧 인근 주민뿐 아니라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입소문만으로 서울 대표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예소담 대표 메뉴가 바로 오리고기다. 웰빙 바람을 타고 수많은 오리고기집이 생겼지만 유독 이 집이 맛집으로 손꼽히는 비결이 뭘까. 특히 툭 하면 터지는 조류독감(AI) 때문에 잘 나가던 가게도 휘청이는데 말이다.
송 대표는 뻔한 답을 내놓았다. 비결은 맛이란다. 맛을 잡으려고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은 신선한 오리만 사용한다. 또 참나무를 독점 계약해 훈제한다. 일단 재료가 좋다는 말이다. 그 다음 중요한 건 훈연 방법이다. 가게 입구에 커다란 가마에서 오리 훈연을 한다. 간혹 손님에게 보여주기용으로 가마를 진열하는 가게가 있는데 이곳은 진짜로 모든 오리고기를 주문·제작한 이 가마에서 훈연해 손님상에 내놓는다. 참나무를 때 훈연하는 사이 오리 기름은 빠지고 훈제 향이 더해져 쫄깃하면서도 구수해지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가게 입구엔 참나무 장작을 수북히 쌓아놨는데, 이는 단순히 보관 용도가 아니라 손님이 참나무향을 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오리고기와 함께 내는 묵은지·고추장아찌, 그리고 오리탕 같은 식사 메뉴에 함께 내는 반찬은 송대표 어머니가 직접 만든다.
1. 주택을 개조해 만든 예소담은 카페처럼 보인다.
2. 독점 계약으로 들여온 참나무를 태우는모습.
3. 가마에서 오리고기를 훈연하고 있다
또 다른 비결은 없을까. 송 대표는 좀 엉뚱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가게 문 연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 술취한 손님이 가게에 불을 냈다는 것이다. 다행히 바로 진압해 큰 화재로 번지진 않았다.
“불 났던 걸 잊고 있었는데 언젠가 풍수지리를 좀 공부한 듯한 손님이 ‘여기 불 난 적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그 불이 땅의 기운을 지펴서 가게가 잘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예소담이 인기를 끌면서 주변에 오리고기집이 많이 생겼다. 심지어 예소담이라는 이름을 내건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줄줄이 생겨났다. 독서실부터 한정식집까지 다양하다. 물론 ‘원조’ 예소담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곳이다. 송 대표는 “예쁘고 소담스럽게 피어난다는 뜻으로 내가 직접 지었다”며 “이름 안에 가게의 나아갈 길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블 간격을 넓게 해 사람들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도 이름에 답이 있다고.
“멀리 강원도 등 전국에서 예소담을 내고 싶다고 찾아와요. 퇴직금으로 하겠다는 분이 많죠. 그러면 예소담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차라리 그 돈으로 건물 사서 임대 수수료를 받으라고 조언해요. 서운하겠지만 그게 맞다고 봐요. 아무래도 전 재산을 걸고 가게를 하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예소담은 조금 더디게 갈 마음으로, 내가 덜 갖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가 강조하는 게 하나 더 있다. “직원들에게 우리는 추억을 판다고 강조해서 말해요. 여기서 음식을 먹는 그 순간, 맛있는 우리집 요리를 먹을 때의 즐거움, 함께 먹는 사람과의 대화, 이 모든 게 추억이잖아요. 예소담은 그런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사랑방이라고 생각해요.”
한약재로만 쓰던 오리, 요리로 개발
6단계 조리하느라 만드는 데만 한나절
처음엔 먹기 싫다던 손님들, 앞장서 입소문
◀신정 오리구이는 통 속에 오리와 양념을 넣고 돌린 후 꺼내 말리고, 이를 다시 바비큐 통 속에 넣어 굽는 등 6단계를 거친다.
“오리를 어떻게 먹니?” 그랬던 시절부터 소문난 원조집
국기원입구 사거리에서 역삼초교 사거리로 가는 길 오른 편, 나란히 붙어있는 다른 빌딩보다 안쪽으로 쑥 들어간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오리고기와 칭기즈칸 요리(쇠고기 샤브샤브)를 파는 ‘신정’이다. 인근 식당은 주차장이 비좁아 주차 요원들이 여기저기 발레 주차를 하지만 신정 건물엔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30년 전부터 건물 전체를 식당으로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에서 오래 산 사람 중에 신정 모르는 사람 없을 걸요. 역사가 50년이잖아요.”
