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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대한민국

풍월 사선암 2014. 3. 9. 08:59

[세계 각국의 치열한 남극 쟁탈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극 세종기지 방문해 격려

한국 대원들, 남극 대구로 회 떠서 반 총장 부부 대접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남극과 북극이 새로운 자원지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북극이 바다여서 해저 자원만 갖고 있는 반면, 남극은 대륙으로 육상 자원까지 갖고 있어서 세계 각국의 주목도가 더 높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이 주인없는 땅을 선점하기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치 1492년 크리스토퍼 컬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인들이 신대륙 정복에 나서고, 1849년 미국의 동부인들이 금을 찾아 서부 개척에 나서던 골드 러시상황을 연상시킵니다. 이 개척 대열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2월 남극 동쪽 테라노바 베이에 준공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전경./해양수산부 제공

 

지난 212일 오전 남극 대륙의 동쪽 테라노바 베이에서 장보고 과학기지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남극 킹 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남위 62)가 준공된 지 26년 만에 두 번째 남극기지(남위 74)가 문을 연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번째로 남극에 2개 이상의 상설기지를 보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장보고 기지 건설에는 2006년부터 총 104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총면적 445816개동의 건물과 24개 관측장비 및 부대 설비를 갖추고 있고, 최대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남극에 기지가 2개 생겨서 업무도 나누었습니다. 남극 킹 조지섬에 있는 세종기지는 해양환경, 연안생태 등 남극 연안기반 연구에, 장보고 기지는 빙하, 고지대물리학, 운석 등 대륙기반 연구에 전념하게 됩니다. 이번에 완성된 장보고 기지는 한국에서는 13000떨어져, 배를 타고 간다면 대략 한달이 걸립니다. 세종기지와도 4500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늦은 편입니다. 세계 각국은 연구소 신설 등의 명목을 내세워 남극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남극에는 미국·영국·중국 등 총 29개 국가가 상주 과학기지를 40곳이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인 건물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나라는 남극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칠레와 아르헨티나, 호주 입니다. 특히 칠레의 선점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칠레의 에두아르도 프레이 남극 공군기지 내에 있는 학교에는 대원들의 자녀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경쟁국인 아르헨티나의 해군장교가 남극에서 사상 처음으로 아기를 출산하자, 칠레는 신혼부부를 파견해 남극에서 아예 임신과 출산까지 끝내버렸습니다. 아이의 출생증명서에는 남극내 칠레 영토의 주소가 출생지로 기록되겠지요. 칠레는 남극에서 출생한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칠레는 남극에 우편제도도 운영합니다. 세계 각국이 남극 기지에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서는 칠레 우체국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칠레는 남극의 관문이라고 불립니다.

 

영국은 남극에 순회판사(법원)를 파견했습니다. 또 남극의 영국령을 해저 쪽으로 100가량 확장하기 위해 유엔에 로비활동을 하고, 항공모함, 해병대, 잠수함을 동원해 남극 주변의 정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영유 지역과 겹쳐 제2의 포클랜드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괘념치 않는 분위기입니다. 러시아는 2004년에 러시아정교 교회를 설치하고 목사 2명을 뒀습니다. 지구상 가장 남쪽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미국은 남극점에 세계 최초로 기지를 지었고, 미국 공군은 군용수송기로 남극에 군수품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모형 비행기를 이용해 남극의 자기장 형태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장 자료는 훗날 철광석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남극 킹 조지섬의 러시아 기지에 세워진 러시아정교 교회

 

최근에는 중국의 추격이 아주 거셉니다. 중국은 판다 계획으로 명명된 남극 탐사활동 계획에 따라 해발 4093m의 남극 최고지점에 연구기지(쿤룬 기지)를 건설하고 남극대륙의 정밀지도를 제작했습니다. 중국내 지명을 그대로 따서 지은 창청(長城중산(中山쿤룬(崑崙타이산(泰山) 4개의 남극 기지를 보유했고, 내년에 1개를 더 건설한다는 계획입니다. 섬과 해안에 위치한 한국 기지보다 내륙 깊숙히 진출해 있습니다. 내년에 5번째 기지까지 건설하면 6개인 러시아 다음으로 남극에 많은 기지를 보유하게 됩니다. 더구나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남극 관광을 나서는 중국인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습니다. 중국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해외 관광단은 항공기와 정기여객선 등을 타고 설날인 지난 131일 남극에 도착해 중국의 창청 기지 등을 둘러봤습니다. 중국에서 판매하는 남극 관광상품은 대략 1인당 125000위안(2240만원) 수준입니다.

 

남극은 1951년 남극조약으로 세계 각국의 영유권 주장이 동결됐고 2048년까지 지하자원 개발도 금지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이 점을 노리고 영국·아르헨티나·호주·뉴질랜드·칠레 등 7개국은 벌써 남국에 자국의 영토가 있다고 공식 선언해 버렸습니다. 칠레·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 등 남미 국가들은 군인들을 상주시키고 있습니다. 나중에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 기지는 상주인구만 1000명 이상인데다 비행기 활주로까지 갖춰 사실상 미국의 도시처럼 기능하고 있습니다.

