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 아픈 은퇴, 5F로 정리하자
최성환의 신바람 나는 은퇴
우리가 하루에 보고 듣고, 또 그에 따라 느끼거나 떠오르는 생각이 몇 가지인지 셀 수 있을까? 특히 뭔가 고민거리가 있게 되면 온갖 잡동사니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오만가지라는 말은 경상도에서 주로 쓰는 사투리로 그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숫자 '50,000'에서 왔을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오만가지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퇴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은퇴 준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하면 정작 그때부터는 골치 아파한다. 말 그대로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손을 놓기 십상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해서 은퇴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다면, '5F'만 생각하자. 오만가지를 단 5개의 'F'로 시작하는 영어단어로 정리한 것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다 아는것들을 나름 깔끔하게 5개 카테고리에 담은 것에 불과하다.
5F는 Finance(돈또는 재무), Field(할 일), Fun(재미),Friends(친구), Fitness(건강)다.
은퇴설계라고 하면 재무적 설계만 떠올리기 쉬운데, 5F 중 재무설계 부분은 1F에 불과하다. 나머지 4F는 모두 비재무적 설계이다. 재무적 설계는 돈으로 은퇴 후 노후에 살 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고 짓는 것이다.
◇ 금전적인 은퇴준비 1F
1F는 돈, Finance(파이낸스)이다. 은퇴할 때 몇억원 정도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좀더 구체적으로 노후생활을 위해 한 달 생활비는 어느 정도 돼야 하고, 그 생활비는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매월 국민연금에서 100만원, 개인연금에서 30만원, 퇴직연금에서 30만원 해서 일단 연금으로 매월 160만원식으로 계산해 본다. 그다음엔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매월 얼마, 자녀 용돈으로 얼마, 자녀 결혼시킬 때 드는 목돈으로 얼마가 필요할지 등을 따져 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을 배우자가얼마 동안 살 걸 계산해서 어느 정도는 따로 떼놓아야 할 부분 등도 꼼꼼하게 챙겨 보아야 한다.
◇ 은퇴 후 소일거리 2F
2F인 Field(필드)는 소득을 올리는 일거리뿐 아니라 은퇴 후 남는 시간을 보람차면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의미한다. 브라질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해설자가 우리나라 선수들이 필드 또는 미들필드를 장악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우리도 각자의 필드에서 뛰는 선수처럼 그 필드에서 내가 할 일을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직장이 필드겠지만 은퇴한 후의 필드는 달라진다. 사진이나 글쓰기, 그림그리기 같은 취미활동이나 자원봉사활동, 귀촌이나 귀농 등이다. 이 때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점은 꼭 소득을 얻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야 노후의 많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실제로 주변의 은퇴한 이들을 보면 적절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무료하게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 은퇴 후 동반자 3F
2F는 나와 함께 필드를 누빌 친구, 즉 Friends(프렌즈)이다. 돈 있고 할 일 있어도 친구가 없으면 재미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친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배우자와 자녀인 가족이다. 영어로 가족을 의미하는 FAMILY는'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모았다는 멋진 해석이 있다. 평소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거기서 재미를 얻으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하지, 뭐"하다 보면 살가운 정은 다 떨어지고 난다음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 외에도 여러 그룹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등산이나 사진찍기, 여행, 식도락, 영화 또는 연극 관람 등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즐길 수 있는 은퇴 4F
돈도 소일거리도 어느 정도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부러울 게 없다.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4F는 재미를 의미하는 Fun(펀)으로 뽑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배우자와 함께 떠나라. 친구들과 함께 즐겨라."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2090시간씩 일을 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300시간 이상 많은 시간을 직장에 쏟아 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그런 직장에 매이지 않게 되었으니 아쉬움이 있더라도 털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재밌는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연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 건강한 은퇴 5F
마지막 5F는 Fitness(피트니스)이다. 건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헬스(Health)지만 자신의 은퇴 환경과 생활에 적합한 건강이어야 하므로 피트니스가 더 어울린다. 요즘엔 헬스센터보다 피트니스센터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비재무적 설계에서 다른 영역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이다. 돈, 배우자, 좋은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건강이 없다면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또 혹시 모를 큰 병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오래 살아도 5F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삶은 적막강산일 수밖에 없다. 은퇴는 누구나 꺼린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은퇴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기왕이면 5박자, 즉 5F를 잘 준비해 보자. 그러면 은퇴가 금수강산같은 설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부담만 떠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5F에 따라 은퇴 준비 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막막하게 느껴졌던 은퇴 후 삶에 길이 놓이게 될 것이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은행, 조선일보, 한화생명 경제연구원을 거쳤다. 올바른 은퇴 설계를 돕기 위해 강연이나 방송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현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과 보험연구소장을 맡으면서 각종 은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헬스조선 최성환 교수 | 입력 2014.10.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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