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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18>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허승곤 교수

풍월 사선암 2014. 8. 17. 18:26

일요일도 회진 뇌수술로 3000명에게 새 삶

베스트 닥터 <18>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허승곤 교수

 

중앙SUNDAY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이 선정하는 베스트 닥터의 뇌혈관질환 수술 분야에선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허승곤(63) 교수가 선정됐다. 이는 중앙SUNDAY와 코메디닷컴이 전국 10개 대학병원의 신경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 교수 45명에게 가족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설문 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하고,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점수와 환자들이 평가한 체험점수를 보태 집계한 결과다. 뇌혈관질환 수술은 뇌동맥류나 뇌동맥·뇌정맥 기형 등의 수술을 가리킨다. 이번 조사에선 허 교수와 동갑인 서울아산병원 권병덕 교수도 허 교수 못지않은 추천을 받았다.

 

창자가 꼬이는 듯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의 인내력으론 참을 수가 없었다. 배를 부여잡고 방바닥을 잡고 뒹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업고 통행금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500m를 한달음에 달렸다. 어머니는 하나님, 우리 승곤이를이라고 기도했다. 아들도 덩달아 무의식 중에 하나님을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닫힌 내과의원의 문을 두드렸다. 잠결에 나온 50대 의사가 처방한 대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더니 잠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씻은 듯 통증이 사라졌다.

 

초등 4학년생은 감동을 받았다. 부모에게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틈만 나면 기도했고 마침내 의사가 됐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허승곤 교수는 의사가 되고 나서도 매일 기도 속에 산다. “하나님, 부디 꽃다운 나이에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이 여학생을 일어나게 해 주세요.”

 

20134월 어느 날 허 교수는 부인 권영주(61), 간호사 등과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다. 환자 김모(22)씨는 뇌혈관이 기형이었지만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터져 몸 한쪽이 마비된 상태였다. 허 교수는 부인에게 딸 같은 환자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권씨는 집 근처 교회에서 기도하다 정성을 얹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왔다. 기도의 힘 덕분이었을까? 김씨는 기적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을 학기에 복학, 캠퍼스를 뛰어다니고 있다.

 

허 교수는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선교 의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다른 길을 걷게 했다.

 

그는 1978년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선교사이자 두경부암 전문가였던 데이비드 실 박사가 운영하는 전주예수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했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던 허 교수는 어머니가 머리뼈암에 걸렸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1965년 서울 은평구에서 고아원 선덕원을 세운 뒤 평생 봉사활동을 해 오신 분이었다. 자신의 몸을 챙기지 못한 허 교수의 어머니는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규창(75·현재 명지병원 신경외과) 교수로부터 세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삶을 마감했다.

 

이 교수는 당시 허 교수 부부가 극진히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3년 뒤 허 교수가 군 복무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이 교수는 나와 뇌혈관 수술을 함께하자며 전화를 걸어왔다.

 

이 교수는 뇌동맥의 벽이 약해져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태이거나 터진 뇌동맥류 수술 분야에서 전설의 고수. 이 교수는 1975년 국내 처음으로 현미경을 이용, 뇌동맥류를 클립으로 집어 동맥 파열을 막는 수술에 성공했다. 미국 의학 교과서엔 이 교수의 수술 성적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기술돼 있다.

 

허 교수는 이 교수의 수제자가 돼 함께 수술 방에 들어갔다. 이 교수 팀이 뇌동맥류 수술 생존율 96%, 정상 회복률 84%라는 세계적인 치료 성과를 내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 교수는 지금까지 뇌동맥류 환자 2500, 뇌정맥기형 500명을 수술하며 스승의 명성을 잇고 있다. 허 교수는 수술 뒤 환자에게 어떤 부작용도 있으면 안 된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다. 그는 또 스승처럼 일요일에도 입원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아침 회진을 돈다. 뇌출혈 환자에겐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제자들에게 생명에 대한 겸허함이 없는 의술은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의 작은 실수, 잠깐의 방심이 곧바로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의사들은 늘 스트레스를 받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불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환자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한 예로 허 교수 환자의 진료 차트엔 환자의 거주 지역이 기록돼 있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에게 두 번 발걸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허 교수는 뇌수술로 환자를 살리면서 선교 의사의 꿈을 미뤘지만 아예 접은 것은 아니다. 1996년부터 매년 여름휴가 때 2~3일간 무의촌 의료봉사를 떠났다. 2009년엔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2개월간 의료봉사를 했다. 앙골라 최초의 뇌동맥류 수술도 그가 했다. 허 교수는 은퇴 후엔 선교 의사로서 제2의 인생을 꾸려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