신정은 1965년 고(故) 박봉성(89년 작고) 회장이 명동에 샤브샤브 요리 전문점을 연 게 시작이다. 86년 현재의 역삼점을 열었다. 역삼점 문 열 때부터 관리 책임자를 맡고 있는 반성수(59) 이사의 이 말엔 자부심이 묻어난다.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말린 고기를 얇게 썰어 끓인 물에 넣었다 바로 빼먹고서 전쟁에 나갔다고 하죠. 회장님이 몽골의 이런 풍습에서 착안해 칭기즈칸 이름을 딴 샤브샤브 요리점을 냈다고 해요.”
샤브샤브를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익숙한 요리지만 50년 전만 해도 처음 샤브샤브를 접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샤브샤브 먹는 방법을 손님에게 일일이 알려줘야 했다.
“쇠고기 요리로 시작했는데, 시설 괜찮고 맛도 있으니까 고급 손님이 많았죠.”
색다른 요리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샤브샤브 요리로 유명세를 타고 입지가 굳어질수록 박 회장은 오히려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니까 새로운 요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꾸준히 요리를 개발했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계속 사랑받으며 대표 메뉴로 자리잡은 게 오리구이예요.”
오리구이는 역삼점을 열 때 처음 선보였다. 반응이 좋아 본관 바로 옆에 3층 규모의 신관을 열 정도였다.
지금은 보양식으로 인기지만 80년대만 해도 오리는 식용보단 한약재로 주로 썼다. 그러니 오리 요리가 생소할 수밖에. 박 회장은 3년간 연구 끝에 조리 단계를 세분화해 독창적인 요리법을 개발해냈다.
신정 방식의 여섯 단계 오리구이다. 우선 깨끗이 씻는다. 이어 덤블링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오리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통에 고기와 양념을 함께 넣고 25분 정도 작동시킨다. 이렇게 하면 양념이 오리에 골고루 밴다. 이어 오리 뱃속에 양념을 집어 넣고 꿰맨다. 이걸 2~3시간 정도 말려 물기를 뺀다. 육질을 더욱 쫄깃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어 오리를 기름에 튀긴다. 마지막으로 바비큐 통에 넣어 굽는다. 이렇게 하는 데만 한나절이 걸린다. 그날 준비한 오리가 다 떨어지면 더 이상 판매할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내놓았지만 초기엔 손님들 반응이 차가웠다.
1. 땅값 비싼 강남 한복판이지만 2층을 모두 사용해 내외부 공간이 넓다.
2. 통 안에 양념을 넣고 있다.
3. 양념이 고루 밴 오리를 바비큐 통에 넣어 굽는다
“메뉴판을 본 사람들이 ‘오리를 먹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오리를 먹지 않았거든요. 임산부 사이에선 ‘오리 먹으면 손 붙은 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호기심에 주문한 사람들이 맛에 빠지고 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3, 4년 만에 신정의 대표 메뉴로 자리잡았죠. 지금은 탕이며 회전구이며 오리집이 많지만 오리고기 자체는 우리가 원조예요.”
오리고기 인기와 더불어 역삼점 명성도 높아졌다. 반 이사는 “손님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맛있게 먹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계산대 앞에 가게 명함을 뒀는데 처음 온 사람이 다시 오기 위해 꼭 챙겨가더라는 것이다.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명동점 단골도 하나둘 역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별도의 주차장이 없던 명동점과 달리 역삼동은 주차가 편리한 게 장점이었다. 명동 상권이 젊은 층 위주로 바뀌면서 명동점이 그 지역 분위기와 안 맞게 된 것도 작용했다.
“신정은 고급 음식점이거든요. 둘이 와서 오리고기에 식사로 국수전골을 먹으면 10만원이 훌쩍 넘어요. 명동을 찾는 젊은 고객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결국 명동점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덕분에 역삼점은 더욱 바빠졌다. 명동점 향수를 떠올리며 역삼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업을 이은 박승문(58) 사장은 아버지 뜻을 이어 손님이 불편하지 않은지를 먼저 살피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역삼점은 2008년 리모델링 하면서 룸을 늘렸다. 탁 트인 홀에 테이블로 가득 채워져 있던 1층에 12개의 룸을 만들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식사하길 원하는 고객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땅값 비싼 강남에서 2012년부터 발레 파킹비 1000원을 2년째 고수하고 있다. 명동점에서 역삼점으로, 그리고 이제 신정의 역사는 잠실점으로 이어진다.
“음식점이 20~30년을 버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예요. 명동점 단골들 자녀가 이제 자기 아이들 데리고 역삼점에 와요. 손님이 2대, 아니 3대로 이어지는 거죠. 신정은 그 이름 자체가 전통이고 역사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4.05.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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