 

◀남극 킹 조지섬 내 칠레 기지에서 대원들이 유류저장 탱크를 수리하고 있다. 멀리 회색 바다에 유빙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세계 각국이 남극 깃발 꼽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자원 때문입니다. 남극은 남빙양으로 둘러싸인, 면적이 한반도의 62, 중국과 인도를 더한 크기의 거대한 대륙입니다. 지구 육지 면적의 9.2%를 차지하고 지구 담수의 68%를 갖고 있습니다. 평균 2정도의 빙하로 덮여 있으며, 겨울에는 온도가 섭씨 영하 50도까지 떨어집니다. 여기에 최대 풍속이 초속 65m에 이르고 자외선도 아주 강합니다. 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이 약 60m 상승한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합니다.

 

하지만 남극 해저에는 인류가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 ·구리·니켈··은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얼음만 제거하면 바로 채굴할 수 있는 노다지 노천광이라고 합니다. 생물자원도 있습니다. 남극에 널려 있는 크릴새우의 단백질량은 전 세계 수산물 총단백질의 10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크릴새우로 영양보충제인 오메가3를 만들고, 어묵과 빵도 제조합니다.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남극대륙의 자원을 개발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 각국이 선점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남극 세종 기지 앞의 유빙 위에 물새들이 놀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 가운데 남극의 가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직접 다녀오면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사람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다음해인 200711월에 남극을 찾았습니다. 유엔이 주도하던 기후변화협약에 회원국 참여가 부진하자, 지구온난화에 대해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엔사무총장으로서는 첫번째 남극 방문이었습니다. 반 총장은 칠레의 남단인 푼타 아레나스에서 칠레 공군기를 타고 남극에 있는 칠레 에두아르도 프레이 공군기지로 갔습니다. 칠레 입장에서는 세계 각국의 분쟁을 조정하는 유엔 사무총장이 칠레 공군기를 타고 남극 내 칠레 기지를 방문했다는 최초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반 총장은 남극의 기후변화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부인 유순택 여사와 아나 우리아르테(Uriarte) 칠레 환경부 장관, 외신기자 등 20여명과 함께 스노우 버스와 고무보트를 번갈아 타고 킹 조지섬에 위치한 한국의 세종기지를 찾았습니다. 반 총장이 방문해 격려하자 세종기지 대원들은 남극의 대구를 잡아서 회를 떠서 반 총장 일행을 대접했습니다. 대구회는 신선함이 넘쳐 색깔이 투명했고, 쫄깃쫄깃한 맛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평소에는 공식 행사에서 거의 말이 없는 유 여사가 회 접시가 비자, 두사람 건너 떨어져 있던 반 총장에게 큰 소리로 여보! 그 회 좀 이리 줘 봐!”라고 요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머쓱하더니 회 접시를 유 여사에게 넘겨 줬지요. 퍼스트 레이디가 한국말로 큰 소리로 말하자 다른 사람들이 놀라 반 총장 부부를 쳐다봤지만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이해 못한 표정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외교관의 가정 내 역학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의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었지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남극의 칠레 공군기지에서 바다를 건너 한국의 세종기지로 가기 위해 보트탑승자용 방수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사진: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 여사가 세종기지 대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사진:우)

 

◀남극의 세종 기지. 태극기와 함께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장승이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세종기지 제공

 

당시 일행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놀라운 것은 지구온난화로 급속히 녹아 내리는 빙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빙하가 녹고 난 뒤를 노리는 각국의 영토전쟁이야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숨결이 미치지 않던 남극의 엄청난 지하자원과 교통요지 등을 선점하려는 경쟁입니다. 이미 남극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킹 조지섬에는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중국·폴란드·러시아·우루과이가 연구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칠레는 남극에 육··3군 기지를 갖고 있습니다. 남극지역은 남극협정에 따라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지만, 킹 조지섬 인근 칠레남극연구소에 걸린 지도에는 킹 조지섬을 포함, 칠레 남단에서 남극점에 이르는 부채꼴 모양의 땅에 칠레 남극영토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세종기지에서 만난 이상훈 대장은 남극협정에 따라 남극은 평화적으로 과학연구에만 이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세계 각국이 유사시에 각국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남극점에 가까운 미개척 대륙 지역으로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장보고 기지 건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Kim’s Thought]

 

남극 세종기지의 표석 앞에서 필자도 한 컷

 

장보고 기지 건설은 매우 도전적이었다고 합니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 작업자들은 섭씨 영하 40도의 강 추위와 초속 40m의 강풍과 싸워야 했습니다. 철근을 맨손으로 만지면 손이 철근에 달라붙어 버려 장갑을 껴도 동상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했다고 하네요. 마치 달나라에서 공사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100여 년 전 신라 시대에 동북아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한민족의 해외 진출을 이끌었던 영웅의 이름을 딴 기지를 남극에 남겼습니다.

 

이 기지가 동북아 일대를 주름잡던 장보고의 청해진 처럼 웅비의 도약대가 되려면, 우주와 심해 뿐 아니라 남극에서도 폭발적 팽창을 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보고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 혹한의 추위를 견뎌내는 현대건설의 도전 정신이 앞으로 남극 탐험과 개척에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나 더. 우리도 남극에 기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가족도 보내고 아이도 낳고, 학교도 세우고, 절과 교회도 짓고, 병원 응급 시설도 갖춰보면 어떨까요? 군함까지 파견하면 더욱 좋구요.

 

김기훈 프리미엄뉴스부 / 입력 : 2014.02.19 05:36